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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부터 새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국민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큰 고충으로 하루 하루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집배원 노동자들인데요. 겸배문제 등 새 도로명 주소를 실시하기 이전부터 산적했던 집배원들의 업무 실태에 대해 알아봅니다. [편집자말]
그의 오토바이 뒤에 실린 우편물들.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아 막막했다.
 그의 오토바이 뒤에 실린 우편물들.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아 막막했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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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주의보가 발령돼 하늘이 뿌옇던 2월 말, 시내 한복판에서 우체부 한 명을 만났다. 그는 뒤에 짐을 한가득 실은 빨간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그가 싣고 온 짐을 보면서 '생각만큼 많지는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일반 편지, 등기, 소포 등의 배달방식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이날 난 '일일 우체부 체험'을 해보기로 약속하고 그와 만난 터였다. 친절하게도 그는 도보로 오토바이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느낀 구간은 오전에 일찍 나와 배달을 마쳤다고 했다.

"지금 저희가 있는 위치가 여기입니다. 여기부터 이렇~~~ 게 해서 이렇~~~~게가 오전에 우리가 배달해야하는 위치입니다."

지도를 누비는 그의 손가락이 멈출 줄을 몰랐다. 오전에만 이만큼을? 그의 '이렇~~게'는 한참을 이어졌다. 코팅된 지도를 뒤집자 오후에 배달할 지도가 또 나왔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오늘 하루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 헛웃음이 절로 났다.

시작 30분도 안 돼 아파온 다리... 우편물은 '그대로'

그의 뒤를 쫓아 뛰어다닌 지 채 30분도 안 되어 다리가 아파왔다. 남은 양이 얼마나 되나 힐끔 봤는데, 우편물 양은 여전히 그대로인 듯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으나, 몸 안으로 꾹꾹 눌러 숨겼다. 오토바이 뒤에 담긴 편지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배달을 하는 사람은 지친 기색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이상하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난 시간이 지날수록 막막해졌다. 이렇게 많은 물량을... 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건물 사이 담장을 돌아가는 1분 1초가 아까워 허리까지 오는 담장을 뛰어넘는다"는 그의 말에 나는 힘든 기색을 보일 수가 없었다. 건물을 옮겨 다니면서 짧게는 3초에서 길게는 5초 만에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다시 내리는 그가 훨씬 더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있었던 정보유출 때문에 사과문을 어마어마하게 보냈어요. (우편물)절반은 다 그런 거예요. 고지서가 섞여 있기도 하고... 오늘은 그래도 양이 적은 편이에요."

나와 잠깐 대화하는 동안에도 "대체 언제 오냐"는 전화, "우편물을 가지러 직접 우체국으로 찾아가면 안 되겠냐"는 전화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담당 배달 구역 적응에만 2년... "악용하는 상사 있어요"

한 주택의 우편함
 한 주택의 우편함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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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그는 기사를 익명으로 내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처우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일에 불만을 털어놓는 직원이 있으면 담당 배달구역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체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배달구역이 바뀌는 것이라며 "배달구역을 지정받으면 적응하는 데만 2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배달 속도를 높이기 위해 편지를 미리 분류해두어야 하는데 배달구역에 대해 잘 모르면 분류할 때부터 애를 먹는다. 위에서 괘씸한 우체부를 골탕 먹일 때 쓰는 방법은 그가 처리 못한 반송우편물과 실수로 잘못 배달한 우편물을 찾아 지적하는 것이다.

"반송업무까지 다 하는 게 원칙이에요. 우체국에서 반송 우편물을 되돌려 드린다고 국민과 약속했으면 그렇게 해야죠. 그런데 저희는 도저히 반송 업무까지 할 사정이 안 됩니다. 인력 충원이 절실해요."

하루 배달을 다 소화하기도 벅차기 때문에 반송 우편물을 수거해 다시 분류하는 업무는 도저히 할 수 없다. 하지만 집집마다 우편함 위에는 반송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말로는 그래요. '우체부는 우체국의 얼굴이다, 친절하게 해라.' 저도 친절하게 해드리고 싶고 반송 우편물도 제대로 처리해 드리고 싶죠. 다니면서 보셨겠지만 일은 단순해요. 단순한 일이지만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을 훨씬 초과해서 주니까...."

흥분한 그는 고된 현실에 마음이 북받쳤는지 말을 흐렸다.

"옛날엔 일이 이 정도로 고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 직업을 참 좋아했어요. '이놈아! 이리 와서 막걸리 한 잔 먹고 가!'라는 정 많은 할아버지도 계셨고 고생한다며 요구르트를 쥐어주는 아주머니도 계셨죠."

빛의 속도로 점심 흡입... "평소엔 5분 만에 먹는다"

초미세먼지가 자욱했던 2월말, 그는 오토바이 가득 우편물을 싣고 달렸다.
 초미세먼지가 자욱했던 2월말, 그는 오토바이 가득 우편물을 싣고 달렸다.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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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반이 지났는데도 우편물은 바닥을 보이지 않았다. 4시간째 동네 곳곳을 훑으며 돌아다녔지만 오전 배달 지역의 반도 끝내지 못했다. 오후 2시, 결국 오전 분량을 다 처리하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먹어야 했다. 빛의 속도로 밥을 먹는 그를 보고 깜짝 놀라자 "평소에는 5분 만에 먹는다"며 웃었다.

대부분 집배원의 하루 시작은 오전 7시다. 규정에는 8시부터 시작하라고 돼 있지만 그렇게 출근해서는 배달 전에 해야 하는 택배와 등기우편물 분류작업을 할 수 없다.

"공무원 근무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잖아요. 기본 근무시간이죠. 시간외 근무는 명령을 따로 내려요. 오늘은 8시부터 오후 7까지 2시간 시간외 근무명령이 나왔죠. 하지만 다들 7시께 출근을 하죠. 택배와 등기를 분류하는 아침일이 부담되거든요. 퇴근은 8시나 9시쯤 하니까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무료봉사를 하는 셈이네요."

특히 고지서가 밀려오는 월말에는 오후 11시까지 업무가 이어진다고 했다. 주당 최대 근무시간은 63시간이 기준이다. 그 이상 근무를 하면 능력이 없어서 추가근무를 하는 걸로 치부해버린다. 그는 "하루에 일을 다 하려면 14시간에서 16시간을 일해야 한다"고 했다. '돈은 10시간어치만 줄 수 있으니 그 안에 어떻게든 하라'는 것이다.

몇 년 새 인력 충원이 없다가 최근 우체국 한 군데 당 2~3명 정도 충원되었으나, 지금 늘어나는 업무량만 해도 새로 충원된 2명이 해결할 양보다 많다는 그는 "지금 이 업무량을 감당하려면 약 3000명은 더 충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넘쳐나는 업무량은 우체부의 건강까지 갉아먹는다. 많은 우체부들이 업무 중 사고로 다쳐도 충분히 치료받지 못하고 복귀해 후유증에 시달린다. 이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료 직원이 빠진 이들의 업무를 나눠서 배달하기 때문이다.

"지금 인력의 30% 이상 인력이 충원되면 과로사 없고 서두르다 사고가 나는 일 없이 업무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임금 없는 추가근무를 하지 않아도 되죠. 오전 8시에 출근하고 점심도 편하게 먹겠죠. 무노동에는 무임금이라면서요? 그렇다면 유노동에는 왜 유임금이 아닌가요?"

약속했던 오전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눈은 침침해졌으며 목에선 모래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업무에 서울 시내를 누빌 그를 생각하니 '힘들다'는 말이 끝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득 그가 식사 중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직원을 힘들게 하는 것도 그렇지만 국민을 속이는 일이잖아요. 반송품은 잘 반송해 드린다고 홍보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우체통 위에 쌓여있는 반송편지 보면 저도 마음이 무거워요. 하지만 정말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니까 못하는 거거든요. 공무원으로써 국민을 속이면 안 되는데 현실은 이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덧붙이는 글 | 최유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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