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19일 오후 5시 28분] 


담배는 안 된다. 키스도 안 된다. 노출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섹스'란 단어는 엄금이다. 유혈도 최대한 줄이거나 없애라. 칼보단 꽃이 옳다. '년'이란 비속어는 '여자'로 순화하라. 이 중 하나라도 거슬리면 퇴짜다.
 
'앙~대요' 포스터 열전쯤 되려나. 실로 오랜만에 '틀린그림찾기'를 하는 맛이 색다르게 씁쓸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유해성 있음'을 판단해 등급 분류에서 반려한 영화 포스터와 수정된 이미지들을 비교하보면 어이를 상실하게 된다.  
 
왜? 우리의 청소년들은 올바르게(?) 성장해야 하니까. 욕설이나 비속어에서도, 여성의 살색 피부에서도, 연인끼리의 입맞춤에서도 철저하게 보호하고 격리시켜야 하니까. 그들의 실제 삶이, 현실이 어떤지가 무슨 상관이랴. 창작자들의 의도는 부분이니 무시해도 그만, 오늘도 우리의 국가 기관은 이렇게 청소년 보호에 여념이 없다.
 
최근 <님포매니악 볼륨1> '블러 처리' 포스터를 필두로 영등위가 최근 몇 해 동안 철퇴를 내린 영화 포스터들을 모아봤다. 과연 영화 포스터는 어느 정도 수위가 '전체관람가'인지, 청소년을 보호하고, 부적절한 표현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등위의 기준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중구난방, 들쭉날쭉, 한 마디로 제멋대로다. 기대해도 좋다. 
 
Case 1. <님포매니악 볼륨1>(2014년 6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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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도, 출연배우들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을 지경이다. 변경된 '보여줄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는 카피가 조롱인지 절박함인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맡겨야할 듯 싶다. 이 '블러처리'라는 희대의 포스터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납득했다는 것이 더 신기한 정도다.
 
Case 2. <폼페이>(2014년 2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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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은 돼도, 키스는 안 된다. 올초 포스터 심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문제의 그 <폼페이> 포스터다. TV 드라마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키스가 유해하다니. '심의 위원들이 폭발하는 화산을 예술적인 성적 은유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낭설이 떠돌았을 정도다. 작품 속 키스마저 선정적으로 여기는 영등위의 음란성은 누가 심의하나.
 
Case 3. <300 : 제국의 부활>(2014년 3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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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는 피도 싫어한다. 역사 속 인물인 그리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의 칼에 묻은 피에서도 폭력성을 감지한 모양이다. 수위 높은 폭력과 정사 장면이 포함된 이 영화의 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포스터가 '전체관람가'라는 이유만으로 피까지 디테일하게 '뽀샵질'을 해야 하나. 한편, 이에 대해 영등위는 왼편 오리지널 포스터에 대해 유해 확인이 신청된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영화사 측에서 오리지널 포스터의 피를 먼저 수정하는 행위야말로 영등위가 조성하는 '자기검열'의 덫이 아닐런지. 
 
Case 4. <몬스터>(2013년 3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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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은 안 되지만 꽃은 상관없다. '미친년'은 '미친여자'로 바꿔야 안심이다. 이 얼마나 단순명쾌한 기준이란 말인가. 코미디와 스릴러를 뒤섞은 <몬스터>의 장르마냥 변화된 포스터의 양상도 꽤나 오락가락이다. 영화 속 캐릭터의 성격처럼 배우 김고은이 칼을 들고 머리 꽃을 꽂았다면 달랐을까. 
 
Case 5.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2014년 6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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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나쁘다면 안경이라도 쓰시라. 포스터 오른쪽 위, 여성이 덮은 침대 시트를 끌어 올렸다. 그리하여, 살색보단 흰색이 늘게 됐다. 짝짝짝! '여자들을 숨쉬게 하는 두 가지'란 카피는 '다시, 사랑하고 싶은 오후'로 수정됐다. 그런데 하단에 '욕망'이란 단어는 또 살아남았다. 단어 하나가 유해성에 미치는 영향이 진심 궁금하다. 
 
Case 6. <폭스파이어>(2013년 8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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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에서는 실종, 케이블 영화에서는 블러 처리되는 담배도 목숨을 유지할 순 없다. 로랑 캉테 감독의 <폭스파이어> 포스터는 맨 오른쪽 배우가 물고 있는 담배를 CG로 지워버렸다. 영등위 위원들은 "뜨겁게 행동하고 간절하게 추구하라!"라는 카피가 청소년들의 흡연욕을 자극하리라 예상했을지 모를 일이다. 한편, 영등위는 Case 2. <폼페이>와 마찬가지로 왼편 오리지널 포스터에 대해 유해 확인이 신청된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Case 7. <몽상가들>(2014년 2월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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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성 기준이 가관이다. 남배우들의 머리가 에바 그린의 가슴에 닿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변경한 것이 목덜미라나 뭐라나. 영등위가 에바 그린을 흠모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참고로, 2005년 개봉 당시 포스터도 영등위로부터 심의 반려를 받은바 있다는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영등위는 변함이 없다는 반증과도 같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영등위 측은 <몽상가들> 포스터는 "한 침대에 누운 세 남녀의 포즈가 전체관람가로 부적합"해서 유해확인 결정의견이 났다고 밝혔다.
 
Case 8. <쩨쩨한 로맨스>(2010년 12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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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불' 영화들이 문제다. 영등위는 청불 영화 주인공들의 몸짓 하나 하나가 야릇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이선균과 최강희가 딱 달라붙은 포즈가 선정적이므로 '유해성 있음'으로 처리. 결국 열 받은 여배우가 남자의 머리채를 잡은 건가.
 
Case 9. <사다코2>(2014년 3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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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들 속 귀신은 억울하다. 너무 무서우면 안 된다. 그런데 포스터가 너무 무섭거나 혐오감을 준다는 판단 기준은 대체 어디까일까. 초딩? 중딩? 여하튼 귀신의 피맺힌 빨간 눈은 불가. 대신 폰트를 붉은 색으로 변경하는 기지가 발휘됐다. 변경 전 '너도... 내가 무서워?'라는 카피는 꼭 영등위에게 전하는 귀신의 읍소같다. 
 
Case 10. <아메리칸 허슬>(2014년 2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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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골이 깊게 파여서는 '앙~대요!'.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면, 에이미 아담스와 제니퍼 로렌스의 가슴 부분이 축소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역행의 강요라니. 강남 인근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가슴 성형 광고는 확대만을 강조하는데 말이다.
 
Case 11. <스프링 브레이커스>(2013년 7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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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 내내 여름을 재촉하는 차림으로 스크린을 활보하는 이 여배우들은 그러나 포스터에서는 꽤나 얌전해졌다. 아예 비키니를 입고 있다는 걸 알 수 없게 앵글을 축소하다니. 영등위 등살에 영화 홍보팀과 포스터 디자이너들의 비루한 꼼수(?)만 늘어간다.
 
Case 12. <더 퍼지>(2013년 11월 개봉)과 <죽지않아>(2013년 8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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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위의 꼼꼼함은 단어 하나 하나까지 적용된다. '12시간 살인포함 분노 표출 허용'이나 '우리 할배랑 자주라'와 같은 표현이 이른바 모범범죄 우려나 불경죄에 걸린 케이스다. 한국에서 영화 홍보를 하려면, 자나깨나 입조심, 아니 영등위 조심이 철칙일지니.   

영화 포스터 영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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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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