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EBS <다큐 공감>은 대한청년 자력갱생 프로젝트 '열정이 힘이다'를 방영했다. 힘든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관문 '취업'을 위해 스펙 전쟁에 휩쓸려 젊은이들이 고사되어 가는 현실에서 시험과 취직이라는 '정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젊은이들을 다룬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청년장사꾼'의 두 CEO 김윤규, 김연석이다. 두 사람은 인도 여행길에서 만났다. 이방의 낯선 여행길에서 운명처럼 네 번이나 조우하게 된 두 사람은 그 우연을 필연으로 여겨, 의기투합해 함께 일을 벌인다.

함께 장을 보러 간 시장,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필요한 비닐을 끊어버린 김연석 대표. 하지만 정작 값을 치르려고 보니, 자신이 선택한 비닐이 특수처리된 것이라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란다. 그런 김연석 대표에게 김윤규 대표는 아는 집이라더니 미리 알아보지도 않았다며 조곤조곤 따진다.

한 사람은 덥수룩한 수염에, 반바지, 샌들차림. 또 한 사람은 깔끔한 옷차림에, 운동화. 겉모습부터 판이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리고 그 느낌만큼이나 생각도, 취향도 다른 이 두 사람이 청년장사꾼을 이끄는 동업자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상권 '창조'한 청년들

 EBS <다큐 공감>의 한 장면. 청년장사꾼의 김윤규, 김연석 대표는 2012년 8월 이태원 우사단로에 처음 문을 연 카페 '벗'을 시작으로 감자집, 골뱅이집 등 현재 서울에 모두 7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EBS <다큐 공감>의 한 장면. 청년장사꾼의 김윤규, 김연석 대표는 2012년 8월 이태원 우사단로에 처음 문을 연 카페 '벗'을 시작으로 감자집, 골뱅이집 등 현재 서울에 모두 7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EBS


결혼한 배우자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두 사람은 2012년 이태원 우사단로에 처음 문을 연 카페 '벗'을 시작으로 감자집, 골뱅이집 등 현재 모두 7개의 가게를 소유한 돌풍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그저 많은 가게를 소유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장사'에 문화를 접목한 문화 게릴라들이다.

이태원에서도 외진 우사단로는 오가는 사람조차 없는 쓸쓸한 거리였다. 당연히 점포 세도 싼 이곳에 두 사람은 첫 가게를 연다. 취재진이 찾은 날, 우사단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주 토요일, 우사단로의 노점들은 '들어와' 프로젝트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플리마켓(벼룩시장)'을 열고, 입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이곳을 찾은 것이다. 

금천교 청년장사꾼 매장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청년장사꾼의 파란티를 입은 청년들이 거리에 서서 "어서오세요"를 외친다. 오래된 가게들이 있고, 그저 그곳을 알고 찾던 손님들만이 오가던 거리는 청년장사꾼이 오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즉, 두 사람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이곳에 문화적 마케팅을 하고 사람을 불러 모아 상권을 창조해냈다. '다같이 잘 사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없었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7개 매장 모두가 이런 문화적 경영의 소산이다.

틈을 내어 청년장사꾼들은 홍대를 찾았다. 이른바 '간판 깨기', 오늘의 목표는 햄버거 집이다. 홍대 상권에서 알아준다는 햄버거 집을 돌며, 파는 상품, 서비스, 인테리어 등 모든 것을 샅샅이 분석하고, 이것을 청년장사꾼 모두와 공유한다. 청년장사꾼의 대표는 두 사람이지만, 직원들은 모두가 매장의 주인을 꿈꾼다. 합숙을 하는 그들은 가게가 끝난 시간, 잠을 쫓으며 회의를 하고, 상권을 연구한다. 취업이 예정된 교육생은 있지만, 알바는 없다. 모두 정직원이다.

매장 운영도 독특하다. 비커가 맥주잔이 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살아있는 톡톡 튀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거기에 수시로 벌어지는 이벤트와 양질의 음식은 사람들이 즐거이 이곳을 찾게 만든다. 누구도 생각지 않은 아이디어와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문화적인 마인드로 고사되어 가는 상권을 되살린 이들은 청년 실업 시대 '자력갱생의 모범'이다.

이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돌진하는 젊은 CEO들이 맞닥뜨린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상권 분석 시간, 지도를 펼치고 김윤규 대표는 말한다. 중심 상권에는 대기업의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그런 중심을 제외한,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세가 싼 외진 곳이 바로 문화 게릴라 청년장사꾼의 목적지이다.

쫓겨난 가로수길의 주인들, 청년장사꾼의 미래?

가로수길 MBC < PD수첩 > 1000회 특집 2부 '임대업이 꿈인 나라'의 한 장면.

▲ 가로수길 MBC < PD수첩 > 1000회 특집 2부 '임대업이 꿈인 나라'의 한 장면. ⓒ MBC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시간 MBC < PD수첩 >은 어쩌면 이들의 부푼 꿈이 대한민국에서는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PD수첩 >은 1000회 특집으로 '돈으로 보는 대한민국' 시리즈를 방영 중이며, 그중 2부로 '임대업이 꿈인 나라'를 방영했다.

< PD수첩 >은 20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했다. 이들 중 88.4%가 '돈이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하게 돈을 벌수 있는 일이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각광 받고 있는 곳이 신사동 가로수길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로수길이 원래부터 그런 곳은 아니었다. 청년장사꾼의 김연석, 김윤규 대표가 문화 마케팅을 통해 외진 상권이었던 이태원 우사단로를 사람들이 들끓는 인기 상권으로 만든 것처럼, 그런 곳의 유래가 바로 가로수길이다.

강남에서 비교적 외진, 압구정동과 신사동 상권 사이에 낀 가로수길.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쌌던 이곳에 조그마한 가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 예술가인지 상인인지 구분되지 않던 가게 주인들, 그리고 야심차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게를 연 사람들이 처음 가로수길에 모여 들었다.

하지만 지금 가로수길에 이들은 없다. 발효빵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은 가로수길에서 밀려나 뒤편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날이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게가 잘 되자 주인이 나가라고 했단다. 처음 가로수길에 모여들어 그 길의 정체성을 만든 이들은 대개 이 빵집 주인의 처지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로수길을 차지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3년 전 모 대기업 회장 자녀가 당시 20대 중반의 나이로 가로수길에 있는 지하 이층, 지상 6층의 건물을 구입했다. 겨우 대리 직급인 이들은 은행으로부터 170억 원의 담보 대출을 받아 이 건물을 구입했다. 3년 만에 이 건물은 330억 원으로 무려 두 배가 뛰었다. 이 건물에서 벌어들이는 임대료만으로도 이들이 대출받은 돈은 갚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기존에 가로수길을 만들었던 상인들은 하루아침에, 혹은 집주인의 통보로 서서히,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 때문에 가로수길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대기업 계열의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대한청년 갱생 프로젝트라며 가슴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 청년장사꾼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몇 년 만에 겨우 가게가 자리를 잡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집주인의 일방적인 통보로 가게에서 밀려나게 된 옷가게 주인은 법에 호소해 보았지만, 법은 가진 자의 편이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던 잔인한 슬픈 기억과 7000만 원의 빚이다.

낙수 효과는커녕,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창조해서 돈을 버는 대신, 손쉽게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특혜와 특권을 이용하며, 중소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으로 기업의 생존 전략을 짠다. 그리고 그 결과, 가로수길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는 그 명망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밀려나고, 대신 대기업들의 밥그릇 싸움터가 되었다.

가로수길의 집주인들을 분석해 보니, 장년층도 있지만 20대, 심지어 10대도 있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애써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은 그다지 큰 폭의 차이가 없다. 특수 의료업계 종사자의 2005년 임금이 125만원에서 현재 133만원인 것처럼. 반면, 가로수길의 평당 시세는 2000만원에서 2억 원이 되었다. 간호사에서 복부인이 되어 월 600만 원 임대 수익을 바라보는 주부는 당당하게 자녀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좋겠다. 엄마가 나라서"라고. 그녀는 부자가 되기 위해 부동산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임대 수익이 많을 때는 맑은 공기마저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고 말하는 교수, 임대업이 꿈이라고 말하는 초등학생,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의 또 다른 현실이다. 이런 나라에서의 청년들의 자력갱생 프로젝트?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닐까? 청년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기 전에 '꿈을 꿀 수 있는 나라', '꿈을 꾸어도 절망하지 않는 나라'가 먼저가 아닐까? 아니, 꿈이 부동산 임대업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언젠가 몇 년 후, 청년장사꾼이 닦아놓은 상권에 대기업이 침을 흘리지 않는 세상이 가능할까? 같은 세상, 다른 현실. <다큐 공감> < PD수첩 >은 바로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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