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에서 가르시아를 연기하는 최수형

<카르멘>에서 가르시아를 연기하는 최수형 ⓒ 오넬컴퍼니


<카르멘>은 악역이 몸으로 생고생하는 뮤지컬이다. 최수형이 연기하는 악당 가르시아는 2막에서 카르멘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여배우의 체력 소모도 굉장하지만, 가르시아는 여배우가 다치지 않게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한겨울 공연장에서 복근을 드러내고 복도 한가운데를 걷기도 하고, 마차에서 뛰어내리기도 해야 한다.

관객은 모르지만 손이나 팔 어딘가에는 상처가 끊일 날이 없다. 어떤 날에는 손에서 피가 나지만, 언제 베였는지 모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연이 즐겁단다. 몸은 고단해도 팬들의 환호를 받을 생각을 하면 힘이 불쑥 솟는다는 <카르멘>의 가르시아 최수형을 21일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지독한 남자를 연기한다.
"등장하면서부터 나쁜 역할은 처음 맡아본다. 목소리가 갈라지는 역할도 처음이다. 그냥 악당이 아니라 사연 있는 악당이다. 가르시아를 보고 '불쌍하다'고 표현하는 팬도 있다. 가르시아는 5번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관객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5번 이상 나오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랄까.

악당이라 걱정을 많이 했지만 임팩트가 강한 역할이라 연기하며 즐겁다. 관객 역시 좋아한다. 팬 중에는 '최수형이 악역만 했으면 좋겠다' '최수형이 제대로 된 옷을 입었다'는 분도 있다. 지금까지 한 공연 중 가르시아에 대한 반응이 가장 좋다."

- 사연이 있는 악당이라면 감정 소모가 있을 텐데.
"마지막에 서커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 가르시아가 카르멘에게 '네 주인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게 해 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카르멘은 가르시아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 가르시아는 자신의 삶이 끝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는 카르멘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데, 이 장면은 가슴이 아프다."

 <카르멘>의 한 대목

<카르멘>의 한 대목 ⓒ 오넬컴퍼니


- 칼 던지는 연기는 시늉만 하면 되나?
"가르시아 역에 더블 캐스팅된 에녹과 머리를 맞대고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체코 원작 뮤지컬 동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 가르시아는 칼을 던지는 척하고 빼더라. 체코 버전 영상과 달리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칼을 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칼을 뽑고는 던지는 듯 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리얼리티를 살렸다."

-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지금은 밑에 매트가 있지만 처음에는 매트조차 없었다. 가르시아가 신는 신발이 그냥 신발이 아니다. 굽이 있는 부츠라 뛰어내리는 장면을 연기하기가 막막했다. 그냥 뛰어내리면 다음날 허리가 아팠다. 매트를 깔고 뛰어내리지만 계속 뛰어내리다 보니 허리와 손목에 조금씩 무리가 있다."

- <카르멘>의 최수형씨나 에녹씨보다 악역은 따로 있다. <별에서 온 그대>에도 출연하는 신성록씨다. 소시오패스 연기 덕에 가르시아가 덜 나쁜 남자로 보일 법한데.
"신성록과 대기실을 함께 쓴다. 성록이가 내게 '형, 내가 <별그대>에선 가르시아야'라고 농담한다. 하나 더, 다음에 <카르멘>을 할 수 있다면 가르시아를 연기하고 싶다고도 한다. 반면에 나는 거꾸로 성록이가 연기하는 호세를 하고 싶다."

 <카르멘>에서 호흡을 맞추는 최수형과 차지연

<카르멘>에서 호흡을 맞추는 최수형과 차지연 ⓒ 오넬컴퍼니


- 지난가을에 <클로저>에서 선배인 서범석씨와 공연했다.
"범석이 형에게 '좋은 연극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마침 범석이 형이 <클로저>로 무대에 오른다고 들었다. 연극 무대에 서는 형을 부러워하던 찰나, 범석이 형에게 '<클로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 뮤지컬을 하면 연기에 대한 생각이 나고, 반대로 연극을 하면 노래를 하고 싶어지는 게 배우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뮤지컬만 하다가 <클로저>를 연습하니 떨렸다. 뮤지컬은 노래하면서 연기적인 단점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무대에서 모든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많았다. 연극을 하면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 반면 노래를 오래 놓으면 노래가 잘 안 된다. 5개월 동안 <클로저>를 공연하다 보니 노래에 대한 걱정이 살짝 있었다. 연극을 하기 전에 일부러 노래로 목을 풀기도 했다. 지금은 대극장 공연을 하다 보니 소극장 공연을 하고 싶어진다."

- 지난 인터뷰에서 웃기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뮤지컬은 치정이나 살인 같은 극단적인 서사가 많지, 코미디는 손으로 꼽는다.
"슬픈 연기보다 웃기는 연기가 훨씬 어렵다. 공연 팬은 한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하는 분이 많다. 웃기는 공연을 여러 번 보면 처음에는 어떤 장면에서 웃을지 모르다가 의외의 대사나 장면에서 재미있어한다. 하지만 다시 웃기는 공연을 찾으면 웃기는 장면이 어디라는 걸 미리 알게 되면서부터 웃음은 반감된다. 웃기는 연기가 그래서 더 어렵다.

내 속에 있는 개그의 조그마한 점까지 모두 끄집어내서 크게 망가질 자신이 있다. 저만의 개그 코드가 있다. 잘 먹히는 사람에게 그걸 보여주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여준다. 하지만 개그 코드가 맞지 않으면 재미있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배우들은 저 멀리서 내가 걸어 들어오기만 해도 재미있다고 한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이디어 좋네'하고 감탄할 만한 유머가 있으면 연습도 해 본다."

카르멘 최수형 신성록 별에서 온 그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