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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위태로움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손자>(孫子) '모공편'(謨攻篇)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 뒤에는 '남을 알지 못하나 나를 알면 일승일패이고, 남을 알지도 못하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라는 말이 따른다.

지금 중국과 미국은 세계를 이끄는 양대 마차다. 때로는 우방이지만 때로는 가장 치열한 적대국이다. 겉으로 두 나라는 고요한 호수 위를 노니는 백조처럼 유유자적할지 모르지만, 수면 아래에선 혈투에 가까운 대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수시로 이들의 싸움을 목도한다. 가령 민감한 대외문제 있어서 두 나라는 사사건건 힘겨루기를 한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성립된 이후 달러는 독보적인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유러화와 위안화가 위협하지만 달러의 지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달러의 고향인 미국 연방준비이사회 건물 브레턴우즈 체제가 성립된 이후 달러는 독보적인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유러화와 위안화가 위협하지만 달러의 지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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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국과 중국의 가장 큰 결투 거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경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축통화 문제가 있을 것이다.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1944) 이후 달러는 확고하게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잡았다. 널리 알려진대로 이 체제를 만들고, 그 핵심기구인 연방준비이사회(FRB)를 꾸리는 이들은 소위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이다.

음모론이 상당히 들어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양대 대전을 비롯해 지구촌의 많은 사건들을 배후에서 조정하면서 지금도 세계 경제의 절대 권력을 쥐고 있다. 이 집안의 탄생에는 하나의 신화가 있다. 200년 전인 1812년 9월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유대인 사채업자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임종을 앞두고 다섯 아들을 모았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카스피해 동부에서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던 유목 민족 스키타이의 왕의 이야기다.

왕은 임종을 앞두고 다섯 왕자를 불렀다. 그리고 한 묶음의 화살 뭉치를 주면서 차례대로 꺾어보라 했다. 하지만 어느 왕자도 그 화살을 한꺼번에 꺾을 수 없었다. 왕은 그 뭉치를 풀어서 다섯 왕자에게 한 개씩의 화살을 주며 꺾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섯 왕자는 손쉽게 그 화살들을 꺽을 수 있었다. 왕은 왕자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뭉쳐 있을 때 함부로 꺾을 수 없었던 화살뭉치처럼 너희들이 화합할 수 있다면 우리 스키타이의 번영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분열되어 낱개의 화살처럼 된다면 누구나 너희를 무너뜨릴 수 있다." 
로스차일드가는 0.01%가 지배하는 세계 권력의 상징이다.
▲ 세계 금융을 선도하는 로스차일드가의 문양 로스차일드가는 0.01%가 지배하는 세계 권력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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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가의 이야기나 미국 금융산업의 전반적인 구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중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린 쑹훙빙의 <화폐전쟁> 덕분이다. 쑹훙빙뿐일까. 이미 미국의 정계나 재계, 금융 등에서 활동하는 중국인들은 상당히 많다. 어떻든 이들은 중국인이라는 뿌리 의식이 상당히 강하고, 기회가 되면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화교들이다.

유대인으로 대표되는 미국 금융의 싱크탱크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중국 이야기>의 저자이자 중미 수교의 다리를 놓은 헨리 키신저도 유대인인데,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중국에 대한 그의 이해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정치에 한발을 놓은 키신저가 이 정도인데 싱크탱크들의 이해는 보통 수준을 넘는 게 당연하다.

중국과 미국의 건곤일척 혈투

이런 중국과 미국이 기축통화를 놓고 건곤일척의 혈투를 준비하고 있다. 유로화의 부활이 쉽지 않다면, 그 대안으로 어떤 화폐가 떠오르게 될까. 그 화폐는 몰락해 가는 달러화와 견줘지면서 양대 기축통화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자리를 엔이 차지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중국의 위안화다. 미국이 위안화의 부상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향후 어느 한 쪽이 포기할 때까지 기축통화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싸움에서 우리의 우군은 사실상 없다. 현재는 일본이나 한국이 미국에 가깝게 가 있다지만 세계의 공장을 중국에 내주고, 달러화의 공장밖에 못하는 미국을 계속 지지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사실 조공무역은 이쪽서 뭔가를 주면 받는 쪽도 비슷한 것을 주어서 격을 맞추는 일종의 거래였다. 그런데 지금 미국이 주장하는 체제는 이쪽서 재화를 주면 저쪽에서 달러라는 종이만 주는 형국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런민삐 최고액권은 100위안으로 우리돈 18000원 정도에 상당한다. 100불권까지 있는 달러화에 비해서는 금액이 낮다
▲ 런민삐의 최고액권인 100위안 런민삐 최고액권은 100위안으로 우리돈 18000원 정도에 상당한다. 100불권까지 있는 달러화에 비해서는 금액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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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중국도 지금과 같은 속도로 향후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때문에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에 올려놔야만 노동자의 피땀으로 종이(달러)를 사는 수고를 덜한다는 것을 안다(알다시피 중국이 산 종이는 이미 4조 달러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제 중국으로서는 다양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위안화의 기축통화화를 추진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중국의 노력은 나름대로 결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가진 달러나 미국 채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얼마까지 늘어날지 모르지만 5조 달러까지도 늘어날 수 있는 게 지금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일년 GDP가 1조 달러 수준이고, 미국의 일년 GDP가 15조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돈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다.

즉 뭐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바탕으로 돈놀이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이런 판이 중국에게도 좋을 리는 없다. 가장 큰 수출시장인 미국의 위기는 중국에 수출의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위안화의 다양한 시도

중국의 국책은행은 '중국은행'이 아닌 런민은행이다. 사진은 런민은행 본관사진
▲ 중국 국책은행인 런민은행 본관 중국의 국책은행은 '중국은행'이 아닌 런민은행이다. 사진은 런민은행 본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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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을 이전과 같은 자리에 올릴 이유도 없다. 중국은 달러 보유고와 미국 국채를 합치면 4조 달러에 달하는 돈을 조율하고 있다. 절대적인 액수는 아니지만 동조세력을 모아서 미국을 흔들 수 있는 액수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다. 과거 같으면 미국이 군사력으로 윽박지를 수 있겠지만 지금 중국의 군사력은 지구 자체를 날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할 수 있다면 스파이 전쟁인데 이 역시 미국의 개입이 드러나면 심각한 외교적 논쟁을 만들게 뻔해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세계 경제 재편의 가장 큰 키워드는 중국이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추정도 가능해진다. 실제로 쑹훙빙 등 중국 금융 전략가들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입장을 피력한다. '미국의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금본위제도처럼 신뢰할 수 있는 룰이 없다면 달러의 기축통화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달러, 유로화에 이어 국제통화로 가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홍콩, 싱가폴은 물론이고 한국 등과의 금융거래에서 위안화가 중심이 되도록 조율해가고 있다. 또 금융개방의 바로미터로 삼기위해 상하이자유무역구를 만들어 시험 중이다.

이런 시도는 우선적으로 미국 등 서방의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무역구조를 가진 지역에서는 막을 수 없다. 특히 화교경제권으로 불리는 동남아에서 그 흐름은 더욱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내 아내가 처음 중국에 도착했던 1996년만 해도 1달러는 10위안으로 거래됐다. IMF 위기 전이라 1위안을 우리 돈 9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20여 년도 안된 지금 1위안을 사기 위해서는 두배가 넘는 180원가량이 필요한 상황이다.


태그:#런민삐, #달러, #기축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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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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