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찬호 지음)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누구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 말, 책 제목이기도 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참 듣기 민망한 말이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차별을 찬성한다고? 이것이 사회의 약자와 불의와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보이며 열심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외칠 것같은 이십대가 품은 생각이라고 말한다면 참 많이 당황스럽다. 요즘 이십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아니, 요즘 이십대는 어떤 세상 속에서 사는 걸까? 궁금하다, 참 많이.

우리는 진심으로 차별에 찬성합니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적잖은 이십대 청년들이 '진심으로' 차별을 찬성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또 걱정스러운 맘이 든다. 그건, 이 시대 약자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 약자들이 자신들이 장차 기대하는 정규직 일자리 문제에서 한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눈물 쏙 뺄 만큼 그들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요즘 이십대가 '괴물'이 되었다고 말하는 지은이가 느끼는 시대 유감은 이런 이중성에서 비롯한다.

부당한 차별 구조 속에서 정당한 차별을 꿈꾸는 이십대의 불편한 속내

서강대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은이 오찬호는 경기도 소재의 한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을 강의하며 겪었던 일을 시작으로 말문을 연다. 그리고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를 주제로 한 2008년 어느 날 그의 강의에서 벌어진 상황은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 시대 이십대가 어떤 세상을 살며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지은이의 말을 빌려 이날 강의의 주제가 된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사건의 핵심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사안의 내용을 잠깐 보자면, 2004년도 최초 채용 당시 정규직 전환을 보장받고 들어왔다는 여승무원측과, 그런 적이 없고 노동자들은 분명히 계약직임을 알고 들어왔다는 사측, 이 두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문제였다. 사측이 위탁업체인 철도유통(구 홍익회)의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했으나, 애초의 약속고 다르다며 승무원들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 2006년 3월부터 350여 명의 여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정규직 직접채용'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는데, 이에 사측이 강경한 입장으로 일관하면서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15)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그는 서로 다른 의견이 맞서는 '토론'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이 사건의 모든 정황상 사측이 잘못한 거다'라는 전제 아래 '누가 옳은가?'가 아닌 '뭘 잘못했는가?'의 문제로 토의에 가까운 논의를 벌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예상한 것과 비교해 강의는 엉뚱한 상황으로 흘렀다.

위 사안에 대해 한 학생이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하고 강의실 학생들이 대부분 그 말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보며, 지은이는 '효율성'에 민감한 경영학과 수업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사회학 분야 강의에서 대다수 학생들이 그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자 놀랐다. 적어도 이십대는 사회 약자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사회 개혁과 진보에 실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관심은 보일 것 같은데, 그날 강의실의 학생들 반응은 이런 일반적인 생각에 급히 찬물을 끼얹은 셈이었다.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했던 학생은 자신을 두둔하는 강의실 분위기를 느꼈는지 더욱 세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고 한다.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학생들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합니까? 정규직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이 책, 18)

지은이는 그날 강의실에서 보인 한 학생의 의견과 강의실 분위기에 어울리는 어느 이십대 청년의 인터넷 글을 보여주며 요즘 이십대가 어떤 세상을 살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승무원들은 철도 유통소속 계약직인 걸로 알고 들어갔습니다, 지금 철도공사 정직원으로 전환해달라는 것이 가장 주를 이루는 요구사항인데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 공사 들어가기 엄청 어렵습니다. (...) 남들 몇 년씩 어렵게 준비해서 토익 900점 넘기고 어렵게 공사 들어가는데 (...) 정직원을 넘보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볼 수 있죠? 노력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승무원 여러분들은 철도공사 정직원이 되고 싶으시면 시험을 치고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십시오.(이 책, 19)

이 인터넷 글을 잘 들여다보면 좀 더 생각해봐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보인다. 꼭 지은이 말을 들어보지 않더라도, 이 인터넷 글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위 글은 여승무원들이 무리한 요구가 아닌 부당한 요구를 한 거라고 말한다. 정직원이 되기 위한 노력과 준비를 한 게 아니니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정직원에 도전하라고 충고도 한다. 토익 900점이 상징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땀과 노력에 걸맞는 준비를 하지 않고 갑자기 정규직에 무임승차하는 것 같은 행동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잘 들여다보면, 이 인터넷 글은 정규직과 비정규직(또는 계약직)은 서로 섞여서는 안 되는 서로 다른 계층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 일자리의 상당수는 비정규직이기에 취업 현장에 들어설 수많은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이 비정규직 일자리에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는 점이다. 정부쪽 생각이 많이 들어갔을 통계자료에서조차 30퍼센트가 넘는 일자리(약 600백만 개)가 비정규직이라는데, 이 수치를 조금이라고 줄이고자 한다면 언젠가 ktx여승무원의 경우처럼 비정규직이 되어 그들과 비슷한 상황을 겪을지모를 이십대 청년들이 ktx여승무원들의 요구에 당연히 공감할 것 같은데 실제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는 데서 지은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책 지은이는 예상과 다른 이십대 청년들의 생각과 반응을 보며 2008년부터 시작해 2012년에 마친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준비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겪는 사회 상황과 그에 따른 그들의 사고 방식 변화를 살펴보며 시대 상황에 쫓겨서 그리고 어느덧 스스로 자기 자신을 옥죄는 '괴물'이 된 이십대를 들여다보았다.

대졸자 비경제활동률이 26.7퍼선트였던 2003년에 비해 2011년 기준으로 42.9퍼센트까지 뛰어올랐다니 요즘 이십대는 처음부터 어려운 취업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정규직이 되는 길은 좁고 또 들어가기 어렵다. 그러다보면, 정규직이 되기 위한 노력과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그에 따른 불안감과 그 불안감을 이용하는(!) 일들이 벌어지며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거나 작은 것에도 민감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결국 일종의 악순환의 고리가 생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회 약자의 고민과 외침에 선뜻 공감하기 어렵고 연대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문제의 뿌리는 이런 데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십대는 우선 대학생들인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대학진학률이 2000년대 들어 70~80퍼센트를 기록해온 것을 생각해보면 이 시대 이십대들이 상당히 대학 졸업과 취업 사이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 시대 상당수 아니 대부분의 이십대가 겪는 문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이십대의 생각은 좁아도 너무 좁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한정된 취업 상황과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시대 상황에서 비롯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렵고 고단한 취업 상황 속에서 공감과 연대가 아닌 경쟁과 성공을 목표로 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십대가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이 바라보는 이십대의 속내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섞이지 말아야 할 고정된 계층 구조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대학 시절부터 학교간 서열이며 학과간 서열이며 지역간 서열을 당연시하듯 생각하며 그런 구분을 드러내어 확실하게 해두려는 행동을 하는 것도, 학과나 과목이나 취미 등등 많은 것이 이력서를 채울 점수로 환산할 수 없으면 무시당하거나 도태되는 것도, 시대 자체가 만들어낸 문제와 상황을 문제로 여기고 대응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자가 되기 위해 끝모를 자기 계발의 함정과 고리에 빠지며 상대적 우월감과 패배감을 만들어내고 빠져드는 것도 결국 다 어렵고 고단한 취업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 시대 상황과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이십대 젊은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과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서라도 개인의 성공(살아남는 것, 정규직이 되는 것)을 절대적 지상 과제로 삼는 '괴물'이라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 책의 부제는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다.

이십대의 속내가 궁금하다면 사회의 속내를 봐야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개개인의 문제점보다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취업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같은 세상을 보며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보지 않는 한 개개인 간에 어느 순간 이유도 알 수 없는 경쟁과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안정된 직업(정규직)이 갈수록 줄어드는 고단한 취업 상황이 이 시대 이십대가 바란 것도 아니고 만들어낸 것도 아니기에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해결책을 찾는 것도 이십대 개개인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다. 이십대의 슬픈 자화상을 바라보는 것도 사회 전체의 문제점 위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 책, 이십대의 자화상을 들여보다며 동시에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게 만든다. 진짜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 전체를 먼저 바라봐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이 시대 이십대가 '괴물'이 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 유감, 이 책의 진짜 출발점이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펴냄. 2013. 12. 1만4천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2013)


태그:#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