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우슈비츠는 세계 각국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와 이곳의 만행을 생각하며 희생된 원혼을 달래며 조용히 관람을 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입니다.
 아우슈비츠는 세계 각국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와 이곳의 만행을 생각하며 희생된 원혼을 달래며 조용히 관람을 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입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아우슈비츠 수용소', 나치의 악명 높던 이 수용소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KBS는 20일 저녁 9시 뉴스에서 70년 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나치 경비원을 미국에서 체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나치 전범을 추격하던 독일이 2차 대전 당시 17살이었던 아우슈비츠 경비원 요한 브라이어를 체포했습니다. 안드레아 폴커스 검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른 경비원들과 함께 수용소의 해골경비대대 소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 전범 요한 브라이어 체포

KBS는 20일 저녁 9시 뉴스에서 70년 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나치 경비원 요한 부라이어를 미국에서 체포했다고 보도했습니다.(KBS 뉴스갈무리)
 KBS는 20일 저녁 9시 뉴스에서 70년 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나치 경비원 요한 부라이어를 미국에서 체포했다고 보도했습니다.(KBS 뉴스갈무리)
ⓒ KBS

관련사진보기


부라이어가 당시 어린나이에 외곽근무만 했다는 변명을 독일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나치에 적극 협력했으며, 여러 차례 상까지 탄 사실을 밝혀내고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그는 유대인 학살 방조혐의 158건의 주인공입니다. 그간 미온적이던 미국 정부도 8월 범죄인 인도 청구심리를 열어 독일로 추방할 예정입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인 전쟁 범죄가 아니라, 한일 간 외교 갈등쯤으로 폄하하려고 고노담화 검증을 발표하는 날, 독일은 전범을 찾아 체포한 것입니다. 요한 부라이어가 체포됨으로, 독일과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는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체포된 요한 부라이어가 근무하던 아우슈비츠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흔히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 등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마치 일본이 우리나라의 대구에 수용소를 하나 짖고 '대구 수용소'라고 하지 않고 '교토 수용소'라고 하는 것 같은 이치입니다.

'아우슈비츠'가 아니라 '오슈비엥침'

관람하는 내내. 안내표지판에서부터 내부의 모든 공간들과 외부의 시설들까지, 안내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헤드폰이 필요했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안내표지판에서부터 내부의 모든 공간들과 외부의 시설들까지, 안내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헤드폰이 필요했습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라는 말은 독일이 폴란드의 '오슈비엥침'을 독일식으로 부른 이름입니다. 오수비엥침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300km 떨어져 있습니다. 나치 독일은 이곳으로 유대인들을 나르기 위해 기차를 동원했습니다.

이곳으로 잡혀 온 사람들은 자신이 강제수용소로 가는 걸 모르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 유유자작 이곳으로 오는 기차에 올랐으니까요. 우리가 유대인 수용소로만 알고 있는데 실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옛 소련군 포로 등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폴란드인은 정치범 728명을 첫 수용자로 7만5천 명이나 학살되었습니다.

이곳으로 잡혀 온 사람들은 자신이 강제수용소로 가는 걸 모르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 유유자작 이곳으로 오는 기차에 올랐으니까요. 요한 부라이어 같은 경비원들이 기세등등합니다(오른쪽 아래).
 이곳으로 잡혀 온 사람들은 자신이 강제수용소로 가는 걸 모르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 유유자작 이곳으로 오는 기차에 올랐으니까요. 요한 부라이어 같은 경비원들이 기세등등합니다(오른쪽 아래).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독일 훽스트사에서 개발한 치클론B라는 독가스 통을 여항자가 관람하고 있습니다(위). 희생된 이들의 사진입니다(아래).
 독일 훽스트사에서 개발한 치클론B라는 독가스 통을 여항자가 관람하고 있습니다(위). 희생된 이들의 사진입니다(아래).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는 주로 유대인들이 학살 대상이었습니다. 나치는 대항하는 이들을 총살했는데, 수용인원이 많아지자 독가스 살해를 했습니다. 독일 훽스트사에서 개발한 치클론B라는 물질이 바로 그 독가스입니다. 아우슈비츠 이외에도 비르케나우, 첼름노와 같은 수용소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전시실에는 쓰고 버린 독가스 통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독가스로 살해할까요. 사람들을 목욕시킨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스실로 들여보냈습니다. 이나 쥐를 잡는데 사용되었던 독가스기에 이를 없애준다는 거짓말도 통했을 겁니다. 우리가 본 가스실은 그리 크지 않은 방입니다. 이 독가스실에서 하루에 2만4천 명씩 죽어나갔습니다.

여러 동으로 이뤄진 수용소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어 그 누구도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었습니다. 철조망은 전기가 들어왔고 경비원이 지켰으니 2중3중으로 통제한 것이죠.
 여러 동으로 이뤄진 수용소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어 그 누구도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었습니다. 철조망은 전기가 들어왔고 경비원이 지켰으니 2중3중으로 통제한 것이죠.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그들이 수용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던 경비처소도 덩그러니 파란 하늘을 이고 서있습니다(외쪽). 아우슈비츠하면 독가스가 연상되어 총살이나 교수대는 상상이 안 갑니다. 그러나 실상은 목을 매단 교수대도 있습니다(오른쪽).
 그들이 수용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던 경비처소도 덩그러니 파란 하늘을 이고 서있습니다(외쪽). 아우슈비츠하면 독가스가 연상되어 총살이나 교수대는 상상이 안 갑니다. 그러나 실상은 목을 매단 교수대도 있습니다(오른쪽).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이런 참상은 하루 종일 줄을 세워 이곳으로 인도했을 요한 부라이어 같은 경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완전무장하고 수틀리면 구둣발로 짓밟는 그런 게시타포, 상상이 됩니다. 그들이 수용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던 경비처소도 덩그러니 파란 하늘을 이고 서있습니다. 수용된 사람들은 경비처소만 봐도 치를 떨었겠지요.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죽음'과 '삶'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와 그들의 원혼을 생각하며 조용한 관람을 할 뿐입니다. 너무나 평온한 모습입니다. 시간이 달라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때는 죽을 때, 지금은 죽인 자와 죽은 자들의 공간을 관람하는 때,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원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관람하는 내내. 안내표지판에서부터 내부의 모든 공간들과 외부의 시설들까지, 안내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헤드폰이 필요했습니다. 나치는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이곳에서 학살했습니다.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합니다.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합니다.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먹지 못해 뼈만 남은 이들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합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유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의족이나 신발들이 무수합니다. 쓰던 칫솔, 구둣솔, 밥그릇, 수저 등등, 이 수많은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거죠.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유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의족이나 신발들이 무수합니다. 쓰던 칫솔, 구둣솔, 밥그릇, 수저 등등, 이 수많은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거죠.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여러 동으로 이뤄진 수용소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어 그 누구도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었습니다. 철조망은 전기가 들어왔고 경비원이 지켰으니 2중3중으로 통제한 것이죠. 한번 들어오면 죽어야나 나가지요. 아니 죽어서도 화장을 했으니 재가 되어 나갔겠군요. 아우슈비츠하면 독가스가 연상되어 총살이나 교수대는 상상이 안 갑니다. 그러나 실상은 목을 매단 교수대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유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의족이나 신발들이 무수합니다. 쓰던 칫솔, 구둣솔, 밥그릇, 수저 등등, 이 수많은 사람들을 다 죽였다는 거죠. 나치 독일이.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사진이 내부에 걸려 있습니다. 물론 다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독가스실 옆에는 시체를 화장하던 장치가 있습니다. 롤러로 돼 있어 시체 한 구를 롤러 위에 눕히고 안으로 들이밀면 화장이 되는 겁니다. 밖으로는 화장할 때 발생하는 연기가 나오는 굴뚝도 있고요.
 독가스실 옆에는 시체를 화장하던 장치가 있습니다. 롤러로 돼 있어 시체 한 구를 롤러 위에 눕히고 안으로 들이밀면 화장이 되는 겁니다. 밖으로는 화장할 때 발생하는 연기가 나오는 굴뚝도 있고요.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독가스실 옆에는 시체를 화장하던 장치가 있습니다. 롤러로 돼 있어 시체 한 구를 롤러 위에 눕히고 안으로 들이밀면 화장이 되는 겁니다. 밖으로는 화장할 때 발생하는 연기가 나오는 굴뚝도 있고요. 그때의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굴뚝이 솟은 언덕으로는 민들레가 지천입니다.

통상적으로 이곳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를 110만~150만 명으로 보는데, 유대인 희생자가 100만 명가량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승전국들에 의해 너무 부풀려졌다는 의견이지요. 이곳에서는 독가스 살해 뿐 아니라 생체실험도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수용소 의사 엥겔레 박사의 생체 실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의 대학살과 생체실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은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아래 내용은 레옹 디그렐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우슈비츠를 1979년 6월 방문하려고 할 때 아우슈비츠의 진실은 과장되었으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하며 쓴 편지의 일부입니다.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에서 가공할 치클론B 가스를 사용하여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함으로써 계획적으로 인종을 말살시키려고 했다는 전대미문의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종전 후 수십 년 동안 세계 인류의 뇌리를 때리고 있기에 과학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아무도 이에 동조하려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학살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수사 보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중략)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400평방미터 되는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에서 한번에 3천명씩 넣어 하루에 2만 4천명을 죽였으며 벨제크(belzec)에서는 넓이 25평방미터(7.6평), 천장이 1.9미터 되는 방에 한번에 7백~8백명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25평방미터라고 하는 넓이는 조금 큰 침실크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하께서는 그런 침실에 칠팔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중략)

6백만명을 독가스로 살해했으면 인분이 흘러나오고 피가 범벅이 된 상태였을 텐데, 성해께서는 그런 속에서 6백만개의 항문과 4백,5백만개의 질과 자궁들을 샅샅이 더듬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숨겨놓은 귀금속을 찾겠다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구멍 속 끝까지 손을 집어넣어 하루에 2만 4천개의 항문과 1만 5천~2만개의 질을 후벼냈다는 이야깁니다. 이런 이야기는 정신병원 환자들이나 할 이야기가 아닌지요?(중략)

레옹 디그렐은 1906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철학자, 작가, 기자, 정치인, 군인의 여러직업을 가질정도로 다제다능했던 조국 벨기에와 유럽 기독교의 악마화를 막기 위하여 싸웠으며 알려지지 않은 20세기의 비사를 많이 쓴 사람이다. 벨기에에서는 이 논의 자체를 법으로 금지시켰다고 한다.(billgateswxp의 '아우슈비츠의 학살은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 참고)



태그:#아우슈비츠, #요한 부라이어, #나치, #오슈비엥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