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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3선,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이 통일부 예산으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떠나려다가 취소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안 의원의 지역구에서 활동하는 합창단이 외교부 산하단체의 예산을 지원받아 현지에서 공연을 하고, 안 의원이 이 공연을 관람하는 게 출장의 주요 일정에 포함돼 있었다. 사실상 정부 예산으로 지역구 관리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안 의원은 19대 국회 상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장으로, 후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되는 오는 5월 말 임기가 끝난다. 국회 안팎에선 안 의원이 위원장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부처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무리하게 해외출장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이 다른 의원과 동행하지 않고 '나 홀로' 해외출장을 떠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또한 1년에 한번 배당되는 정부부처의 국회 상임위 의원 워크숍 예산을 전반기 임기가 끝나는 상임위원장이 야당과 상의 없이 '나홀로' 독식하려고 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꽃보다 누나>로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 방문도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자료사진)
 안홍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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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원은 당초 지난 7일 오후 1시 50분 대한항공 KE-955편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경유지인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불가리아 소피아,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두브로브니크를 거쳐 파리를 경유해 귀국하는 8박10일 일정이었다.

이번 출장의 예산은 통일부가 지원하기로 했고, 일정은 외교부가 현지 공관을 통해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출장 일정표를 보면, 안 의원은 먼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의원 친선외교'를 할 예정이었다. 현지에서는 불가리아 국회 외교위원장과 국회의장 면담이 예정돼 있었다. 또 불-한 의원친선협회장 등과 오찬간담회도 계획돼 있었다.

이탈리아 일정도 2박 3일이었다. 로마에선 이탈리아 상원 외교위원장 면담이, 밀라노에서는 '한-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밀라노 문화예술 교류의 밤' 행사가 주된 일정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의 2박 3일 중엔 총 4건의 공식 일정이 잡혀 있었다. 수도 자그레브에서는 크로아티아 외교아카데미 원장과 크-한 의원친선협회장 면담, 크로아티아 국회의장과 제1부총리 겸 외교장관 예방 등이 잡혀 있었다.

크로아티아에선 외교부가 마련한 일정표에 없는 '비공식 일정'도 계획돼 있었다. 최근 케이블방송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꽃보다 누나>로 잘 알려진 두브로브니크 방문이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TV로 잘 알려진 현지를 둘러보고 전직 보건부 장관이자 의사 출신인 두브로브니크 시장과 면담할 예정이었다"며 "크로아티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슬로베니아도 간 김에 둘러보고 국회의장, 외교위원장 등과도 면담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밀라노에선 지역구민 합창 관람

눈길을 끄는 것은 이탈리아 밀라노 방문이다. 밀라노 총영사관의 공고문을 보면, 안 의원이 방문하기로 예정된 11일 오후 7시 30분 현지 베르디국립음악원 푸치니홀에선 '한-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 2014 밀라노 문화예술 교류의 밤' 행사가 열린다. 이 무대에는 안 의원의 지역구 주민들로 구성된 경남CBS권사합창단 등이 밀라노 현지 동포 예술가들과 함께 설 예정이었다. 안 의원이 밀라노에서 계획한 '의원 친선외교'는 이 공연 관람과 주재원 등 현지 교민과의 만남이 전부다.

더구나 공연장 대관료도 정부 예산으로 지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외교부 산하단체인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이번 행사를 위해 지난 2월 말 베르디국립음악원 공연장 대관료 명목으로 1만 달러를 지원했다. 재단 쪽에선 "외교부를 통해 공식 접수한 재외 공관 요청사업"이라며 "문화외교, 공공외교 활동 차원에서 지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 의원 쪽 설명은 전혀 달랐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민들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연을 하신다는데 의원님께서 모르는 척 하기 어렵지 않나. 그래서 국제교류재단에 '협조'를 요청했다. 의원님 입장에서는 챙겨야 할 유권자들이어서 대관업무에 기여도 하고 함께 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국제교류재단이 대관료 예산지원을 결정할 때는, 수혜대상이 '경남 합창단'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 합창단은 경남CBS 기획국장 출신으로 이번 공연을 기획한 지아무개 장로가 마산시립여성합창단과 경남CBS권사합창단, 경남문화아카데미 팀을 합쳐 꾸린 일종의 연합합창단이다.

앞서 마산시립여성합창단은 지난 1월 이번 행사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지 장로는 국제교류재단에 예산지원을 신청하면서 마산시립여성합창단도 공연에 참가하는 것으로 서류를 꾸며 제출했다. 실체가 모호한 경남문화아카데미엔 합창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공연 기획자인 지 장로가 이 단체 소속일 뿐이다.

지 장로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10년 전부터 세계 10대 메이저급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고 싶어서 2003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3곳에서 공연했다"며 "평소 친분이 있던 안홍준 의원에게 5월엔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까 함께 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상임위원장 '나 홀로' 떠나는 해외출장

정부 각 부처는 국회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해외출장 지원을 위한 예산을 1년 단위로 따로 책정한다.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4년 예산안 가운데 해당 항목은 '통일문제 의원 국제 워크숍' 단 1건이다. 이 워크숍에는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의원 2명, 국회 전문위원 1명, 통일부 실무진 1명 등 총 4명이 참여하도록 돼 있으며, 유럽지역에서 4박 6일간 지내는데 모두 4900만 원의 예산이 편성돼 있다. 통일부 쪽은 이 예산으로 안 의원의 출장경비를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사실이라면, 원칙 없는 예산집행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해외출장 때는 대개 여야 의원이 동수로 함께 가거나, 적어도 의원 1명 이상이 동반하는 게 관례다. 상임위원장의 '나 홀로 해외출장'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이 혼자 해외출장을 떠난 사례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며 "지역구 주민들과 함께하는 일정까지 있는 것으로 볼 때, 임기 말을 앞두고 피감기관의 예산을 짜내 외유를 떠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안 의원의 유럽 출장계획에 대해선 통외통위 동료 의원들도 '뜻밖'이란 반응을 보였다. 야당 간사인 심재권(서울 강동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소속 홍익표(서울 성동을) 의원은 "세월호 참사로 국민 모두가 참담해하는 이때, 불요불급한 일도 아닌 출장을 국회 상임위원장이 꼭 가야하는지 의문"이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홍 의원은 이어 "통일부도 예산을 짰으면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했어야 하는 데, 전혀 목적에 맞지 않게 예산을 쓰려고 했다면 문제를 삼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안홍준 의원이 출장계획을 취소한 시점도 석연찮다. 당사자인 안 의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5월 연휴 전 평일(1일 또는 2일)에 취소했다"고 말했다. 출장일정을 챙겼던 하태역 외교부 유럽국장도 "출장 일정을 취소한 건 5월 2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 <오마이뉴스>가 이 문제에 대해 취재를 시작한 7일 안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4월 30일 (출장경비를 지원하기로 한) 통일부 기획조정실에 출장 취소를 통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작 황부기 통일부 기획조정실장은 "세월호 참사가 난 직후인 4월 중순에 취소했다"고 엇갈린 대답을 내놨다.

안홍준 "고민하다 일정 취소... 여전히 국익 위해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

안홍준 의원은 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취소한 출장은) 외유성이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 가려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일반 국회의원들이 해외출장 가는 것과 달리 외교위원장의 위상은 다르다"면서 "가는 김에 4개국을 잡았고 내가 외교위원장을 하면서 외국에 나가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또 "고민하다가 일정을 취소하게 됐지만, 여전히 국익을 위해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슬픔은 슬픔이고, 행사(분향 등)는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면 된다. 이제 나라를 위해 각자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오마이뉴스>가 이제는 국익을 위해 슬픔을 잊고 각자 할 일은 하자고 기사를 써달라"고 말했다.


태그:#안홍준 새누리당 의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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