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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마지막이다."

올해 1월 1일,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내려간 집에서 나는 '마지막'이란 말을 들었다. 기자라는 딸의 오랜 꿈을 가장 지지해왔던 아버지의 한 마디라 더 아팠다. 대학 졸업 후 1년간의 준비기간, 그 공백을 납득하기엔 58세의 아버지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잔고가 부족한데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올라온 서울. 대형마트 계산대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1.5리터짜리 콜라 한 병과 빨래 건조대. "아, 잠시만요" 하고 두 물건을 다시 쇼핑카트에 담는다. 철컹철컹. 철제 빨래 건조대가 카트 모서리에 부닥치는 소리가 처량하다. 스트레스 때문에 얻은 만성 위염이 도지는지 속은 다시 시끄러워진다. 콜라 한 잔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콜라와 빨래 건조대를 제자리에 놓고, 은행을 찾아 통장정리를 해 봤다. 잔고는 고작 460원. 충격적인 숫자였다. 기자고 뭐고, 일단은 살아야겠기에 급히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곧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만성이 된 불안은 가시질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스트레스성 위염에 시달렸고, 불안에 하루 4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두 달 정도 전 나는 취업을 했지만, 이런 상황은 취업을 준비해 본 20대라면 경험해봄직한 순간들이다. 직업을 갖기 위한 '차선의 밥벌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현실. 대한민국 평균 청년들에겐 일종의 숙명같은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례 1] 취업 준비 위해 '노가다'부터 '까대기'까지

벌지 않아도, 벌어도 불안한 취업준비생들의 밥벌이. 사진은 화물이 가득찬 택배 트럭.
 벌지 않아도, 벌어도 불안한 취업준비생들의 밥벌이. 사진은 화물이 가득찬 택배 트럭.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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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후 줄곧 노무사 시험을 준비해온 조해봉(24)씨는 이제 막 졸업반에 접어든 취업 준비생이다. 그는 한 해 두세 명씩 합격하는 학교 선배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아무리 해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는 방학 때마다 강도 높은 일을 해왔다. 일명 '노가다'로 불리는 막노동판이나, '까대기'로 약칭되는 유통업체의 배달 일이었다.

일이 힘든 만큼 부상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 토익스피킹 학원비와 학자금 대출 이자를 벌기 위해 올 봄 학교 근처 주차장 준설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무거운 부자재를 옮기다 검지가 꺾여 손가락이 퉁퉁 부었지만 간단히 파스만 뿌리고 다시 일을 나섰다.

"손가락이 잘린 것도 아닌데... 마음 불안한 것보단 일하는 게 더 낫다."

그의 손등과 어깨에는 일로 생긴 크고 작은 상처가 많다. 보름 정도 일하고 80만 원 가량을 벌었다는 그는 "공부 시간을 뺏기면 안 되니까, 몸이 잠깐 힘들더라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올 여름방학에도 집 근처에 있는 대형유통센터에서 짐을 부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지난해 여름에도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야외에서 3시간씩 세 타임, 쉬는 시간없이 줄곧 움직여야 하는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안쓰러운 얼굴로 어머니가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을 쓰다듬으며 "인종이 바뀐 것 같다야" 하고 안타까워했다.

조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에게서 돈을 받지 않았다. 등록금도 모두 제 손으로 벌어 충당했다. IMF 당시 목격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처절한 고생이 트라우마가 됐다. 하지만 "절대 부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던 그의 강한 의지는 대학 졸업이 다가오면서 약해지기 시작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한 대비때문에 강박적으로 변했다"면서 "벌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런데 벌어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사례 2] 졸업하고 3년, '꿈 시한부'가 닥쳐왔다

3년째 언론사에 도전하고 있는 김아무개(여, 26)씨는 아버지로부터 취업 지원의 마지노선을 확정받았다. 원래 1년이었지만, 줄곧 취업에 실패하면서 3년째 지원을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꿈 시한부' 선고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 언론고시 시장에 뛰어들면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1년만 해 볼게요." 아직 대학교 2학년인 동생의 학자금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아버지는 딸의 꿈을 꺾을 수 없다. 별말없이 "그렇게 해보라" 하시곤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으니 자식의 '꿈 고백'을 듣고 난 후, 아버지는 당신의 앉은뱅이 책상에 한참을 앉아 앞으로의 가계를 다시 셈하셨다고 했다. 그녀는 당시 아버지의 애써 덤덤해하던 표정을 묘사하며 "'그렇게 해라' 하시곤 별말 없으셨다, 그게 또 죄스러웠지만 그때 당시엔 금방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때까진 언론사 채용 '0명의 함정'을 몰랐다."

언론사 채용시장은 너무나 좁았다. 종편 출범 이후 잠깐의 채용 붐이 있긴 했지만, 막 공부를 시작한 단계라 지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약속한 1년을 지나 2년이 훌쩍 지나갔고, 점차 집을 찾아가는 일조차 부담스러워졌다. "빚쟁이가 된 심정이더라."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부동산도 점점 힘들어지는 듯했다.

활기를 잃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슬슬 밥벌이에 대한 고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정한 마지노선을 매몰차게 실현하진 못했다. 하지만 김씨는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렇다고 3년 내내 준비해 온 꿈을 바로 접을 순 없는 일이었다. 일단 꿈을 연장하기 위해선 '벌이'가 필요했다. 더 이상 집에 손을 벌릴 순 없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오전 5시부터 오전 9시까지 한 광고회사에서 하루 이슈를 데이터로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낮 시간에는 친구에게 알선받은 중2와 고1 남매 과외수업을 했다. 생활패턴이 급변하면서, 생리 주기가 바뀌는 등 몸에 이상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생각했다.

문제는 공부 시간이었다. 꿈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꿈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김씨는 다른 일을 모두 그만두고, 3주 전부터 논술학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입시 논술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글의 틀을 짜주고 교열을 손보는 일이었다. 시급 6000원, 하루 네 시간씩 일주일 꼬박 벌면 한 달에 40만 원 정도는 손에 쥘 수 있었다.

꿈을 연명하기 위해 일하는 청년들
 꿈을 연명하기 위해 일하는 청년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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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고시텔 비용 28만 원을 제외하면 12만 원으로 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딸의 상황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어머니는 몇 달 전 부터 가계비를 쪼개 매달 10만 원을 송금해줬다. 그녀는 "요즘엔 일부러 힘들게 공부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털에서 검색해 읽고 있다"면서 "읽어야지, 하고 결심한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찾아 읽는다, 동기 부여 때문이라기 보단 불안 해소와 안정을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부모의 눈치나 현실의 궁핍함보다도 가장 답답한 건 결국 내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씨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 던진 말이다. 첨삭을 위해 쥐고 있던 빨간펜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녀는 다음주 주말에 있을 한 언론사의 서류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꿈 시한부' 마지막 자락에서도 그녀는 꿈을 위한 벌이를 멈추지 못했다.

최근 아르바이트 구직 전문사이트인 '알바몬'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름방학 계획을 묻는 질문에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답한 답변은 취업준비(19.1%)였다. 그 뒤를 이어 나온 것이 아르바이트(15.8%). 3, 4위는 '외국어 공부(13.1%)'와 '자격증 취득(10.8%)'이 차지했다. 더불어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위염 환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3.4%인 것에 비해 20대 위염 환자는 4.4%로 전체 연령층의 연평균 증가율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매해 반복되는 청년 통계를 들여다보면 슬픈 공통분모가 하나 떠오른다. 바로 '불안'이다. 그들의 속쓰림은 언제쯤 가실 수 있을까.


태그:#취업준비, #아르바이트, #꿈,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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