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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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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들과 시장 경비원들은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 사무실에 오는 것을 방해했다. 그러니 이소선이 현장 근로자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이소선은 현장 근로자들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었다. 이소선이 옥상 사무실에서 내려가면 어린 노동자들이 한번 쳐다보고 씩 웃음을 던지고 뒷걸음질 쳤다.

'나는 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태일이가 그토록 사랑하던 저 나이 어린 근로자들 저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동심들. 가진 자들의 더러운 탐욕에 시들어가는 저들을 나는 만나야 한다. 저들을 만나야 노동조합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을까.'

이소선은 궁리 끝에 어린 노동자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상대로 떡 장사를 하기로 했다. 이소선은 이 생각에 미치자 어린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당장 떡을 떼어왔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어린 노동자들이 많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점심을 못 먹는 노동자들이 태반

평화시장 복도나 동화시장에 가서 떡을 팔았다. 점심을 못 먹는 노동자들이 태반을 넘었다. 점심시간에 떡이나 풀빵 몇 개를 먹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노동자들을 만나면 떡을 그냥 나누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소선이 안타까워서 떡을 그냥 주면 이들이 무서워서 받아먹지를 못 했다. 경비원이 마이크로 떡 사먹으면 안 된다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어머니,저 사람들이 떡 사 먹으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어린 노동자들은 눈치를 보면서 망설였다.

"그러면 사먹지 말고 내가 그냥 줄께. 이 떡 못 팔면 어차피 버리잖아."

그래도 어린 노동자들은 경비원의 눈치만 살피고 선뜻 받아먹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소선이 떡을 주는 것도 못 받아먹었다. 그래도 이소선은 물러서지 않고 떡을 받아왔다. 그리고 경비원들에게 사정을 했다,

"내가 떡 좀 파는 것 가지고 당신네들이 왜 말리는 거요. 나는 이렇게 해 서라도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니까 좀 봐 주시요. 당신네들도 부모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요? 당신네들 부모를 생각해서라도 나를 한 번 봐주시오."

이소선은 울면서 사정을 했다. 경비원이 우는 이소선을 한참 쳐다보더니 오늘만 팔고 내일은 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루만 떡을 팔게 했다. 이소선이 경비원들에게 울면서 사정하고 있는 것을 옆에서 본 어린 노동자들이 있었다.

"어머니,제가 돈을 얼마 놓고 가요. 알았죠? 그리면 거기에 맞게 떡을 가져갈 께요."

단발머리의 계집아이 하나가 헝겊에 싼 돈을 낼름 이소선 앞에 던지더니 떡을 한 움큼 집었다. 이소선은 너무나 기뻤다. 내일도 떡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떡을 신문지에 싸서 많이 주었다.

이소선은 그 뒤에 서 있는 아이를 불렀다.

"얘,이리 와서 떡 가져다 먹어라 나는 어디에 빨리 가봐야 하니까 이 떡을 버려야 해."
"아주머니,왜 이 떡을 버려요? 경비 아저씨들이 못 팔게 해서요?"
"먹어도 괜찮다. 이리 와서 먹어라. 먹는 것은 죄가 아니란다. 친구들 불러와서 이 떡 좀 다 가져 가."

이소선은 떡을 싸서 건네주었다. 그 어린 노동자는 배가 고팠는지 경비가 아무 말 하지 않자 얼른 떡을 가지고 뛰어 갔다. 어디서 왔는지 어린 노동자들이 갑자기 우루루 몰려왔다. 이소선은 정신없이 손을 놀려 몰려온 이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었다. 떡은 금방 없어졌다. 돈은 손에 못 쥐어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도 이소선은 떡을 머리에 이고 평화시장에 갔다.

"이 아주머니가 어제 하루만 팔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래놓고 오늘 또 오면 어떻게 해요?"

경비원들은 이소선을 몰아내려고 큰 소리를 쳤다. 이소선은 떡을 내려놓고 울음을 터뜨렸다. 제발 나의 소원이니 한 달간만 떡을 팔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이소선은 이렇게 애원도 하고 때로는 몸싸움도 해 가면서 열흘이 넘도록 떡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이소선이 떡을 그냥 먹으라고 주어도 꼬깃꼬깃한 그야말로 피땀 흘린 돈을 놓고 가는 어린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소선이 떡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을 듣고 다른 동에서도 나이어린 노동자들이 떡을 사러 몰려 왔다. 그것을 본 경비원들이 단호하게 막았다.

"아주머니가 자꾸 이러시면 우리 모가지가 떨어지니까 이제 떡 장사는 할 수 없어요."

경비원들이 이전의 태도와는 달리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그래 내가 어린 근로자들한테 말을 합니까? 싸움을 합니까? 떡만 주면 되는데 왜 장사도 못하게 하고 애들을 만나게도 못합니까?"

이소선이 따지고 들어도 경비원들은 막무가내다. 결국은 떡 장사는 열흘 가량 하고 접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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