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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의식의 소음> 표지 주황색 바탕에 푸른 글씨로 생각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책이 손바닥만해서 손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딱 좋다.
▲ <생각, 의식의 소음> 표지 주황색 바탕에 푸른 글씨로 생각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책이 손바닥만해서 손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딱 좋다.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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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해하는 과정이 이렇게 난해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러나 오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백과 수락, 거절이 난무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된 유명한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가 한 말이다. 존재의 근거로써 생각을 지목하고 있다. 생각의 기원과 진화해 온 과정을 흥미롭게 소개하는 신간, <생각, 의식의 소음>을 만난다.

일단, 저자는 생각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생각이라는 대상에 대해 독자가 실체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의도하고 있다. 생각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인 것이라기 보다 추상적이며 현실을 반영하기 보다 과거에 경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지속하다 보면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인 결론을 돌출할 가능성이 크며 인간사의 모든 해악의 근원으로 역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를 '생각의 각질로 굳어진 우리의 표정과 근육을 풀기 위한 스트레칭'이라고 소개한다.

과거 중세시대 기사들에게는 이를테면 '넌 겁쟁이야'와 같은 사소한 시비(是非)거리도 장갑을 벗어 던지며 결투를 신청할 만한 이유가 되곤 했다. 현재의 우리 생각으로는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칼날을 겨누며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무모하다고 여겨지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던' 이 시기엔 어쩌면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운 현대인의 질병,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귀족과 평민, 노예와 같은 사회적 위계가 엄존한 시절이었으므로 노예가 귀족이나 기사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윌리엄블레이크의 시(詩) <독나무>로 시작되는 이야기, 생각의 독

결국, 근대 사회의 토대가 된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앞에 실재하는 위계는 그 정도가 과거 계급사회의 그것보다 덜하지 않다. 따라서 현대의 인간은 칼이나 총의 위협에서는 자유로울지 모르나, 평등하다고 알고 있는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과 질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사실 우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커다란 격차에 더욱 절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부질없는 생각과 고뇌는 영혼을 좀 먹는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롯의 아내는 탈출하면서 소돔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돌아 보게 된다. 그녀가 소금기둥이 된 이유는 부질없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 원망, 질투, 복수 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복수, 질투, 원망)은 기원전 춘추시대에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일이 가능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들인 월의 구천, 오의 합려와 부차 부자(父子) 들의 서로에 대한 복수이야기가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는 다르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복수가 불가능한 사회다. 주먹은 멀고 법은 가까운 사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생각은 화병(火病)이나 스트레스라는 화학적 변화를 거쳐 우리 몸에 독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기싱이 <기싱의 고백>에서 '인간은 자신의 불행 속에 홀딱 빠지는 성미 고약한 짐승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생각의 잡음,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된 이론과 현실의 균열

저자 김종갑 교수는 종교인들에게 불온하게 들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으로 이 장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분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먹고 사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던 시절에는 전혀 필요가 없던 신이라는 존재는 자연재해나 갑작스런 질병 등에 노출된 인류에게 절대자로 상상되었을 것이라며, '현상의 원인을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이 그나마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것. 즉, 신은 인류의 필요에 의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거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자가 없다면? '우주에 중심이 없다면 우주의 크고 작은 모든 지점이 다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신이 없다면 모두가 신이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으로의 신분 상승을 방해하는 요인은 아무것도 없다.'는 저자의 설명이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현대에 와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들 스스로가 신처럼 굴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신처럼 굴어도 신이 될 수는 없다는 데에 비극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남자 주인공은 부유한데다가 미남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아서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인 초라하고 볼품없는 윌리와 더 가깝다. 비교와 부러움, 질투라는 개념을 빌리지 않고서는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설명에 동감하는 순간이다.

생각의 탄생, 계보학

"중국의 가장 오래된 의서 <황제내경>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자연의 이치에 따르면서 백 살이 넘게 장수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절제와 타락, 기만 등의 악덕이 등장하게 되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인간의 역사는 황금에서 은, 동을 거쳐 무쇠로 악화되는 내리막길의 역사이다."

'마음이나 생각이라는 것은 주어진 환경의 변화에 인류가 적응하기 위해 발달시킨 생존의 부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나중에는 '욕망과 의식, 의지, 사유로 의식화되고 메타화'되었다는 김교수는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을 통해 생각의 탄생과 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생각은 스스로가 진리임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탁월한 신적 능력으로 여긴다. 주인의 명령을 통해 노동을 하는 노예는, 처음엔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지만 노동력과 생각은 주인의 채찍과 칼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오페라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노예 피가로를 전형으로 소개한다.

니체의 생각은 다르다. 니체는 생각이 '원한(resentment)과 증오의 감정'의 연장선상이라는 거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광대 리골레토는 여색을 즐기는 공작을 부러워하면서 어릿광대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원망한다. 리골레토는 반동적 인간의 전형으로 소개되는 인물이다.

저자는 소시민적 생각, 생각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등의 장을 통해 생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지속한다. 그러나 저자 김종갑 교수는 '생각' 또는 '생각하기'라는 개념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생각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생각 외에 우리 몸과 마음을 좀먹는 쓸데없거나 부질없는 생각에서 우리를 탈출시켜 주고 싶어한다. 그는 문학비평 교수답게 해박한 지식과 수 많은 철학자, 그들의 저서 등을 이용해 우리를 설득하고 있다.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 지각(知覺)하기

'지금(Now), 여기서(Here)'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후회와 걱정은 불안을 부를 뿐이다. 저자는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생각대신 지각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실과 우리 자신과 맞대는 접촉면을 최대한 넓히라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처럼 '방에 틀어박혀 사는'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지각을 통해 '나'가 실종되는 지점, 즉 무념무상의 경지를 경험하는 지각하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하고 있다.

그·그녀의 고백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여 후회와 걱정으로 가득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먼저 고백하시라. 비록 10가지의 오독과 오해, 오판이 있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모든 가능성들이 있기에 우리 인생이 풍요롭지 않은가.


생각, 의식의 소음

김종갑 지음, 은행나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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