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슈리성(首里城)은 일본 오키나와 나하(那覇)에 있는 옛 류큐왕국(琉球王國)의 고색창연한 왕성이다. 슈리성을 가려면 나하시의 모노레일인 유이레일(ゆいレール)을 타고 최종 종착역인 슈리역(首里駅)에서 걸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슈리성 부근의 역사유적을 꼼꼼이 살펴보기 위해서 다른 길을 택했다. 우리는 류큐왕국의 왕들이 잠든 왕릉, 타마우돈(玉陵)을 먼저 둘러보고 천천히 걸어서 류큐의 왕들이 살던 슈리성으로 역사탐방로를 걸었다. 

우리는 슈리성 입구에서 슈리성 공원 안내도를 보며 우리의 답사길을 확인하고 슈리성 입구 안쪽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류큐 왕국 당시 류큐인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 있다.

슈레이몬 앞에서 여행자들을 상대로 전통의상 사진을 찍어준다.
▲ 류큐 전통의상 입기 슈레이몬 앞에서 여행자들을 상대로 전통의상 사진을 찍어준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 곳인데,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기념사진 가게의 젊은 여주인이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전통의상을 입은 이 여인들은 관광객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찍어주고 수입을 챙겼다. 관광객들을 호객하는 그들에게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지나쳤다.

수많은 성문으로 둘러싸인 요새, 슈리성을 들어서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슈레이몬(守禮門, しゅれいもん). 1500년대에 지어진 슈리성의 정문인 슈레이몬은 1933년에 일본의 국보가 됐다가 아쉽게도 오키나와 전투 때 소실된 뒤 복원됐다. 이 빨간 문은 슈리성의 상징과도 같다.

오키나와는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2000엔 기념 화폐를 만든 적이 있는데, 이 일본 2000엔 지폐에까지 등장하는 귀한 존재가 바로 이 문이다. 류큐왕국 당시 문의 중앙은 왕과 귀족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이었고, 양 옆 문은 일반인들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여행자들이 신분 구별 없이 자기가 걷는 방향대로 편하게 슈레이몬을 통과하고 있다.

이젠 신분 구별이 없는 문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뜻을 담은 정문이다.
▲ 슈레이몬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뜻을 담은 정문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문의 편액에 금색의 한자로 쓰인 '슈레이노크(守禮之邦)'애서 당시 류큐왕국이 예절을 중요시하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향해 동방예의지국임을 자랑했듯이 중국에 조공하던 류큐도 예를 지키는 나라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의 형태도 중국 여행 때 봤던 중국 내 유적지 정문과 많이 닮았다.

중국 황제의 책봉사를 환영하던 문이다.
▲ 칸카이몬 중국 황제의 책봉사를 환영하던 문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슈리성은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을 통해 외곽과 내곽의 이중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곽에서 슈리성의 성곽 내에 들어가는 첫 문은 칸카이몬(歓会門)이다. '칸카이(歓会)'는 환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옛 슈리성을 찾아온 중국 황제의 책봉사(冊封使)를 환영한다는 의미로 이 성문의 이름이 붙여졌다.

성문마다 당시 중국 사신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름들을 붙인 것을 보면서 강대국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류큐인들의 비애가 느껴진다. 15세기 말에 세워진 이 문은 문 양쪽에 시사(シーサー) 상이 있다. 이 시사는 슈리성 안에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악령을 내쫓고 있다. 시사가 서 있다는 것은 이 문이 왕의 집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입구라는 뜻이다.

성문 앞의 관리인이 류큐 전통의상을 입고 여행자들을 맞는다.
▲ 류큐 전통의상 관리인 성문 앞의 관리인이 류큐 전통의상을 입고 여행자들을 맞는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칸카이몬 앞에서 테러를 경계 중이라는 관리원은 고풍스러운 류큐 전통의상을 입고 환한 미소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성곽을 향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높은 경사 위에 즈이센몬(瑞泉門)이 보인다.

계단은 몇 개 안되지만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상당히 높아 보인다. 1470년에 세워졌다가 오키나와 전투 때 문의 누각이 소실됐지만, 1992년에 복원됐다. 이 역사적인 고도의 아름다운 성문도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 당시에 보존되지 못하고 폭파됐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상서로운 샘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문이 시각적으로 상당히 높아 보인다.
▲ 즈이센몬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문이 시각적으로 상당히 높아 보인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즈이센(瑞泉)'이란 상서로운 샘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문 앞에 있는 용수 '류히(龍樋)'에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문을 바라보고 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 한쪽에 물이 솟아나오는 작은 샘이 있는데, 이 샘이 '류히'다. '류히'는 계단 옆에 숨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우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높은 지대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는 사실은 신기하다기보다 신비롭다.

높은 언덕 위 마르지 않는 샘물은 신비함의 대상이다.
▲ 류히 높은 언덕 위 마르지 않는 샘물은 신비함의 대상이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류큐 왕국 당시 이 우물물은 류큐 국왕이 마시는 왕궁의 식수로 사용됐다. 외국에서 사신이 류큐 왕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이 용수를 사신들의 숙소까지 배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식수로 사용되지는 않고 많은 여행자들이 소원을 비는 곳이 됐다.

이곳이 소원을 비는 곳이라는 것은 우물 옆에 떨어져 있는 동전들을 보고 알 수 있다. 우물의 존재를 모르는 아내가 즈이센몬으로 향하는 계단을 이미 올라가고 있어서 나는 류히를 급히 사진에 담고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중국에서 약 500년 전에 가져왔다는 돌로 만든 용머리가 쉴 새 없이 맑은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1992년에 복원된 제3관문, 로코쿠몬(漏刻門, ろうこくもん)도 지났다. 나는 수많은 성문을 지나 요새의 정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왕국의 정전을 향하는 서문의 하나인 코우후쿠몬(廣福門)이 시야를 막고 우뚝 서 있다. 수겹의 방어막이 왕성을 물 샐틈 없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로코쿠몬(漏刻門) 상부에는 이름대로 물을 담은 통이 설치되어 물이 떨어지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가 있었고, 특정시간이 되면 관리가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로코쿠몬 왼쪽의 성벽 끝이 마치 버선끝 마냥 부드럽게 돌출된 곡선미가 독특하고 여유롭다. 이 성문 앞에서는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도 왕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가마를 내렸다고 한다.

해상왕국 류큐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면?

굽이치는 성곽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
▲ 슈리성 성곽 굽이치는 성곽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와 아내는 로코쿠몬 옆의 성곽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슈리성은 왕이 살던 성이었지만 높은 산 위에 지어져 마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이 세운 산성 같이 육중하다. 이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슈리성은 더욱 산성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슈리성 서쪽 언덕 위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벽들 사이로 방금 지나온 성문들이 내려다보인다. 미군의 폭격에도 살아남은 역사 오랜 검은 빛 석회암 성벽돌과 최근에 복원한 석회암 성벽돌이 역사를 되돌아보듯 서로 맞물려 쌓여 있다.

이 위에서 보니 나하 시내 너머에 바다가 바로 보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키나와 바다는 가까운 곳에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 사라진 왕국의 왕성에서 바라보이는 바다는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처량하리만큼 아름다웠다.

이 언덕 위 전망 좋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류큐왕국이 사용하던 해시계, 니치에이다이(日影台, にちえいだい)가 있다. 방금 지나온 로코쿠몬(漏刻門)에는 물시계가 있고 이 언덕 위에는 또 해시계가 있다. 이 해시계는 류큐 왕국이 멸망하던 당시인 1879년까지 계속 사용됐다.

산 위에 이토록 거대한 왕성을 짓고 해시계까지 사용하고 치수시설까지 만들었던 류큐 왕국은 그저 작은 섬나라는 아니었을 것이다. 해시계를 만드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던 류큐왕국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면 동아시아 문화가 더 다양했을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종의 명문에는 조선과 교류하였음이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 종각 종의 명문에는 조선과 교류하였음이 자랑스럽게 적혀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이 언덕 위 넓은 마당 위에는 도모야(供屋, ともや)라는 종각이 있다. 종각 안에는 본래 세이덴(正殿) 앞에 걸려 있던 종이 있는데, 현재의 종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동양 여러 나라의 종들은 그 모양새가 나라마다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 오키나와의 종은 우리나라의 종에 비해 조금 작고 길쭉하게 생겼다. 이 종의 이름은 아주 길다. 종의 이름은 반코쿠신료노카네(萬國津梁之鐘, ばんこくしんりょうのかね). 즉 이 종은 류큐가 여러 나라의 나루터와 다리, 즉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종에는 '류큐는 남쪽 바다의 아름다운 나라이며, 조선, 중국, 일본 등 만국의 가교 역할로 무역에 의해 번성하는 나라다'라고 적혀 있다. 여러 나라에 끼여 살았던 류큐의 역사답게 이 종에 많은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이다.

종의 안내문에 여러 나라 중 유독 조선을 가장 앞에 둔 게 눈에 띈다. 류큐를 둘러싸고 있던 3국 중에 조선이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였고 문화 선진국이었던 조선과의 먼 해로를 따라서 교류를 했음을 과시하고 싶은 것 같다. 류큐는 사실 한때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해 왕성하게 교역하고 조선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해상왕국이었다.

폐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공간

언덕마다 수많은 성문을 지났지만 복을 널리 퍼지게 한다는 코우후쿠몬(廣福門)이 또 나타났다. 이 목조문은 가장 큰 문 중의 하나이며 호적관리를 하는 동쪽 건물과 절 등을 관리하는 서쪽 건물의 한 가운데에 있는 문이다.

유난히 높고 넓어서 문이 마치 창고건물같이 보인다. 문의 검붉은 색상이 인상적인데 이 붉은 색의 왕성은 일본의 왕성보다는 중국 자금성 기와건물들의 색상을 연상케 한다. 코우후쿠몬만 지나면 드디어 슈리성의 세이덴(正殿)을 둘러싸는 주요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둘러본 슈리성의 구역은 무료 입장이지만 국왕이 살던 핵심구역인 세이덴(正殿)에 들어가려면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오키나와에는 신용카드로 결제하지 않고 현금으로 받는 곳들이 많은데, 이 세이덴 입장료는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했다.

그동안 일본 엔화 현금이 자꾸만 줄어들어 엔화 현금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기에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일본 엔화를 아끼고 신용카드를 꺼냈다. 입장권을 사면서 한글로 된 슈리성 안내 팸플릿을 받아 정전 안에서의 동선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세이덴(正殿)에 연결되는 마지막 문, 보신몬(奉神門) 뒤로 드디어 왕이 살던 공간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보신문에는 세 개의 입구가 있다. 우리나라 왕궁과 같이 중앙의 문이 국왕이 드나들던 문이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가운데 문을 통해 세이덴 앞으로 들어섰다. 눈 앞에 폐쇄적이면서도 참 아름다운 광장이 펼쳐졌다. 이 정전 앞마당의 이름은 우나(御庭)이다. 슈리성 우나는 세이덴(正殿), 난덴(南殿), 호꾸덴(北殿), 그리고 보신몬(奉神門) 등으로 둘러싸여 '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높은 산위에 건물들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구조 속에 있어서 그런지 더욱 비밀스럽고 은밀해 보이는 공간이다.

우나 앞에 정면으로 웅장하게 자리 잡은 건물이 정전인 세이덴이다. 벽면과 기둥, 그리고 지붕 기와의 색깔이 온통 붉은색 일색인 것이 내 눈에 강하게 각인되는 것 같다. 세이덴은 중국 황궁의 화려한 건축양식과 일본의 간결한 건축양식이 혼합돼 독창적인 류큐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건물을 뒤덮은 붉은색은 중국의 영향이요, 기와 건물 1층의 전면 중앙에 전면을 바라보는 곡선의 기와지붕은 전형적인 일본 양식이다. 우리나라 서울의 왕궁 정전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에 이 세이덴은 묘하게도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남국의 태양이 강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서쪽에 있는 중국을 바라보기 위함인지, 아니면 지형상 그렇게 만든 것인지 수수께끼다.

슈리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세이덴 전면에는 류큐 석회암으로 만든 돌계단이 있고 돌계단 양쪽 끝에는 용이 조각된 기둥 한 쌍이 우뚝 서 있다. 돌계단 제일 위 난간 끝에는 조금 더 작은 한 쌍의 용기둥이 서 있다.

곡선 지붕의 처마 아래에는 황금빛의 화려한 두 마리 용이 구름 속에서 중앙의 화염 보석을 마주보고 포효하고 있다. 세이덴을 장식하기 위해 곡선 지붕 중앙과 치미(鴟尾)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듯한 용머리 기와가 박혀 있다. 이 수많은 용들은 이곳이 류큐의 왕이 거처하고 일을 보던 곳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류큐의 왕은 슈리성의 용으로 남아 여기저기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키나와 여행의 하이라이트

단체기념사진을 찍는 중학생들의 모습이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 슈리성 세이덴 단체기념사진을 찍는 중학생들의 모습이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슈리성의 세이덴 앞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서 기념사진을 한 장씩 남기고 오는 명소다. 일본 본토에서 수학여행 온 중학생들이 모여서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맞추고 있다. 슈리성에는 일본 각지에서 수학여행을 온 단체 학생들이 많다. 이곳이 오키나와를 통틀어 여행 1번지이자 여행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지시에 따라 줄을 서서 단체사진을 찍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우리나라 학생들과 똑같다. 얄미운 나라 일본이지만 일제시대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와 닮은 모습이 너무나 많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지금 학생들이 서 있는 우나(御庭)는 신년하례식이나 주요 행사가 개최되던 역사적 장소였다. 중국 사신의 환영식 등 외교 행사도 이곳에서 열렸다. 붉은색으로 진하게 포장돼 세이덴으로 연결되는 우나의 중앙 통로는 왕과 중국 사신 등만 걸을 수 있는 귀한 길이었다. 우나의 바닥은 타일이 깔려 있는 현대 미술작품같은 세련미가 있다. 마치 횡단보도 같이 생긴 왕의 마당을 보면 어디선가 차가 지나갈 것 같고 차가 오는지 살피면서 걸어야 할 것만 같다. 어정을 가로질러 보신몬과 세이덴을 잇는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수평선이 생기도록 깔아놓은 기와는 '센(sen)'이라고 불린다.

붉은 기와로 경계지어진 센은 신분 서열의 경계를 의미했다.
▲ 세이덴 앞의 센 붉은 기와로 경계지어진 센은 신분 서열의 경계를 의미했다.
ⓒ 노시경

관련사진보기


나중에 호꾸덴(北殿)의 슈리 왕조 정월의식 미니어처를 보면서 나는 이 '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됐다. 이 횡단보도 같이 생긴 줄은 신하들이 행사 시에 줄을 맞춰 앉기 위함이었다. 빨간 줄에 맞추어 계급 서열에 맞게 신하들이 정렬해서 앉아 있는 경계선이 빨간 줄이었다. 이들은 관직의 품계에 따라 다른 색상의 옷을 입기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신하들이 정렬해 있는 것을 보면 류큐가 작지만 한 나라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줄을 맞춰서 계급을 구분하던 사회. 당시 류큐와 다르지 않았던 신분사회였던 조선의 역사가 머리에 떠올려진다.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이 '센'과 같이 신분의 벽이 있었다면 얼마나 희망 없는 세상을 살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센'을 보면서 자유로이 여행하는 나의 영혼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다. 이제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는 '센'을 보니 인간 만사는 참 허무하고 쓸쓸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슈리성의 정전, 세이덴 안으로 힘차게 들어갔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오키나와, #나하, #슈리성, #세이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