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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돈 없어서 안 돼" 하고 말리면 "엄마 카드 있잖아"라고 대답한다죠? 아이들에게 신용카드는 정말 신기한 도깨비방망이라도 될 듯합니다. 뭐든 카드 한 장이면 구입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어른들도 그랬죠. 각종 포인트와 할인 혜택으로 여러 장의 카드에 혹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일까요?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카드를 잘랐나' 기획을 통해 '당겨 쓰고 갚게 하는 소비 문화'를 바꾸고자 합니다. 비슷한 사례가 있으신 분은 직접 기사로 입력하셔도 좋습니다. [편집자말]
처음 만든 이후 계속 늘어만 나던 신용카드를 잘라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작년 어느 출근길에서였다. 나는 깜빡하고 지하철 선반에 가방을 두고 내렸었는데 그 속에 지갑이 있었고, 지갑 안에는 신용카드가 무려 4장이나 들어 있었다.

당장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다 전화를 해보니 이런 경우 운행 중인 열차에서 가방을 찾기는 어렵다고 했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직접 열차에 타서 가방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공익근무요원이라도 투입하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그 역시 여의치 않아 보였다. 어쨌든 그들도 부족한 인력을 어디선가 땜질하고 있지 않은가.

가방 속 신용카드 4개, 분실신고에 진이 다 빠지네

결국 난 출근을 포기하고 다음 열차로 앞 열차의 종착역까지 따라가기로 했다. 누군가가 가방을 가지고 내렸다면 한낱 헛수고일 테지만, 그렇다고 내게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디 가방이 그 자리에 있기만을 바랄 뿐.

이 많은 신용카드를 언제 다 정지 시키지?
▲ 내게 너무 많은 카드 이 많은 신용카드를 언제 다 정지 시키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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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다가 늦는다는 연락을 한 뒤, 스마트폰으로 카드사 전화번호를 찾아 카드 분실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빠서일까?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안내를 하는 통화 속 기계음이 유난히도 귀에 거슬렸다. 1번을 누르고 2번을 누르고, 또 다시 1번을 누르고, 거기에다가 주민등록번호까지 누르라는 안내. 바빠 죽겠는데 뭘 이리 많이 누르라고 하는지.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빨리 카드 중지나 시켜달라고.

그렇게 4개의 신용카드를 모두 중지시키고 나니 어느새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행히 그 사이 카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간담이 서늘할 수밖에 없었다. 30분은 누군가가 마음먹고 카드를 긁기 시작하면 엄청난 금액이 빠져나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지갑이 든 가방을 동두천역에서 찾은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 이대로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처럼 한꺼번에 분실하면 너무 힘들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기회에 신용카드를 확 다 잘라버려?

그러나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주유나 통신비 할인 등 신용카드를 쓰면서 누리던 혜택이 나름 짭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신용카드 덕분에 한 달에 4~5만 원 정도는 아낄 수 있었는데 어찌 그걸 포기하란 말인가. 대신 난 쓰지 않는 신용카드는 집에 두고 다니기로 했다. 에어컨을 사느라고 만들었던, 대형마트에나 갈 때 쓰던 카드는 더 이상 소지하지 않았다.

신용카드 자르기가 쉬웠던 건 가계부때문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 신용카드의 대체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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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미련 때문에 차마 없애지 못했던 신용카드들을 자르게 된 건 결국 작년 직장을 옮기고 나서였다. 급여의 일부를 포기했던 만큼 씀씀이를 줄여야만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었다.

신용카드 쓴다고 과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용카드를 자르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지고 있던 5개의 신용카드 중 한 장만 남긴 채 모두 폐기하거나 체크카드로 대체했다. 은행 계좌와 관계된 신용카드는 현금카드 겸 체크카드로 변경시켰다. 그 외의 것들은 미련 없이 잘라버렸다.

문제는 남은 한 장의 신용카드였는데, 이는 작년 자동차를 살 때 포인트로 선 결제 한 카드로서 돈을 뱉어내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정도의 금액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 카드 한 장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을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비록 신용카드를 모두 자르기에는 실패했으나, 그것이 곧 과소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온 나의 소비습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난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번 이후로 지금까지 가계부를 써왔다. 이는 신용카드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던 시기와 거의 맞물리는데, 가계부를 쓰다 보면 신용카드를 마음대로 긁기 어려워진다. 빤한 한 달 수입과 대응하여 현재까지 지출되는 금액을 쉽게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계부를 쓰다 보면 자신의 소비패턴을 알게 되는데, 이는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항목별 한 달 평균을 체크하다 보면 지금 내가 무슨 용도로 과소비를 하고 있는지, 어디서 돈을 아껴야 하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시불을 선택한다. 혹자들은 신용카드 사용시 무이자 할부의 경우 그만큼 금융소득을 얻는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 소득은 아주 미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만큼의 과소비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할부의 특성상 사람들은 자신이 쓴 금액을 훨씬 적게 인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곧 과소비로 이어지기 쉽다.

요컨대 일시불을 선택하는 나의 신용카드 사용 조건은 다음과 같다. 은행잔고를 넘는 소비는 절대 하지 않는다. 혹여 지금 당장 돈이 없으면 저축을 하여 충분한 돈이 모아졌을 때 신용카드를 긁는다. 내게 신용카드는 화폐를 대신하는, 덕분에 지갑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교환수단에 불과하다.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할 충분한 이유

신용카드를 잘라라
 신용카드를 잘라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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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한 장의 신용카드는 자르지 못했지만, 나머지 신용카드의 폐기는 나의 지출패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 전에는 할인과 적립 등 신용카드 혜택을 받기 위해 무조건 신용카드를 사용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록 포인트를 갚기 위해 일정 금액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했지만 지역의 작은 가게나 프랜차이즈점이 아닌 곳에서는 가능하면 되도록 현금을 이용했다.

현금 사용은 내가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의 작은 실천이자 소비자 권리 운동이기도 했다. 그것은 대기업들이 먹고 살기 힘든 자영업자들에게서 카드수수료를 뺏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동시에 고객들이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음에도 고객의 소중한 개인정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카드 회사들에 대해 내가 소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덧 신용카드를 자른 지 6개월째다. 덕분에 나는 집 앞에 단골 가게를 하나 갖게 되었다. 물론 신용카드를 사용하더라도 자주 들르고 인사하면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금을 사용함으로써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좀 더 쉽게 주인아저씨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퇴근 길 맥주 한 캔을 사먹으며, 아이들 '까까'를 사며 가볍게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때 신용카드를 광고하며 '부자 되세요'를 외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대기업 배만 불리는 신용카드, 자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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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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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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