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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븐숭이 애기무덤 위에 놓여 있는 양말이 눈에 밟혀 이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서둘러 글을 써본다. 영화 <지슬>이나 TV 모니터를 통해본 4·3은 이렇게 마음을 쓰리게 하지 않았다.

애기무덤돌탑의 양말과 인형 누가 갖다놓았나? 주인 잃은 애기양말과 오리인형이 애처로워 보인다
▲ 애기무덤돌탑의 양말과 인형 누가 갖다놓았나? 주인 잃은 애기양말과 오리인형이 애처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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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 기념관 가는 길에 연북정에 먼저 들렀다. 이른 아침, 조천(朝天) 때였다. 조천은 조선의 하늘 또는 궁중에 들어가거나, 천자인 임금을 만난다는 뜻이다. 이름부터 조천마을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조천마을과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조천진성이 있고 그 가운데에 연북정이 있다. 타원형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천진성은 다른 건물은 모두 없어진 채 빈터로 남아있고 연북정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유배 오거나 제주로 파견된 관리들이 고향과 임금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거나 사모의 정을 기린 정자다.

조천진성과 연북정 연북정은 조천읍과 바다가 한눈에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 조천진성과 연북정 연북정은 조천읍과 바다가 한눈에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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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戀北), 북을 사모한다는 말인데, '친북', '종북' 같은 말들이 떠오르면서 '친북정', '종북정'이라 이름을 붙여보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섭기도 하다. 이내 자괴감에 빠져 버렸다.

연북정 현판 북(임금)을 사모한다는 연북이라는 말이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한다
▲ 연북정 현판 북(임금)을 사모한다는 연북이라는 말이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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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은 사방 바닷가는 물론 한라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1949년 1월, 연북정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함덕 서우봉 넘어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자행된 학살현장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어처구니 없고 비상식적인 생각들은 생각으로 그치지 않는다. 상상이상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곤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두고 어떠한 이유로도 설명이 안 되고 용서가 안 되는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학살이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빚어졌다. 그 사람들에게 죄가 있었다면 군인과 순경, 공무원 가족이 '못 된' 것, 뭍에서 들여온 고약한 이념 올가미에 걸려 들었다는 점뿐이다.  

연북정이 그날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던 현장에 닿았다. 북촌리 너븐숭이 4·3유적지다.  너무 일러 기념관은 문이 닫혀 있고 기념관 앞마당에 애기무덤만 적적한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너무 어려 아직 이름도 올리지 않은 아이, 두세 살 배기 애기를 포함하여 모두 20여기의 애기무덤이 모여 있다.

애기무덤  무덤 한쪽에 주인 잃은 양말이 애처롭게 놓여있다
▲ 애기무덤 무덤 한쪽에 주인 잃은 양말이 애처롭게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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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나 부녀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 모두를 몰살한 증거다. 어른들 시신은 겨우 살아난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되었고 아이들 시신은 임시 매장한 상태로 지금까지 여기에 남아 있다. 누가 갖다 놓았을까? 무덤 한편에 있는 애기양말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네모난 블록은 평화(PEACE)와 전쟁반대(NO WAR, the WAR 無), 비폭력(NO VIOLENCE)을 외치고 있다. 내 눈엔 'NO VIOLENCE'가 제일 먼저 띈다. 국가권력의 불법적 사용은 폭력이다. 토벌대와 무장대와의 싸움은 일반 제주사람들에게는 관심 없었는지 모른다. 제주사람들에게는 'NO WAR'보다 'NO VIOLENCE'가, 더 나아가 'PEACE'가 절실했을 게다.

NO VIOLENCE 비폭력! 국가권력의 불법적 사용은 폭력이다
▲ NO VIOLENCE 비폭력! 국가권력의 불법적 사용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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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무덤 옆에는 오목하게 쏙 들어간 밭, 옴팡밭이 있다.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이 밭에는 4·3의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기념하는 '순이삼촌문학비'가 서 있다. 그 앞에는 총살 당한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듯 비석들이 절규하며 쓰러져 있다. '순이삼촌비'만 꼿꼿이 서서 그 때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려 하고 있다.

옴팡밭과 순이삼촌비 너븐숭이 학살의 한 현장, 널브러져 있는 비는 희생자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 옴팡밭과 순이삼촌비 너븐숭이 학살의 한 현장, 널브러져 있는 비는 희생자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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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당시 옴팡밭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다. 다랑쉬오름 가는 길가 밭에 널브러져 있는 무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비극일지 모른다.

밭에 널브러져 있는 무 옴팡밭에는 무 밭의 무처럼 희생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다
▲ 밭에 널브러져 있는 무 옴팡밭에는 무 밭의 무처럼 희생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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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을 지나 용눈이오름으로 조금 가면 다랑쉬마을이 나온다. 4·3때 마을이 전소되어 사라진 마을이다. 하얗게 말라가는 팽나무가 마을 운명을 대변하고 있다. 토벌대 마냥 대숲이 마을 곳곳에 주인 없는 집을 점령하고 있다. 감나무와 대나무는 사람과 함께하는 나무다. 대숲만이 여기가 마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다랑쉬마을표지석과 팽나무 하얗게 말라가는 팽나무는 마을의 운명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 다랑쉬마을표지석과 팽나무 하얗게 말라가는 팽나무는 마을의 운명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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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눈이 오름 방향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다랑쉬굴이 있다. 다랑쉬굴에서 시신이 발견된 것은 1992년 4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이 1명, 여자 3명을 포함하여 11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아이와 부녀자가 포함된 가족 단위의 희생자들이었다. 군경합동 토벌대가 굴 입구에 불을 지펴 참혹하게 질식사했다.

 다랑쉬굴 가는 길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가슴시리도록 평화롭다. 멀리 용눈이오름이 보인다
▲ 다랑쉬굴 가는 길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가슴시리도록 평화롭다. 멀리 용눈이오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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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4·3의 학살을 피해 다니던 하도리·종달리 해안마을 사람들로 1948년 12월에 희생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발견 당시 동굴 내부에는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 물허벅, 요강 등 생활용품과 낫, 곡괭이, 도끼, 호미 등 농기구가 함께 발견되었다. 참혹한 실상이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 시신이 수습된 뒤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

 다랑쉬굴 무엇이 그리 두려웠던 걸까? 콘크리트로 봉쇄하여 아픈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 다랑쉬굴 무엇이 그리 두려웠던 걸까? 콘크리트로 봉쇄하여 아픈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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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고등학교 때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친구는 술만 먹으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제주 사람, 현기영 작가도 4·3으로 적지 않은 정신적 상처를 입어 말을 더듬고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들었다.

제주도에서는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친척이나 이웃어른들을 남녀를 따지지 않고 모두 삼촌이라 부른다. 소설속의 '순이삼촌'은 4·3의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되는데 제주에는 아직도 수많은 '순이삼촌'이 존재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내 친구도, 4·3을 세상에 끄집어 낸 현기영 작가도, 결국 자살을 선택한 '순이삼촌'과 같은 수많은 제주사람들, '연북'이나 무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하여 자괴감에 빠지는 나도 우리의 비극적 현대사의 희생자들이다.

콘크리트 몇 톤으로 비극적인 역사를 덮을 수도, 상처를 치료할 수도 없다. 치료하지 않은 상처는 곪기 마련이다. 4·3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지금의 제주사람들에게 그 트라우마를 없애주기 위해서는 더 철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희생자들이나 그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중요하다.

그러나 편협하고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잣대, 붉은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냉소적으로 보는 눈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이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 글로 붉은 안경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맑은 안경으로 바뀌고, 가슴 속에 박힌 제주사람들의 응어리를 100만분의 1이라도 풀어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깐 들렀다 획하고 떠나가는 객의 마음도 이런데, 이 땅에 터 잡고 살아가는 제주사람들의 마음은 어떨지, 제주 땅에 왔으면 여기에 잠시라도 들러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 이 땅에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보이는 게 아닐까? 새삼 영화 <변호인>의 대사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는 말이 내 귀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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