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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48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 '바람으로 오소서'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종이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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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진도 팽목항에서 진도체육관으로 가는 길에 노란코스모스가 피어있다.
 3일 진도 팽목항에서 진도체육관으로 가는 길에 노란코스모스가 피어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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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진도체육관으로 가는 도로 변에 노란 코스모스가 만개했다. 이틀 동안 비가 내리자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트린 것. 꽃들은 거짓말처럼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같이 팽목항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꼭 누가 오기를 기다리며 목을 빼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바람이 불면 꽃들이 한 몸처럼 출렁였다. 가로수에 묶여있는 색이 다 바랜 노란리본을 대신하는 듯했다.

떠난 가족들 자리, 그대로 남아 있는 체육관

3일 6.4지방선거를 하루 앞뒀지만 진도는 고요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9일째다. 기적을 바라며 내걸었던 노란리본에 문구들은 거의 다 지워졌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 구조작업도 완전히 중단됐다. 한동안 옮겨졌던 팽목항 여객선 선착장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항구를 따라 길게 늘어섰던 천막들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가족들이 애타게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상황실도 자리를 옮겼고, 텅 빈 '신원확인소'에는 현수막만 펄럭였다.

시간이 지나고 실종자 숫자도 16명으로 줄면서 팽목항을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가득 차 있던 주차장은 빈자리가 더 많아졌다. 가족들의 식사 준비와, 의료지원, 이발과 빨래 등 생활지원을 위한 봉사자들이 자리를 지켰다.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임시주택이 설치되기도 했다. 두 가구가 머무르고 있는 임시주택 앞에는 슬리퍼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메시지도 대부분 치워졌다. 사람들의 메모가 붙은 게시판을 트럭이 와서 어디론가 옮겨갔다.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게시판 위에는 큰 비닐이 씌어졌다. 남아 있는 건 가족들이 남겨놓은 메시지들이다. 방파제 한편에는 기타와 축구화, 운동화 하나가 놓였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글이 기타에 남겨져 있었다. 주변에는 작은 종이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소리가 났다.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된 아들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부모들이 갖다 놓은 물건이 놓여 있다.
▲ "이제 그만 집에가자" "사랑한다" 세월호 참사 48일째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실종된 아들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며 부모들이 갖다 놓은 물건이 놓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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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네가 내 아들이라 고맙고, 자랑스럽다. 아빠, 엄마는 죽을 때까지 너랑 함께 살아 갈 거야. 영원히 사랑한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이날 아침에는 잠시 소란이 일었다. 불교계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49재가 팽목항에서 진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진도체육관에 머물던 가족들이 찾아왔다. 아직 가족을 찾지도 못했는데 49재를 지낼 수는 없었다. 팽목항에서 49재를 지내면 마치 실종자 가족들이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스님들과 100여 명의 신자들은 가족들의 의견을 듣고 팽목항 인근의 사찰로 이동해 49재를 치렀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체육관의 모습은 사람이 줄어든 것 말고 사고 초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체육관을 떠났지만 바닥에 펼쳐놓은 이부자리는 그대로 있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여기를 다 치우면 몇 분 안 계시는 가족들의 마음이 더 불편해 그냥 두고 있는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빈자리를 보는 것도 가족들에게는 아픔이 될 수 있었다.

잠수사 사망에 가족들 죄책감...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남아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바라는 건 첫 번째도 구조, 두 번째도 구조다. 전날(2일)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야당 의원들이 내려왔을 때도 가족들은 "구조부터 하라"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당신들이 국민의 대표니까,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니까 책임지겠다고 말해 달라. 올라가서 여당 의원들하고 머리 맞대고 어떻게 꺼내줄 것인지 상의해 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기대와 달리 구조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기상이 악화되면서 사고 현장에서 구조를 위한 장비들은 거의 모두 철수한 상황이다. 지난달 21일 마지막 실종자가 발견된 이후 열흘이 넘게 아무 소식이 없다. 선체를 절단하기로 결정하면서 희망이 생겼지만 지난달 30일 잠수사 한 명이 절단 작업 중 사망하자 작업은 중단됐다. 가족들은 또 한 명의 잠수사가 죽고 또 다시 망연자실했다.

애초 작업은 순조로웠다고 한다. 한참이 걸릴 것이라는 절단 작업은 2~3일 안에 끝날 것으로 예상됐고, 가족들의 기대감도 높아졌다. 하지만 잠수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은 절망했다. 평소 가족들은 자신의 가족을 꺼내주는 잠수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걱정을 많이 했다. 국정조사 특위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다 필요 없다, 내 새끼 꺼내주는 잠수사들만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만큼 잠수사가 목숨을 잃는 일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이다. 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는 "가족들이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죠? 내 새끼 한 번 안아 보려고 하는 게 잘못하는 일인가요?'라고 묻는 어머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범정부대책본부에 따르면 사고 해역에서의 수색작업은 2~3일 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선거 끝나면 과연 정치인들이 지금처럼 할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첫째날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결의문을 발표하던 야당 조사위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현장조사에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하기로 했으나 출발 직전 불참을 통보했다. 국정조사 특위 조사위원은 새누리당 심재철(위원장), 조원진(간사), 권선동, 신의진, 경대수, 김명연, 윤재옥, 이완영, 이재영 의원. 새정치연합 김현미(간사), 우원식, 김광진, 김현, 민홍철, 박민수, 부좌현, 최민희 의원.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다.
▲ 팽목항 찾은 야당 특위 위원들 '눈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첫째날인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결의문을 발표하던 야당 조사위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현장조사에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하기로 했으나 출발 직전 불참을 통보했다. 국정조사 특위 조사위원은 새누리당 심재철(위원장), 조원진(간사), 권선동, 신의진, 경대수, 김명연, 윤재옥, 이완영, 이재영 의원. 새정치연합 김현미(간사), 우원식, 김광진, 김현, 민홍철, 박민수, 부좌현, 최민희 의원.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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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앞으로 다가온 선거도 가족들에게 큰 걱정거리다. 선거가 끝나면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실종자 수색에는 더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다. 또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잠수사가 사망하는 등 안 좋은 소식이 들리면서 수색을 중단하고 인양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진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선거가 끝나고 곧 시작되는 브라질 월드컵도 가족들에게는 '불안요인'이다.

한 실종자 어머니는 "지금은 정치인들이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도 과연 그럴까?"라며 "지금 하는 모습은 다 표 얻으려고 하는 것 같다. 이제 표 얻을 일 없으면 우리도 내팽개치겠지"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 끝나면 월드컵 한다고 시끄러울 거고, 사람들도 관심이 멀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힘이 없어. 찾을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수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꼭 아이를 찾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간절했다. 한 실종자 아버지는 "지금은 꺼내도 옷 말고는 아이를 알아볼 수가 없다. 그냥 그 몸뚱어리 하나라도 찾고 싶다"라며 "오래 기다리면서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못 찾게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죽고 싶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못 찾게 된다면, 정말 못 찾는다면 내가 살아 갈 수가 없을 것 같다"라며 "그래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으로 지친 가족들의 건강도 문제다. 2일로 예정돼 있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방문이 5일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현장 의료진들은 "병이 발생한 건 아니지만, 완전히 탈진한 거라고 봐야 한다"라며 "마음의 병은 결국 몸에 병을 일으킨다. 가족들이 너무 오랜 시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한계에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태그:#세월호, #진도, #실종자, #전기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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