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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위대한 어머니 김봉준 작. 이소선 여사 추모 그림
ⓒ 김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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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은 아들 전태일을 땅에 묻었다. 아니 가슴에 묻었다.

이소선과 전태일의 친구들은 집에 돌아와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당장 삼오재가 끝나는 내일 모레부터 무슨 일을 해나갈 것인지를 밤새도록 얘기했다. 서로 무릎을 맞대고 이들은 날을 꼬박 세웠다.

다음날, 노동청 산재사무소 소장이 신문지에 큼지막한 것을 싸가지고 이소선을 찾아왔다.

"이 여사, 내일이 삼오재니 이것으로 보태 쓰시지요. 변변치 않지만 이것을 전해드리려고 제가 이렇게 일찍 찾아왔습니다."
"이게 뭡니까?"

이소선은 신문지에 싼 물건을 펼쳤다. 돈이었다.

"이 싸가지 없는 놈의 새끼야,니가 산재사무소장이라면 이놈아 우리가 노동조합 만드는 데 협조나 해줄 생각을 해야지. 죽은 고깃덩어리가 삼오제를 지낸다고 술을 먹을 수 있겠냐 고기를 먹겠냐? 우리가 돈이 뭐가 필요해! 이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이소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장의 멱살을 잡았다. 돈 뭉치를 집어 던지고 소장의 머리를 벽에다 밀쳐버렸다.

"내가 지금 노동조합을 하려고 평화시장에 가는 길인데, 네깟 놈이 삼오재나 하라고 돈을 가지고 와! 돈이면 다냐?"

이소선은 소리를 질러 소장을 쫓아내고 그 길로 평화시장으로 달려갔다. 평화시장에 도착해 보니 노조사무실로 약속했던 세 곳이 한 군데도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 문 앞에 사람이 지키고 있으면서 비키지도 않는다. 이소선은 바로 그 옆에 있는 평화시장주식회사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노조사무실 준다고 네놈들이 약속했잖아! 어떤 놈이 약속했었냐? 어디 그놈 한 번 나와 봐!"

이소선은 책상이며 집기를 닥치는 대로 뒤집어 엎었다.

"사무실 준다고 약속해놓고 왜 안 주는 것이야? 너희들 믿고 장례식 했잖아! 사무실 안 주면 우리도 분신해서 죽어 버리겠다. 이 자식들아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 이제 와서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이 우릴 팽개쳐?"

이소선의 뒤를 함께 따라왔던 전태일 친구들이 집기를 부수며 사무실을 휘저었다. 이들이 한참 동안 난리를 피우니까 그때서야 직원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서 열쇠를 가지고 와서 노조사무실로 주기로 했던 곳의 문을 열었다. 그들이 문을 열어준 사무실은 허접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소선과 전태일 친구들은 사무실 안에 있던 허접 쓰레기들을 치웠다.

쓰레기를 치우면서 이소선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판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판자에 희미한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 판자에 쓰인 글자로 봐서 노동조합 간판이 틀림없었다. 이소선이 이 간판에 대해 삼동회 친구들한테 들어봤더니 전태일이 평회시장에서 근로조긴 개선운동을 하기 전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노조를 결성했던 사람들이 전태일 장례식에도 참여했었는데,노조결성 과정에서 전태일 친구들과 약간의 세력 갈등이 있었다. 하여간 이들은 힘을 합쳐 노조사무실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다음날 아침 이소선과 전태일 친구들은 눈 뜨기가 무섭게 사무실을 찾아갔다. 또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경비들이 가로막으며 이들을 사무실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이들은 사무실 출입을 막는 경비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결국 평화시장 옥상에서 경비들한테 내쫓기고 말았다.

옥상에서 밀려 내려온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자리를 옮겨 사람들을 더 모아 의논하기로 했다.

이 건물 옥상에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었다
▲ 청계노조 사무실이 있었던 곳 이 건물 옥상에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었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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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셔츠에 빨간글씨, 이들은 국회로 향했다

이들은 연락 가능한 사람들을 모았다. 김동환 목사, 삼동친목회 회원들,평화 시장 노동자 여러 명이 을지로 6가에 있는 경기여관에서 모였다. 여관방에 모여서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그 결과 러닝셔츠를 사가지고 왔다. 러닝셔츠에 요구조건 8개항을 빨간 글씨로 썼다. '8개항 약속을 이행하라!' '노조결성 방해마라!' '노조사무실 내놓아라!' 등의 구호를 큼지막하게 썼다. 요구조건을 쓴 셔츠를 각자 입고 그 위에 작업복을 걸쳤다. 그런 다음에 국회의사당 안에 들어가서 작업복을 전부 다 벗고 농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즉시 행동에 돌입했다. 러닝셔츠에 한창 글씨를 쓰고 각자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데 김 목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왔다.

"여관 밖에 짭새(경찰)들이 왔나봅니다."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경찰이 찾아온 것이다.

"몇 놈이나 왔습니까?"

이소선은 경찰이 왔다는 말을 듣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사가 두 사람 왔나봅니다."

두 명 정도면 자신 있었다. 아니 열 명이라도 물리쳐야 한다. 그런 각오가 아니면 어떻게 전태일의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이소선은 전태일 친구들한테 형사들을 무조건 데리고 들어오라고 시켰다.

"어머니,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친구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이소선에게 되물었다. 이소선은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하여튼 들어오라고 해라."

복도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이소선이 얼른 문을 열었다.

"어서들 오시오. 형사 양반들. 우리가 여기서 데모를 하니까 이리로 들어오시오."

이소선은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하듯 태연하게 형사들의 손까지 맞잡았다.

"데모요?"

형사들이 방문을 들어서려다 어리둥절해하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들어와 봐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러닝을 입고 국회의사당 안으로 쳐들어갈 거요. 당신들이 이리 들어와서 똑똑히 봐 두라구."

머뭇거리던 형사들이 구호가 적힌 러닝셔츠까지 보여주자 신발을 홀랑 벗고 방안에 들어왔다.

"철아,저 새끼들 처박아라!"

이소선은 형사들이 방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금세 표정을 사납게 바꿔 소리 쳤다.

"여기에 처박혀 꼼짝 말고 있어. 만약 움직이면 그때는 너희들 죽고 나도 죽는다!"

형사 하나에 세 사람이 달라붙었다.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이들은 계획한 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형사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과 이소선만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러닝셔츠를 입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정문에서 경비원들한테 그만 붙들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구호를 외치면서 몸싸움을 벌인 끝에 모두들 경찰에 연행됐다. 이때 김태원은 국회의사당에서 빠져 나와 중앙청까지 가서 그 앞에서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잡혔다. 김태원은 연행된 뒤 정보부에 끌려가서 의자에 묶인 채 몽둥이로 가슴팍을 얻어맞았다. 나중에는 그일 때문에 피를 토하고 결핵까지 앓게 되었다.

국회의사당 사건은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태일의 친구 누구누구가 노동조합결성 보장 등 8개항의 약속 불이행에 항의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려다 연행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투쟁을 한 끝에야 비로소 바로 다음날 노조사무실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태그:#이소선,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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