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버지: 신문좀 봐라. 그래야 세상돌아가는 것을 알지.
나: 예.
아버지: 너 한문은 좀 아냐?
나: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어휴, 이건 말이다….

제가 어려서는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 신문을 봐야 했습니다. 물론 방송이 있었지만 9시 뉴스로는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문이라고 펼쳐 보면 대부분 한자로 도배돼 있어서 솔직히 보기 힘들었습니다. 띄엄띄엄 읽어내려가면 이게 무슨 소리를 하는 사설인지 혹은 보도인지 저 자신도 몰랐으니까요.

가끔 아버지께서는 아들인 저에게 '신문은 보냐, 뉴스는 보고 사냐'라며 반은 꾸중 섞인 말투로 물어보시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을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곤 합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보면서 내 아이를 본다

이제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새삼 옛 생각이 나곤 합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세상이 참 복잡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돈이 올 때면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묻고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이죠.
 이제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새삼 옛 생각이 나곤 합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세상이 참 복잡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돈이 올 때면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묻고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이죠.
ⓒ 방성진

관련사진보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직 어린 제 아이는 이것저것 하며 분주히 놀고 있습니다. 동시에 TV에서는 세월호 특집이라며 온종일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사건이 나고 방송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고 현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기자 정신이 투철하고 현장에 있어야 마땅하므로 당연히 가야겠지요. 기자들은 특종을 잡기 위해 생존 학생을 어떻게든 찾아냅니다. 아직 물에 젖어 바들바들 떨고 담요를 몸에 두른 학생을 찾아 인터뷰합니다. 따뜻한 물 한 잔은 주지 못할 망정 다시 사건 현장을 상기하게 하는 그 모습은 마치 칼에 베인 상처 속을 후벼 파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 TV를 보고, 마루에서 놀고 있는 제 자식을 봅니다. 이 아이가 커가면서 저 모습을 본다면 아빠인 저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왜 이런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지, 저 선장 아저씨는 왜 혼자만 살려고 했는지, 저 배에는 화물이 많았다고 했는데 왜 기준치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싣고 운항을 했는지, 저 선장 아저씨 회사는 어디인지 등등 수많은 질문을 할 날이 오겠지요.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지금 돌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것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말로 치부하면 끝일까요. 저 자신에게 몇 번을 자문해봐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새삼 옛 생각이 나곤 합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세상이 참 복잡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돈이 올 때면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묻고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이죠.

다시 한 번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9일째를 맞은 24일 오후 더딘 수색작업에 격앙된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당장 내 자식을 살려내라"고 항의했다.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가 이어진 가족대책본부 천막 옆으로 희생자 명단이 보인다.
▲ 팽목항 앞에 빼곡한 희생자 명단 세월호 침몰 사고 9일째를 맞은 24일 오후 더딘 수색작업에 격앙된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당장 내 자식을 살려내라"고 항의했다.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가 이어진 가족대책본부 천막 옆으로 희생자 명단이 보인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야속하게도 시간이 흘러 지금 저의 입장은 내 아버지에게 물어볼 처지가 아닌 내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때 아버지는 저에게 윽박지르시고 화를 내시기만 했는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커가는 내 아이를 보면 마냥 원망만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없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1990년대 초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는 세월호만큼이나 큰 사고였고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당시 내 아버지는 혀를 차시며 TV 속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를 보고 슬퍼하기도 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살아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도 어느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면 그대로 데자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또한 초기에 늑장대응을 했고, 지휘본부에서 희생자 집계가 잘못 됐습니다. 20년이 더 지난 지금과 어쩜 그렇게 같을 수 있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구조에 쓰이는 장비와 인력은 더 많아졌고 좋아졌는데 재난구조 능력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네 자식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답은 내가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제 나이가 적지 않고 사회의 때가 묻었지만 아주 작은 것부터 보여주기로 말이죠. 동네 건널목을 건너더라도 신호를 지키고,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끼고 고개 숙이지 않기 등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솔선수범해서 내가 보여주면 언젠가는 내 자식이 나라에 아이들이 변하고 다음 세대에는 더 나은 사회가 그들에게 오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모든 이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세월호, #교훈, #아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평범한 한 아이의 아빠이자 시민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밝고 투명한 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