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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 씨
 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 씨
ⓒ 권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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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 그 미국에서도 최고의 MBA로 꼽히는 곳이 와튼스쿨이다. 그 세계 최고 MBA 와튼스쿨에서 13년 연속 최고로 인기를 끈 강의가 국내에 책으로 출간돼 베스트셀러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적이 있다.

바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이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필수불가결한 덕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글쓰기 강연을 하면서 '책을 쓰고 싶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수많은 수강생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원고 대부분은 책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책 제작비를 대는 자비출판이 아니라면, 결국 원고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측은 책 제작비를 부담하는 출판사다. 그런 이유로 출판사가 어떤 원고를 원하는지 아는 것, 즉 역지사지가 책 출간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런데 저자를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엇나간다.

"요즘 제일 많이 들어오는 투고 원고가 뭐냐면 '나는 이렇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다, 내가 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얘기해 주겠다' 이런 류의 것이에요. 일종의 처세술 자기계발서인데요. 예전에는 직장이 안정돼 있었잖아요. 회사를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짓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대기업을 뛰쳐나오는 사람들도 되게 많아요. '나는 회사 때려치우고 세계 일주를 갔다' 이런 원고도 많이 들어와요. 이런 원고 대부분은 책이 되지 못해요. 내용이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그런 쪽으로는 이미 출간된 책들도 많고요.

이렇게 비슷비슷한 원고를 주시는 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 뭐냐면, 별로 자기 점검을 안 하세요. '이 책은 나니까 쓸 수 있는 거야, 이런 책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시는데, 조금만 도서 검색을 해보면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그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과 반응도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잘 모르시고 '이 원고는 정말 놀라운 책이 될 거다, 파란을 일으킬 거다,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자신을 객관화시키지 못하는 거죠."

그 수많은 투고 원고들이 다들 자기 얘기 하기에 바쁘지만, 정작 책을 내줄 출판사가 원고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씨의 말에 따르면 이런 '묻지 마' 투고 원고일수록 필자 소개, 목차, 원고 및 콘셉트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조차 부실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험 있는 편집자들의 경우 원고를 어느 정도만 읽어도 필자의 전문성 및 글 솜씨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원고를 끝까지 다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내가 보낸 투고 원고가 거의 읽히지 않고 휴지통에 직행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투고 원고가 그나마 책이 될 가능성이 높을까.

"자기 메시지가 확실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원고의 기획이나 콘셉트가 진부하면 책이 되기 어렵습니다. 제가 그동안 이 출판사에서 20권 가까이 책을 작업했는데 그 중에 단 두 권만이 원고를 투고한 신인 저자였어요. 굉장히 적죠. 그중 한 신인 저자분이 쓴 책 제목이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입니다. 덕(德) 윤리에 관한 책이에요.

약간 인문 쪽 느낌도 나는데, 덕을 자기계발화 시켜서 '진짜 착한 것이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뤘어요. 기존의 자기계발서에는 없는 시도거든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관한 책들은 있었어요. 주로 착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당당해져야 하는지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주장의 결론은 내가 이기적이 돼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가거든요.

반면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에서는 덕 윤리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것이 선한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진짜 착한 것이란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라는 얘기를 여러 가지 사례와 인용으로 풀어냈어요. 기존에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이 없었기 때문에 원고가 출간될 수 있었죠. 한창 안철수씨가 뜨던 상황이었는데 마침 '착한 성공'이라는 책의 콘셉트가 당시의 분위기와 잘 맞기도 했습니다."

"투고로 뽑힐 확률보다 편집자의 검색으로 눈에 띌 확률이 더..."

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한 권미경씨는 여름방학 과제였던 단편소설을 마감 임박해서 허겁지겁 제출했는데, 이것이 교수님의 눈에 들어 '제2의 양귀자'가 될 재목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그런 이유로 막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교수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더욱 고무됐다. 4학년 때 이 교수님의 추천서를 들고 살림출판사 심만수 대표를 찾아가게 됐는데, 추천서에는 심만수 대표의 아내인 소설가 양귀자의 문하생으로 권미경씨를 추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심 대표에게서 '네가 글을 쓰고 싶거나 편집자를 하고 싶다면 문하생을 하지 말라'는 예상치 못한 조언을 듣게 된다. 많은 경험을 하고, 다른 직업도 가져 보고, 돈도 벌어본 후에 글을 쓰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권씨는 구성작가·카피라이터 등의 일도 하고, 글과는 관련 없는 평범한 회사를 다녀보기도 하고 기획 일도 하다가 우연히 글 다듬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게 되면서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한빛비즈 출판사에서 편집자 일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이들에 비해 편집자로서 시작은 늦었지만 다양한 인생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됐는지, 출판사 입사해 처음으로 편집한 주식 관련 책이 무려 6만여 부나 나가는 대박을 쳤다. 주식과 경제에 문외한인 자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하고 편집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입사 이후에는 주로 출판사에 쌓여 있는 원고를 편집하는 일을 했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졌을 무렵 처음으로 자신이 스스로 기획해서 저자까지 직접 찾아내 섭외한 책을 편집하게 된다. 그 첫 책이 바로 2012년 1월에 출간된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수만 권이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출판 트렌드는 출판사에서 단행본 기획을 먼저 잡고 해당 내용을 잘 쓸 수 있는 저자를 직접 물색하는 방식의 '기획출판'이 대세다. 때문에 편집자에게 더 많은 기획력이 요구된다.

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씨가 편집한 책들
 한빛비즈 출판사 편집자 권미경씨가 편집한 책들
ⓒ 권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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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주로 기획출판을 해요. 한빛비즈에서 나오는 책의 70% 정도가 기획출판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이미 검증된 저자들에게 출판 제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도 제가 먼저 기획해서 저자를 섭외한 경우인데요. 신문기사를 검색하다가 저자분이 쓴 칼럼을 발견했는데, 인문학적 내용과 경제를 연결시켜서 얘기를 풀어내신 것이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출간한 책도 있는 것을 확인해서 섭외했죠.

그래서 편집자들끼리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해요. '투고 원고로 뽑힐 확률보다 오히려 편집자의 검색으로 눈에 띌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 저자가 되고 싶은 분께 조언을 드리자면 다양한 매체에 자신의 글을 노출 시키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요즘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많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블로그 같은 곳에 꾸준히 자신의 콘텐츠를 쌓는 것이 중요해요. 설사 당장은 찾는 사람이 많이 없더라도, 내용만 괜찮으면 사람들이 조금씩 찾거든요. 입소문이 날 수도 있고 연관 검색어에 걸릴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내 글에 대한 반응을 볼 수 있잖아요. 책이 되기 전에 미리 내 글이 어떤지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기회인 거죠. 사람들의 반응이 없으면 내 글이 별로이거나 남들도 다 하는 얘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이렇게 책이 될 만한지 아니면 고쳐야 하는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미리 가늠해 볼 수 있으니 블로그라는 게 참 좋은 매개체인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눈 밝은 편집자에 의해서 픽업되는 겁니다.

솔직히 출판사에는 책으로 낼 만한 기획거리가 많이 쌓여 있어요. 오히려 기획을 잘 살릴 수 있는 필자를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검증된 저자들에게 출판제의가 몰리고 신인저자들은 점점 더 책을 내기 어려워지는 양극화 현상이 생기죠.

사실 이런 현상은 편집자도 스스로를 되돌아볼 구석이 있어요. 더 적극적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저자를 찾아야 하는데 솔직히 대부분의 편집자가 기존에 출간된 책 위주로 찾아봐요. 다른 출판사 책을 검색해서 저자에게 연락하는 거죠. 어쨌든 검증됐으니까요. 그래서 저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첫 책을 내는 것이 더 어려워지죠."

최근 출판계의 불황이 심상치 않다. 그러다 보니 자기계발서도 1만 권 나가면 성공적이라고 한다. 2쇄, 3쇄 찍어주면 선방이며 해당 저자와 다음 책을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판사들도 유명한 저자에게 몰리게 된다. 김미경, 김정운, 김난도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 저자들은 이름값만으로도 출판사에게 일정 이상의 판매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갈수록 신인에게는 문턱이 높아진다. 책 판매가 부진하니 이제 인세만으로는 대박이 어렵고, 오히려 책 출간을 계기로 파생되는 강연 기회 등에서 부가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이러이러한 강연을 하고 있는데 관련된 책을 쓰고 싶다며 원고를 투고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 같은 경우는 책이 출간되고 나서 저자에게 기업과 기관에서 강연이 쇄도했다고 한다.

"책 내고 싶은 사람들, 텍스트에 대한 책임감 가져달라"

편집자로서 저자들과 일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나 자신이 저자로서 편집자들과 자주 교류를 하다 보니 이래저래 참 흉한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대답이, 자신은 저자복이 있는지 힘든 저자가 없었다며 유쾌하게 웃는다.

가장 선호하는 저자는 마감을 잘 지키는 저자이며, 자신에게 못되게 해도 좋으니 좋은 원고를 마감 때까지만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강조한다. 한 저자는 자신이 오늘까지 글을 안 주면 성을 갈겠다고 하더니 다음 날 문자를 보내면서 '박'씨 성을 '최'씨로 갈아서 보냈다는데, 그런 경험이 켜켜이 쌓여 지금은 원고독촉 기술이 거의 채권추심 수준에 이르렀단다.

"편집자로서 이럴 때 희열을 느껴요. 자기계발서 기획은 어떤 지식을 전달한다기보다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들어야 하는 것인데요. 지금 이 사람들이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간파해서 단행본 기획자로서 그것을 맞춰줘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하고 관심 있게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되게 어렵잖아요. 오랜 고민 끝에 기획을 해서 세상에 내놓고 그것이 맞아 떨어져서 독자 반응이 왔을 때, 그런 것에 대한 희열이 있는 거예요. <경제학자의 인문학서재>도 이런 것이 맞아 떨어져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죠. 책이 나올 당시 출판계에 융합과 통섭의 키워드가 뜨기 시작했는데 딱 맞아 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권미경씨는 자신은 저자가 쓴 연애편지를 독자에게 전해주는 사람이라며, 저자를 꿈꾸는 분들도 단순히 돈벌이나 경력 쌓기 수단으로만 책을 보지 말고 텍스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책이란 그 책을 읽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 물건이니, 자신의 메시지가 활자화된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감을 충분히 고민해달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간혹 인쇄된 활자를 '후' 하고 불면 깃털처럼 공중으로 날아가 흩어질 것 같은 책들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가벼우니 활자도 가벼워지는 것이다. 깃털만큼 가벼운 1그램짜리 저자가 돼서야 곤란하지 않겠나. 몸무게는 너무 무거우면 곤란하지만 글은 좀 묵직한 맛이 있는 쪽이 좋다. 그 어떤 출판사도 1그램짜리 초경량급 저자와 계약하기를 원하는 곳은 없을 테니.


태그:#한빛비즈, #권미경, #편집자, #원고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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