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막에 고립되다

요일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숙소의 파티가 지겨워 지는 걸 보니 산티아고를 떠날 때가 되었나 싶었다. 수직으로 쭉 뻗은 칠레의 다음 목적지는 아타카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전해지는 사막이었다. 향기로운 와인에 취해 흥청망청 지내던 도시의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대자연의 품속에 내팽겨쳐질 차례가 온 것이다.

무려 25시간, 꼬박 하루를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남미 최장 이동거리지만 장거리 이동은 여행의 꽃이다. 한 번 입을 열면 멈출 줄 모르는 토니와의 인사가 길어져 헐레벌떡 도착한 우리가 올라서자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복잡한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익숙한 것을 떠나는 안타까움도 잠시, 새로운 것을 본다는 두근거림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버스에서 꼬박 25시간을 보내고 이 정도의 기다림도 거뜬하게 이겨낸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선반 위에 놓인 보조가방을 꺼내는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이다.

"맙소사. 준, 우리 노트북을 산티아고 숙소에 두고 왔어."

사막으로 가는 관문인 산페드로 아타카마 마을. 저녁에는 대부분의 시설에 전기가 나가고, 하나 있는 ATM의 일일 현금이 제한적인 등등,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 구비되어 있다
 사막으로 가는 관문인 산페드로 아타카마 마을. 저녁에는 대부분의 시설에 전기가 나가고, 하나 있는 ATM의 일일 현금이 제한적인 등등,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만 구비되어 있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다른 것도 아니고 노트북이라니. 그 속에는 지난 4개월간의 모든 여행기록과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날짜가 하루 지난 대낮의 아타카마는 40도를 훌쩍 넘는 더운 날씨였지만 우리는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숙소로 이동해 다짜고짜 전화와 인터넷부터 찾았다. 노트북은 숙소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지만 어떻게 가지고 올 것인가. 24시간을 되돌아가야 하나? 왕복 48시간을?

운명의 주사위는 가혹한 고행의 길을 나설 수행자로 나를 선택했다. 사다리 게임에서 진 나는 내일 저녁 가장 가까운 공항이 있는 마을 칼라마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산티아고 공항에 내려 시내에 있는 숙소에서 노트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칼라마로 오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날 저녁, 비행기표를 결제하려 했지만 밤이 되니 아타카마의 대부분의 숙소는 전기가 나가버렸다. 덕분에 가시거리에 들어온 밤하늘의 수천 개 별을 느낄 여유도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새벽을 기다렸지만 결국 항공권 결제는 실패했다.

당일 출발하는 표는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것. 그 어떤 항공사도 이런 사막에 대리점을 두지 않았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산티아고의 룸메이트 토니에게 긴 이메일을 보냈다.  마침내 택배로 보내겠다는 그의 답변을 받았을 때, 우리는 온 사막이 떠나가라 만세를 불렀다. 일 주일간을 사막에서 갇혀 지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때에는 잘 몰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의 비경, 달의 계곡

지구에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 같이 멀고 아득한 땅이 많다.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경비도 많이 들어 선뜻 떠나지 못하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탐험이 어울리는 그런 곳. 칠레의 북쪽 국경에 접해 있는 아타카마 사막(Atacama Desert)이 꼭 그렇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태워 버릴 것 같은 태양과 숨쉬기도 어려운 흙먼지 때문에 낮에는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은 아타카마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이다. 사막의 중심부는 500년째 단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아 미생물조차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수천 년 전 사막이 형성되기 전에 살았던 동식물들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고 구워진 채로 남아 있다고 하니 자연의 신비는 도대체가 끝이 없다.

마을을 벗어난 풍경.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화산이 신비로운 아타카마의 풍경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마을을 벗어난 풍경.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화산이 신비로운 아타카마의 풍경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사막을 보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이 갖추어진 마을,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를 벗어나 15분을 달렸다. 그나마 남아있던 생명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보기에도 목이 마른 바싹 마른 모래뿐이다.

마을에서 가까워 그나마 탐험하기 좋은 이 일대에 사람들은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멀리 환영처럼 보이는 화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과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넓은 황무지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아주 먼 옛날 바다나 호수에서 퇴적된 지층이 빗물에 의해 다시 침식되어 만들어진 기이한 지형들. 형성된 시간에 따라 바위에서 높은 언덕까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아주 먼 옛날 바다나 호수에서 퇴적된 지층이 빗물에 의해 다시 침식되어 만들어진 기이한 지형들. 형성된 시간에 따라 바위에서 높은 언덕까지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에 입장료를 내고 계곡의 깊은 곳에 들어섰다. 가이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을 법한 기괴한 암벽과 지층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건축의 천재 가우디가 돌아와도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정교하게 빚어진 그 장엄한 바위 덩어리는 가까이서 보니 하얀 얼음이나 눈 같은 것이 여기저기 덮여 있었다. 빗물에 의해 운반된 소금이 물이 증발한 다음 덩어리로 엉겨 붙은 것이라고 하는데 500년 전에는 비가 왔었다는 이야기일까.

세 명의 성녀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흙기둥이지만 바람에 의해 이미 원래의 모습을 잃은지 오래다.
 세 명의 성녀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흙기둥이지만 바람에 의해 이미 원래의 모습을 잃은지 오래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오로지 흙으로만 이루어진 계곡은 여러 가지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화제를 만든다. 그 중에도 사람의 형상을 한 어떤 것들은 '성모 마리아와 세 명의 성녀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람에 의해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이미 다른 것들도 사람의 형태를 잃은 지는 오래지만, 시간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에 사람들은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로 드넓은 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하필이면 사막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숙명이다.

이윽고 사람이 올라설 만큼 단단하고 높은 장벽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성지순례라도 하듯 줄지어 그 언덕을 걷기 시작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가 아닌, 기괴한 바닥으로 이루어진 언덕의 끝에는 마침내 모두가 기대했던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의 출입을 한번도 허락하지 않은 채 오랜시간 보존된 아타카마 사막의 사구. 아프리카의 붉은 사막과 달리 햇빛에 그을린 듯한 잿빛이다.
 사람의 출입을 한번도 허락하지 않은 채 오랜시간 보존된 아타카마 사막의 사구. 아프리카의 붉은 사막과 달리 햇빛에 그을린 듯한 잿빛이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사람의 발이 한 번도 닿지 않은 것 같은, 지구 속 깊은 속살을 들여다 보는 듯한 그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땅, 아타카마 사막의 진면목이다. 입을 벌렸다기 보다는 다물어 지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뚫어져라 사막을 쳐다보던 준은 내가 아프리카의 붉은 사막을 보고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어김없이 어디가 더 멋있느냐 물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곳을 보고 왔다고 한 들, 이 장면이 놀랍지 않을 수 있을까.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모래 사막은 붉게 물든 소서스 블레이와 달리 햇볕에 불탄 잿빛으로, 땅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올라설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사진 찍는 것을 마친 몇몇 사람들은 팔다리를 움직이며 쉴새 없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마도 이곳이 아직 지구임을 실감하기 위한 것이리라.

사막의 뜨거운 태양이 어느 정도 기운을 잃어가면 투어도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사람 키를 훌쩍 넘어선 높은 협곡으로 불어대는 엄청난 바람을 뚫고 높은 위치를 선점하면 마침내 관객의 역할은 끝이다.

"지금이야!"

가이드의 외침과 함께 어둠이 깔리는 지구는 서서히 달로 변해간다.

해가 지면 달의 계곡위로 선명한 경계선이 생겨나면서 지구는 서서히 달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해가 지면 달의 계곡위로 선명한 경계선이 생겨나면서 지구는 서서히 달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이제 막 막이 오른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처럼 사람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소리 죽여 선명한 빛의 경계를 응시한다. 이 넓은 사막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뿐.

황금빛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나니 지구는 완전히 달의 모습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과 흥분을 박수로 대신했다. 곧이어 달이 떠올랐지만 내가 있는 여기는 지구가 아닌 달이다. 나는 지금 달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김수현 분)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는 '아타카마 사막', 그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달이 떠오른 달의 계곡이야 말로 아타카마 사막의 백미다
 달이 떠오른 달의 계곡이야 말로 아타카마 사막의 백미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간략여행정보
얼마 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해 화제가 된 아타카마 사막은 칠레의 북쪽 국경에 접해 있다. 산티아고에서 출발할 경우, 비행기나 버스를 이용해 칼라마라는 도시에 도착한 후 다시 산페드로 아타카마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버스를 이용한다면 각각 22시간, 90분이 걸리는, 남미에서 가장 긴 이동거리 중 하나로 꼽히지만 이 기이한 지구의 색다른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냥 아쉽다. 아타카마 사막을 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달의 계곡' 투어에 참여하는 것으로, 태양이 뜨겁지 않은 오후에 출발하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마을로 돌아오기 때문에 시간효율과 가격면에서 인기가 매우 높으며 밤하늘에 빈 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쏟아져 내리는 별은 덤이다. 아래는 달의 계곡 투어정보.

달의 계곡 투어비용 : 9,000페소(약 2만원, 2012년 11월 기준)
투어 시간 16 : 00 ~ 20:00

산페드로 아타카마 마을은 오로지 여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설비만 갖추고 있어 저녁이면 전기가 나가는 곳이 많고 제대로 된 환전소가 없다. 하나 있는 은행 ATM기는 1인당 인출가능 금액과 하루 한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칠레 화폐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좀 더 자세한 아타카마 사막의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2536297



태그:#아타카마사막, #산페드로아타카마, #달의계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