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영화 포스터

▲ <방황하는 칼날> 영화 포스터 ⓒ 에코필름,CJ 엔터테인먼트


히가시노 게이고는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와 <밤의 피크닉>의 온타 리쿠와 더불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일본에서 이미 11편의 영화와 27편의 TV 드라마로 영상화되었을 정도로 그의 소설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했다. 국내에서도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와 <용의자X>가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과 만났다.

사회성 높은 문제를 자주 다루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방황하는 칼날>에서 미성년자가 저지른 범행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를 등장시킨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직접 범인을 찾아 응징하는 전개를 통해 작가는 소년법 등 일본 사법제도의 모순점을 파고들었다.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에서 마시코 소이치 감독에 의해 이미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일본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복수에 나선 아버지의 분노와 그를 잡아야 하는 경찰의 고뇌,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 채로 원작 소설의 줄기만 안일하게 쫓아갔다.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에선 정적인 연기톤으로 영혼 없는 인형이란 인상을 줄 정도로 연출과 연기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딸 잃은 아버지와 그를 쫓는 형사로 압축해 각색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상현 역을 맡은 정재영.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상현 역을 맡은 정재영. ⓒ 에코필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베스트셀러>로 데뷔한 이정호 감독은 두 번째 영화 <방황하는 칼날>을 만들면서 일본 영화와 다른 길을 걷는다. 감독은 소설에서 익명의 제보를 받고 찾아간 집에서 딸의 죽음에 관한 동영상을 본다는 설정과 마지막 광장에서의 대치상황만 놓고 다른 부분은 거의 다 바꾸었다고 밝혔을 정도로 각색에 집중했다.

각색을 거치며, 복수의 여정에 나선 아버지에게 자수를 권유하는 펜션 주인의 딸과 또 다른 사건의 피해 여성의 아버지는 지워졌다. 영화는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서 복수하리라 결심한 아버지 상현(정재영 분)과 피해자가 아닌 살인 사건 용의자로 상현을 쫓는 형사 억관(이성민 분), 두 사람의 구도로 압축됐다.

<방황하는 칼날>은 피해 여성의 아버지에서 사람(범인)을 죽인 가해자로 변하는 과정을 겪는 상현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다룬다. 영화가 시작하며 보여주는 눈으로 덮인 설원과 앙상한 나뭇가지는 상현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장면이다. 핸드헬드(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를 구사한 촬영 기법과 황량한 화면 톤 역시 상현을 심리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경찰이 해야 하는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갈등하는 형사 억관과 신참 형사 현수(서준영 분)에겐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영화 속 경찰은 기껏 범인을 잡았건만 강압 수사를 하지 않았느냐며 추궁당하고, 변호사를 동원해 여러 이유로 형량을 낮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상황을 맞이한다. 그들은 친구를 죽인 아이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큰 처벌을 받지 않는 세상을 보며 '죄에 애, 어른이 어디 있느냐'고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는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질문, '법은 절대적으로 옳은가?'

 <방황하는 칼날>에서 형사 억관 역을 맡은 이성민.

<방황하는 칼날>에서 형사 억관 역을 맡은 이성민. ⓒ 에코필름,CJ 엔터테인먼트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미성년자 범죄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미성년자이기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은 가볍기만 하다. 특히 만 14세 미만의 가해자들은 형법 적용대상이 아닌 '촉법소년'으로 간주되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이들의 범죄는 갈수록 대담해지고, 흉포해지는 실정이다.

2004년 밀양에서 13세, 14세 여중생 자매를 무려 40여 명의 남학생이 집단 성폭행한 끔찍한 사건에서 피해 학생은 가출까지 했을 정도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데 반해, 가해 학생은 5명 정도만 '보호관찰'을 받고 나머지 가해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많은 이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사회의 공기를 반영하는 영화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보았다. <시>는 가해자의 가족 시선에서 사건을 관찰했고, <한공주>는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마주한다. 그리고 <돈 크라이 마이>는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적 복수에 나선 가족을 보여주며 분노를 폭발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속 아버지의 입을 빌려 "법원은 범죄자를 제대로 심판하는가? 오히려 법원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사법 제도를 비판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상처는 생각하지 않고, 죄를 저지른 미성년자의 미래를 생각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각색을 거치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상당수 생략되는 통에, 여러 인물의 심리가 축적되어 마지막 광장 장면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극적인 상황을 재연하진 못했다. 또한, 차가운 이성을 애써 외면하고 뜨거운 감정에 호소하는 면도 크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이 던진 '법은 과연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가?'란 화두를 잘 살렸다. 현실에서 정의라고 믿는 것이 흔들리는 광경을 목격하는 지금, 영화가 던지는 정의에 대한 의문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걸까?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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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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