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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AI 확진 판정을 받은 오리를 자루에 담고 있다.
 20일 오전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AI 확진 판정을 받은 오리를 자루에 담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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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자정 충북 음성군 대소면. 인적은 끊기고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조차 한산한 시각,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방역초소 근무를 나온 공무원들은 소독액이 얼어붙은 도로 위를 치우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간간이 지나는 차량에 분사되는 소독액은 금세 도로를 아이스링크로 만들어 버렸다. 얼음을 삽으로 긁어 내던 공무원은 흐릿한 눈을 비비며 "밤이라 교통량은 많지 않지만 사고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바로바로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죽은 줄 알았던 포대 안 닭이 비명을..."

이 초소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닭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방역 중 일반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입간판이 좁은 비포장길 한가운데 버티고 서 있다. 농장에 들어서자 비릿하고 매캐한 냄새는 두통을 불러왔고 봄을 시샘하는 겨울 칼바람은 볼을 할퀴고 지난다. 축사 밖에는 닭이 담긴 자루가 수북이 쌓여 있고 안에는 깨지거나 성한 계란이 곳곳에 뒤엉켜 있다.

농장 바로 맞은 편에는 육중한 몸집의 장비 5대가 열기를 뿜어내며 닭을 찌고 있다. 고열로 멸균 처리하는 렌더링(rendering) 작업이다. AI 위험지역에서 해제되면 닭과 오리를 새로 들일 수 있는데, 렌더링 방식으로 살처분할 경우 1개월 정도면 가능하지만, 구덩이를 파고 매몰하면 토양 검사 등 6개월이 넘게 걸린다. 렌더링 장비 5대를 임대할 경우 4일간 5000만 원이란 예산이 투입되지만, 축산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조치다.

이곳은 국내 1호 동물복지농장으로 3만6000마리 닭은 AI에 감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AI 발생지를 중심으로 위험지역인 반경 3㎞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처분 명령을 받았다. 살처분 첫날인 지난 12일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항의하기도 했다.

 살처분에 투입된 공무원들이 찬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살처분에 투입된 공무원들이 찬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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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버스로 이곳에 도착한 음성군 공무원 10여 명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 관계자로부터 주의사항과 작업 요령을 설명들은 후 찬 바닥에 앉아 야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아무 말 없이 밥 위에 김치 한 조각을 올려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날 밤 공무원들은 동료직원 120여 명이 가스 주입 방식으로 질식사시켜 포대에 담아 놓은 닭을 렌더링 장비에 넣는 작업을 했다. 포대를 집어들던 한 젊은 공무원이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을 쳤다. 죽은 줄만 알았던 포대 안의 닭이 인기척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다. 건강한 닭은 가스를 주입해도 쉽게 죽지 않아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들의 작업은 새벽 5시가 돼서야 마침표를 찍을 수가 있었다. 휴식은 좁은 소형버스에 올라 10~20분씩 쪽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낮에는 산적한 업무와 씨름하고 밤에는 닭과의 전쟁을 치르는 일은 나흘 동안 계속됐다.

지난 20일 오후 4시 30분경 음성군 AI 상황실에는 비보가 날아 들었다. 음성군청 산림축산과 공무원인 조아무개(36) 수의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지난달 28일부터 24일간 설 명절은 고사하고 군청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근무를 해왔다. 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 병문안은 언감생심이었다

공무원들, 극심한 피로감-트라우마 호소

 20일 오전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AI 확진 판정을 받은 오리를 자루에 담고 있다.
 20일 오전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AI 확진 판정을 받은 오리를 자루에 담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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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발생한 지자체 공무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담당 업무 처리를 비롯해 살처분·방역초소·상황실·당직 등 이어지는 근무를 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12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던 진천군 공무원 정아무개(41, 7급)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정씨는 지난 설 명절 연휴 기간인 1일 이월면의 한 농장에서 동료 공무원 24명과 함께 오리 2만8000마리를 살처분 했다. 지난 2일과 7일에는 살처분 현장과 방역초소에 점심, 저녁, 밤참 등을 배달하기도 했고 13일에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AI 트라우마'도 심각한 문제다. 공무원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동물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악몽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스트레스는 두께를 더해가고 있다.

20일 오리 살처분 작업에 투입됐다는 음성군 공무원 최아무개(41,7급)씨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던 오리가 떠오른다"며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꽥꽥' 거리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꿈에도 나타나 깊은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닭 잡으려다 사람 잡겠다"... 트라우마 상담 시작

 지난 19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지부가 군청 내 게시판에 내건 대자보.
 지난 19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지부가 군청 내 게시판에 내건 대자보.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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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생거진천에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지부(진천지부)가 지난 19일 군청 내 게시판에 내건 대자보 제목이다.

진천지부는 대자보에서 "살처분 근무와 과중한 업무로 뇌출혈로 쓰러진 공무원 노동자 등 생거진천이 불상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며 "멀쩡한 동물학살에 동원돼 후유증과 트라우마 증상이 있어도 말하기 꺼렸던 공무원들도 이젠 할 말을 해야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진천지부는 "순서가 되면 언제든지 살육현장으로 달려가 (오리와 닭을) '학살'한 뒤 돌아와 밀린 업무를 해야 했다"며 "감기 기운이라도 느끼면 (AI에 감염되진 않았을까) 불안해하는 5분 대기조였다"고 비참한 심경을 토해냈다.

트라우마로 인한 상담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일 충북 재난심리지원센터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현재 AI 살처분에 참여했던 3명이 후유증을 호소해 정신 상담을 진행하고 있고 상담 문의는 꾸준히 늘고 있다"며 "상담을 받는 사람의 신분은 개인 정보 차원에서 알려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충북 음성과 진천지역에서는 19일까지 96만여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 했고, 22일까지 34만 마리를 추가 살처분 할 계획이다. 그동안 살처분에 공무원 1270여 명을 비롯해 2120여 명이 동원됐다.

살처분 현장에선 '닭 잡으려다 사람 잡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살처분 현장을 지켜본 농민들은 AI가 발생한 지자체 공무원과 군인에게만 짐을 떠맡길 게 아니라 인근 지자체를 비롯해 경찰, 소방, 교육, 농협 등 관계기관과 사회단체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가축질병 등 재난을 경험한 국민은 누구나 정부가 제공하는 심리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온라인 재난심리지원센터를 통해 시도별 재난심리지원센터를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화영 기자는 음성군청 공무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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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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