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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어릴 때 소와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름날 동네 아이들은 각자의 소를 몰고 산으로 갑니다. 고삐가 소의 발에 밟히지 않도록 뿔에 잘 감아 맨 다음 산에 풀어놓습니다. 소가 온 산을 오가며 자유롭게 배를 채우는 오후 한 나절, 아이들은 멱을 감거나 돌을 불에 달궈 감자를 구어먹습니다. 

그 시절 소는 한 집안의 맏아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농업용 장비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농사의 시작부터 추수가 끝날 때까지 사람의 열 곱 이상 몫을 하는 일꾼이었고 재산을 증식하는 제일 큰 수단이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송아지를 내다 팔아 아들 대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대학이 상아탑(象牙塔)이 아니라 우골탑(牛骨塔)이었던 이유입니다.

소는 일철에 사람 이상으로 고된 일을 감당해야 했지만, 동네 아이들을 따라 나선 여름 한철은 온 산을 누비는 자유가 허락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어둑새벽 첫 일과는 소의 꼴베기였고 겨울나기의 으뜸도 소의 여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송아지를 우시장에 내다 팔고 난 뒤 어미소는 일주일 동안 동네가 떠나갈듯 울었고 근 한 달 동안 새끼를 찾아 몸부림쳤습니다.

어머니는 만날 손을 쓰다듬어 위로했고 나는 소와 함께 슬펐습니다. 그때 확신했습니다. 소는 아버지처럼 용맹하고, 어머니처럼 사랑 많고, 형님처럼 당당하고, 여동생처럼 수줍고, 친구처럼 우정이 깊다는 것을…….

"소는 동정심으로 가득한 한 편의 시와 같은 존재다.(The cow is a poem of compassion.)"라고 말한 마하트마 간디는 어린 시절 소를 형제같이 여겼던 시간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소는 고삐를 놓쳐도 스스로 집을 알고 먼저 찾아들어갔고 자신의 우리에서 나를 기다렸습니다. 이렇듯 소는 장소를 분명히 기억했고 소를 부리는 아버지의 복잡한 명령에 착오 없이 따랐습니다. 

#2 

2011년 초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나라를 덮쳤습니다. 확산을 방지하기위해 살처분으로 대응했습니다. 소, 사슴, 염소, 돼지 등이 안락사 당해 땅에 묻혔습니다.

살처분되어 텅빈 축사는 소독약제만 뽀얗게 뿌려져있다.
 살처분되어 텅빈 축사는 소독약제만 뽀얗게 뿌려져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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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 농가의 우리는 텅 비고 사체 섞는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매몰지 상공을 맴돌았습니다. 허기진 독수리는 매몰지의 언 땅을 파느라 발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죽은 짐승의 고기만을 먹는 예민한 후각의 독수리는 주검의 냄새에 살처분된 매몰지의 상공을 맴돌고 있다.
 죽은 짐승의 고기만을 먹는 예민한 후각의 독수리는 주검의 냄새에 살처분된 매몰지의 상공을 맴돌고 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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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된 소가 묻힌 매몰지
 살처분된 소가 묻힌 매몰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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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말과 2011년 초, 내가 사는 탄현면에서만 1700여 두에 달하는 소와 돼지들이 살처분되었습니다.

매몰지는 금줄로 사람의 접근을 금하고 가스배출관만 을씨년스럽다.
 매몰지는 금줄로 사람의 접근을 금하고 가스배출관만 을씨년스럽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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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광풍이 진정 국면을 맞자 탄현면에서는 살처분된 가축의 영혼을 달래고 축산농가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기 위해 축혼제(畜魂際)를 거행했습니다.

살처분된 축생의 넋을 위로하는 축혼제의 상여행렬
 살처분된 축생의 넋을 위로하는 축혼제의 상여행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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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례행렬은 금산리민요보존회가 맡았다.
 이 장례행렬은 금산리민요보존회가 맡았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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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을 위한 퍼포먼스
 진혼을 위한 퍼포먼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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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 공연
 살풀이 공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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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지방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세계에 보내기 위해 하는 굿인 자리걷이춤이 이매방파 춤 전수자에 의해 공연되었다.
 경기 지방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세계에 보내기 위해 하는 굿인 자리걷이춤이 이매방파 춤 전수자에 의해 공연되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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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이장들이 행사를 주관하고 살처분당한 축산인들이 상주가 되었습니다. 상여행렬과 회다지 등의 가축 장례가 재연되고 마지막으로 축혼제가 치러졌습니다.

축혼제의 제례는 교하향교에서 집례했다.
2010년 말과 2011년 초, 한반도에 몰아친 구제역 광풍으로 희생된 소와 돼지는 삼백삼십만 마리가 넘었다. 세상의 조화를 관장하는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용서를 비는 일로 끝날 일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축혼제의 제례는 교하향교에서 집례했다. 2010년 말과 2011년 초, 한반도에 몰아친 구제역 광풍으로 희생된 소와 돼지는 삼백삼십만 마리가 넘었다. 세상의 조화를 관장하는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용서를 비는 일로 끝날 일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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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이 나부끼고 꽃상여 앞의 선소리꾼이 구슬픈 목소리에 연도의 사람들이 눈물을 훔쳤습니다.​

이 허망한 죽음이 울음으로 달래질 수 있다면…….
 이 허망한 죽음이 울음으로 달래질 수 있다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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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혼제는 사실 살처분 동물에게 뿐만아니라 생명윤리를 위반한 죄를 씻어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을 위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 . 북잡이와 선소리꾼이 앞장선 상여행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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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다지(묘지다지기)소리를 재연하고 있는 경기도무형문화재 지정의 금산리민요보존회의 달구꾼.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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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도 몽골로 떠나고 봄이 짙어졌습니다. 그 참혹한 일은 점점 흐릿해지면서 비통한 마음도 엷어져갔습니다.

봄은 다시 오고…….
 봄은 다시 오고…….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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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을 쐬러 갈현리 논가로 나갔다가 들길에서 여물을 끓이는 어른을 만났습니다.

여물을 끓여서 소를 키우고 계신 어른
 여물을 끓여서 소를 키우고 계신 어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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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송아지 달린 소를 사료 대신 소죽을 끓여서 먹인다고 했습니다. 구제역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

어릴적 나의 일이었던 이 쇠죽을 끓이는 모습을 갈현리에서 만났다.
 어릴적 나의 일이었던 이 쇠죽을 끓이는 모습을 갈현리에서 만났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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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먹이지 않고 썬 짚에다 콩을 한 바가지 넣고 이렇게 쇠죽을 끓여 먹이면 구제역은 얼씬도 못해요."

그리고 보내 내가 산에서 소를 먹이던 시절에는 구제역이라는 몹쓸 전염병은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3

3월 7일, 청주 우시장에서 황소 한 마리가 탈출해 4시간이 지나서 잡혔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보도에 저의 페친인 김광호 선생님께서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황소의 탈출과 인명피해

어떤 동물이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나운 동물에서 부터 온순한 동물에 이르기 까지. 그 중 소는 비교적 온순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은 소에게 어떤 존재이며, 반대로 소는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나를 돌이켜 봅니다.

소가 인간에게 제공한 자신의 신체와 노역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인간은 소에게 무엇을 베풀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를 탈출한 소는 아주 짧은 자유를 누리려고 했지만 인간은 그를 용납하지 않고 마취탄으로 제압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소는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간의 우명피해(牛命被害)는 어떻하구……."

어제 다시 페이스북에서 "평생을 우리 안에 갇혀 우유를 공급하다가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는 소들이 도축될 상황에 처했고 한 자선단체가 그 소들을 모두 사들여 자유를 선물했다"는 동영상을 접했습니다.

그 영상은 동물을 통해 사람을 뒤돌아보게 했습니다. 사람의 윤리적인 먹을거리와 대형공장시스템의 축산업에 대한 무감각에 돌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김광호 선생님이 덧글을 남겼습니다.

"소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노역을 제공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동물성 식품으로 인한 질병으로 병들어 갑니다. 그러고 보면 소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실수를 통해 인간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의 의지'로 인해서 말이죠."

김선생님께서 인간의 선택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저도 그 의문에 동의했습니다.

"더 큰 힘을 가진 자는 더 넓은 선택권을 가지게 마련인데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넓은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하는 지는 의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구제역, #소, #일소, #살처분, #매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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