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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사망한 여군 대위 재판과 관련해 증거인멸 의혹이 일고 있다.
 상관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사망한 여군 대위 재판과 관련해 증거인멸 의혹이 일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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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여군에게 지속적인 성추행과 가혹행위를 해서 자살에 이르게 한 혐의(군 형법상 군인 등 강제추행, 폭행, 직권남용, 가혹행위 모욕 등 혐의)로 기소된 육군 소령의 소속부대가 재판부에 혐의사실을 입증할 기록이 삭제되었다며 제출하지 않고 있다가 선고공판을 앞두고 뒤늦게 기록의 존재를 인정해 재판방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가해자 측에서 제출한 출입기록은 사건직후 유족 측이 이미 확보했던 기록과는 달라 위·변조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6일 강원도 화천 육군 제 15사단에 근무하던 여군 오아무개 대위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 대위의 유서와 일기, 주변인들의 진술로 '상관인 노아무개 소령이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10개월 동안 매일 야근을 시키면서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오 대위는 약혼자가 있었고 결혼을 앞둔 상태였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10월 24일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이 오 대위의 유서를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유서 공개 직후 2군단 헌병대는 노 소령이 오 대위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과정에서 노 소령이 다른 여군 장교·부사관 4명과 남성 병사 1명에게 가혹행위 및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폭언을 하고 폭행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으며, 이중 2명이 노 소령을 고소했다.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시작된 1심 재판(2군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증인들은 가해자 노 소령이 오 대위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행사했으며 모욕을 일삼았다고 증언했지만, 노 소령은 성추행 가해 및 폭행 사실을 전부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부대, "출입 기록 없다"더니 뒤늦게 "있다"... 위·변조 의혹까지

논란은 15사단이 피해자 오 대위의 부대 출입 기록이 삭제되었다는 이유로 재판부에 관련 기록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비롯됐다. 오 대위가 노 소령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자, 10여 개월 동안 야간 근무를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유서를 남겼기 때문에 오 대위의 출입기록은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된다.

15사단 측은 '오 대위는 이미 사망했고, 기소된 노 소령은 휴직상태이기 때문에 출입기록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재판부는 출입기록이 삭제되었다는 15사단의 통보를 받아들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음을 군판사가 확인했다.

그런데 지난해 사고 발생 직후 부대관계자로부터 출입기록 사본을 받아 보관하고 있었던 유족 측으로선 원본이 남아있지 않다는 부대의 설명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결국 지난 2월초 유족측은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던 출입기록 사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변호인측도 출입기록 사본을 제출했다.

원본은 사라지고 없는데 피해자측과 가해자측이 모두 사본을 제출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 돌연 15사단은 출입기록의 백업 파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군 검찰관에게 알려왔다. 부대출입기록은 위병소 컴퓨터뿐만 아니라 관리 서버, 부대 정보처 등에도 남게 되어있어 이 기록이 자체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뒤늦게 알고 자료를 제출했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민주당 김상희, 서영교, 유승희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과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으로 자살한 여군대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가해자 노모 소령에 대한 증거인멸과 재판방해 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성추행으로 자살한 여군 대위 사건 기자회견 민주당 김상희, 서영교, 유승희 의원, 정의당 박원석 의원과 군인권센터 관계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으로 자살한 여군대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가해자 노모 소령에 대한 증거인멸과 재판방해 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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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은 또 있다. 가해자 노 소령 측에서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다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피해자 오 대위의 출입기록 사본에는 잦은 야근을 했다는 오 대위의 유서 내용과는 달리 대부분 정시 퇴근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이는 유족 측이 확보하고 있는 출입기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어느 한쪽의 출입기록 사본이 위변조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18일 군인권센터와 민주당 김상희, 박혜자, 유승희, 서영교, 정의당 박원석 의원 등 국회의원 25명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가해자 노 소령을 엄벌에 처하고 증거인멸과 재판방해 행위에 대한 즉각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15사단이 오 대위의 부대 출입기록 원본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가 선고공판을 앞두고 뒤늦게 존재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변호인 측이 유족 측과 상이한 내용의 출입기록 사본을 제출한 것에 대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이는 증거인멸을 시도해 재판을 고의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유족 측의 법률 대리인은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문서제출 명령을 했는데도 삭제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출입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던 부대 측이 유족들이 기록이 없어진 것을 문제 삼은 지난주 이후에야 백업 파일을 찾았다고 태도를 바꾸었다"면서 "가해자 변호인측이 제출한 출처불명의 기록도 피해자가 정시 퇴근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재판부를 의도적으로 기망하고 사실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육군측은 "재판부의 문서 제출 요구를 받은 부대 장교가 검색권한이 제한되어있어 해당자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자 출입기록이 없는 것으로 오인해 '계정삭제로 출입 기록이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재판을 방해할 목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노 소령에 대한 선고 공판은 오는 20일 열릴 예정이다.


태그:#여군 대위 자살, #가혹행위, #성추행, #군사쟆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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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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