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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가죽 제품을 사지 않을 거야."

아마도 3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생일을 일 주일 앞두고 친구들을 만나 했던 말이었다. 그 뒤로 가죽 제품을 절대 사지 않았다. 평소에도 가죽의 무게감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았다. 천연 가죽 제품을 볼 때마다 하나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것은 우연히 보게 된 동영상 탓이었다. 영상에는 한 동양인이 산채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행위가 기록되어 있었다. 가죽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지만 동물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만들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물 가죽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방이나 옷, 신발까지도 천으로 된 제품만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난감해 했다. 생일 선물을 미리 골라 두었는데 그것은 가죽 제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받지 않겠어."

끊어질 지경에 이른 가방, 수선도 한방에

올이 풀려 손잡이가 끊어지려 하는 것에 상표 조각을 대었다.
 올이 풀려 손잡이가 끊어지려 하는 것에 상표 조각을 대었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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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발품을 팔아 천으로 된 가방을 구하러 다녔다. 친구의 정성이 가득 담긴 네모난 천 가방에는 붉은 코끼리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가방이 마음에 들어 옷이나 구두와의 조화를 무시하고 그것만 매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가방 모서리 부분은 낡아 작은 구멍이 생겼고, 손잡이는 실오라기들이 일어나 지저분해졌다. 이 정도의 낡음은 멋이라고 생각하며 들고 다니려 했으나 올이 자꾸만 빠져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

자투리 천이나 단추, 지퍼 등을 모아둔 가방을 열었다. 며칠 전 옷에서 떨어져 나온 상표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La D Da' 라 적혀 있었다. 뜻은 알 수 없지만 천 대신 덧대기에는 알맞았다.

나는 작은 바늘에 파란색 실을 끼우고 약지와 소지를 뺀 세 손가락으로 바늘을 잡았다. 일자로 꿰매면 밋밋할 것 같아 X자 모양을 만들어 가며 바느질을 했다. 매우 작은 부분이라 바느질은 금세 끝이 났다. 손잡이 부분이라 덧댄 것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 내 가방은 낡은 느낌이 들었지만 몇 년 더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틈만 나면 바느질을 했다. 잡생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마다 옷가지들을 바닥에 벌려놓고 수선이 필요한 것들을 찾았다. 바느질을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바늘이 되어 실을 어깨에 이고 천 사이를 오고 가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귀는 닫히고 눈의 시선은 온통 바늘 끝에 고정되어 있다. 아, 몰입이여!

얼룩이 져 버리려던 메모리폼 베개에 나의 티셔츠를 수선해 입혔더니 보기 좋다.
 얼룩이 져 버리려던 메모리폼 베개에 나의 티셔츠를 수선해 입혔더니 보기 좋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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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느질과 재봉에 빠져든 이유

내가 이렇게 바느질과 재봉에 빠져든 것은 엄마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바느질을 했다. 구멍 난 양말, 찢어진 바지, 늘어난 팬티 등 꿰매야 할 것들이 많았고 장식용 덮개도 계절 별로 만들어야 했다.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버려질 것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 집에는 형제가 많아 엄마의 손은 더 바빴다. 모든 형제들에게 새 옷을 사 입힐 형편이 되지 못해 엄마는 수선해서 형제들의 옷을 만들었다.

엄마의 작은 옷은 큰언니가, 큰 언니의 옷은 둘째 언니가, 둘째 언니의 옷은 셋째 언니가, 셋째 언니의 옷은 넷째 언니가, 넷째 언니의 옷은 내가 물려 입었다. 그러나 나는 언니들의 옷을 바로 입지 못했다.

나는 언니들의 옷을 그대로 입기에는 몸집도 키도 너무 작았다. 그래서 엄마는 재봉틀을 돌렸다. 재봉틀이 몇 번 돌아가지 않은 것 같은데 금세 새 옷이 만들어졌다. 엄마의 그런 면을 닮아서인지 지금까지도 입지 못하는 옷은 기증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것으로 만들어 재사용하고 있다.

시골 생활에서 옷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옷의 조건이다. 아직도 나는 도시에서 입던 옷들을 아직도 입고 있다. 가끔 나의 옷이 시골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그 옷들이 여전히 편안하고 좋다.

찢어진 바지에 짜투리 천을 대어 수선하다
 찢어진 바지에 짜투리 천을 대어 수선하다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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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룸메이트가 개량 한복을 편안해 하듯이 나는 나풀거리는 치마가 편안하다. 내가 현재 입고 있는 옷들의 나이는 평균 8년이 넘는다. 어떤 옷은 이십 년이 넘은 옷도 있다. 깨끗이 빨고 보관만 잘하면 오래 입을 수 있지만 유행이 지난 옷들은 수선을 하면 몇 년은 더 입을 수가 있다.

룸메이트는 옷을 잘 찢어 먹는다. 본인이 밀림 속의 원시인이라 생각하여 옷을 걸치지 않았다고 착각을 하는지 밖을 나갔다 오면 찢어진 바지를 입고 들어온다. 오늘도 그는 찢어진 바지를 입고 터덜터덜 걸음으로 마당을 들어섰다. 그때 나는 가방 손잡이를 수선하고 바느질 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바지를 건네받고 다시 바느질 삼매경에 빠져들기로 했다.
 
내 나이 열 살 무렵, 엄마가 바느질을 하거나 재봉틀을 돌릴 때면 바늘귀에 실을 꿰어준다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지켜보곤 했었다. 바느질을 하는 엄마의 손가락은 천천히 움직였다. 바늘에 시선이 고정된 엄마의 표정에는 어떤 감정의 찌꺼기도 없어 보였다. 매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고, 나도 바느질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었다. 엄마도 나도 지나친 버려짐을 줄이기 위해 바느질을 하는데 엄마가 주는 그 무의 상태를 나는 느낄 수가 없다.

대량 생산으로 많은 것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새것보다 오랜 동안 내 손때가 묻어 낡고 닳아진 것이 좋다. 그 낡음이 주는 편안함은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온 몸으로 느껴지는 안정감과 닮았다고 하면 말이 될까.

나는 오늘도 바느질을 한다.


태그:#바느질, #꿰매다, #가방,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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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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