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필자말

평화를!
▲ 우리에게 평화를!
ⓒ 이난영

관련사진보기


내게 대들던 잔데, 그냥 죽이면 섭섭하지...

숲통령 후보였던 느릅나무 후손을 서둘러 제거하자는 비서실장의 말에 늑대는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했다. 비서실장 너구리는 먹바위 딸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는 권력을 피스나 먹바위 딸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썼다.

또한 비서실장은 먹바위 딸을 충동질하여 피스를 공포정치로 몰고 갔으며, 그 틈을 이용해 자신의 재산을 부쩍 늘려가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피스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재산이 많은 비서실장이 느릅나무 후손을 반란수괴로 몰아 손보는 일이 과연 과연 먹바위 딸을 위함이고 피스를 위하기만 한 일일까. 아닐 것이었다. 피스정보기관의 수장인 늑대가 그걸 모를 리는 없었다.

먹바위 딸은 여전히 눈 화장에 대해 궁리하는 듯 두 개의 아이라인을 들고 주황으로 할까 갈색으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건 아닙니다. 느릅나무 후손은 이미 우리 수중에 들어와 있는 잡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 활용 가치를 최대한 높여 보자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늑대는 숲민을 죽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먹바위처럼 정치를 했다가는 먹바위 딸 역시 먹바위와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각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비서실장이 허리를 숙이며 먹바위 딸의 의중을 물었다.

"너무 빨리 죽이면 싱겁지 않을까? 그래도 날 대적했던 자인데 그만한 대접은 해줘야지."

먹바위 딸이 주황색 아이라인을 선택하며 말했다.

"각하, 대접이라면?"

비서실장의 허리가 다시 숙여졌다. 늑대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풋 하고 웃었다.

"지난 선거 때 나보고 친원파에다 독재자의 딸이라며 바득바득 대들던 잔데, 그냥 죽이면 내가 섭섭하잖아. 적어도 뺨을 때려 엉엉 울게도 만들고 무서워서 벌벌 떨게도 만들고 체면이고 뭐고 살려 달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부짖게도 만들고 피똥을 줄줄 싸게도 만들고 맞아서 눈알이 튀어 나오는 경험도 하게하고 한 보름간은 잠도 재우지 말아 보기도 하고,

엉금엉금 기면서 개소리를 내 보라고 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닭소리를 내 보라고 하고 그것마저 못하면 비오는 날 먼지나 듯 몽둥이 찜질을 하기도 하고 설설 끓는 물이 가득 찬 물통에 넣어 보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아 입과 코에 고추냉이를 쳐 넣어 보기도 하고 발가벗겨 미친 듯이 뒹굴게도 하고 거짓말 하지 말라며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하고 고춧가루 탄 물을 먹여 눈물을 하루 한 바가지씩 쏟게도 하고 쇠몽둥이로 머리통을 쳐서 기절 시켜 보기도 하고,

몸뚱이를 공중에 매달아 그네를 태워 보기도 하고 몸에다 물을 적당히 바른 후 전기 고문을 하기도 하고 손톱 발톱을 하나씩 뽑아 보기도 하고 십자가에 걸어 가슴과 양 손 그리고 발에다 대못을 하나씩 박아 보기도 하고 두어 달 먹이를 주지 않아 바짝 마르게 해보기도 하고 시뻘건 인두로 몸을 지져보기도 하다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자술서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내 맘이 풀릴 것 같은데 안 그런가?"

먹바위 딸이 주황색 아이라인으로 눈썹을 그리며 노래하듯 말했다. 먹바위 딸은 눈썹을 둥글게 그리며 느릅나무 가문과의 악연도 이걸로 끝이구나. 지난 시절 먹바위 아버지께서도 독립운동가로 명망이 높았던 느릅나무를 반란 혐의로 제거했는데, 그 아들과 딸로 만나 이렇게 죽이고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맞습니다. 각하! 느릅나무 후손 놈은 그렇게 죽여야 우리의 속도 풀릴 것입니다."

비서실장이 박수를 치며 아양을 떨었다.

"그리하겠습니다. 각하."  

먹바위 딸의 분부를 받은 늑대는 집무실을 나와 숲얼단 본부로 갔다.

느릅나무 후손이 숲얼단에게 체포되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전 숲은 한바탕 검거선풍이 불었다. 검거 대상은 숲통령 선거 때 느릅나무 후손을 지지했던 이들과 피스 재야인사들 그리고 안개폭동의 주모자였다. 숲얼단은 그동안 파악해둔 반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검거에 돌입했다.

숲정부의 담화문, 느릅나무 후손은 간첩!

하루가 지나자 숲얼단의 검거망에 걸린 인사들이 속속 체포되어 왔다. 이튿날 아침 숲총리는 N·피스의 지령을 받은 느릅나무 후손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반란의 수괴로 체포되었음을 알리는 담화문을 숲 게시판에다 게시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담화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S·피스 숲민 여러분! 작금 발생한 대규모 폭동과 숲감옥 탈옥 사건 등에 대해 얼마나 많이 놀라고 당황하고 두려우셨습니까. 우리 먹바위 딸 정부는 지난 숲통령 선거 이후 지속된 소요와 폭동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바, 그와 같은 소요와 폭동은 피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소요나 폭동이 아니라 피스 전복은 물론이요, 먹바위 딸 숲통령 각하를 끌어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란이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먹바위 딸 정부는 N·피스의 지령을 받아 반란을 모의하고 지시한 느릅나무 후손을 간첩죄와 반란죄 및 반란수괴 죄를 물어 긴급 체포 하였으며, 반란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체제전복세력 또한 일망타진하여 수사 중에 있음을 숲민 여러분께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우리 먹바위 딸 정부는 앞으로도 피스의 분열을 획책하거나 숲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약속드리며, 피스의 안녕과 피스의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피스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있어서도 만전을 기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S·피스 총리 물곰 -  

느릅나무 후손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이 실린 담화문이 게시되자 숲은 크게 술렁거렸다.

"느릅나무 후손이 N·피스의 지령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다니, 이게 뭔 소리댜. 그 분이 간첩이었단 말야?"
"낸들 아는가. 정부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하는 게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느릅나무 후손이 간첩이라는 건 말도 되지 않은 데다 반란이라니. 그 분이 반란을 일으키실 분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뭔 일을 벌였으니 잡혀간 거 아닌가?"

"아, 이번 폭동이야 울게 해달라고 우리 스스로 한 거지 느릅나무 후손이 시킨 일은 아니잖여."
"그렇고 보니 정부의 발표가 뭔가 엉성하긴 하네."
"그려, 암만 해도 이 시기에 느릅나무 후손을 가둔 것은 뭔가 수상하이."
"부정선거 시비를 잠재우려고 하는 꼼수 같기도 하고 암튼 죄 없는 이들 여럿이 죽게 생겼구먼."
"그려, 빨갱이에다 반란죄라니 살아나긴 틀렸겠제."

"먹바위가 느릅나무 선생을 반란죄로 죽이더만 이젠 먹바위 딸이 그 아들을 반란죄로 엮어 죽이려하는구먼."
"그러게 말여. 뭔 놈의 세상이 이런지 원……."

서쪽 숲에 사는 숲민들이 번뜩이는 숲경찰의 눈을 피해 조곤조곤 속삭였다. 이웃 숲에서도 느릅나무 후손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숲경찰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제법 큰소리로 말했다. 

"야, 이거 느릅나무 후손 이제 보니 빨갱이었구먼. 지난 선거 때 당선되면 피스를 통일 하네 어쩌네 떠들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먼."
"그러게 말여. 하마터면 저놈 헌티 깜빡 속을 뻔 했잖여."
"얼마 전에 일어난 폭동을 저 놈이 주도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로세."

"먹바위 딸 숲통령 각하를 숲통령에서 끌어 내리려고 숲감옥에 있던 죄수들도 탈옥 시켰다잖여. 감옥에 있는 놈들이 다 빨갱이 아니면 독립운동가들 뺀이 더 있남?"
"그렇지. 빨갱이나 독립운동가나 다 똑같은 놈들이지."
"그러니 느릅나무 후손 그놈이 이번에 피스를 통째로 N·피스에 팔아넘기려고 작심을 한 거여."
"선거 때 그런 말이 나오더만 그 말이 사실이었구먼."

"저런 숭악한 놈들은 씨를 말려야 해."
"그려, 그래야지."
"공주님께서 숲통령이 되시더니 일 한 번 잘하시는구먼."
"허허, 어느 분 따님이신데……."

숲민들은 둘만 모이면 느릅나무 후손의 반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의 입장에 따라 맞장구를 쳐주었으며, 앞으로 살아갈 길을 대비해 느릅나무에 대한 험담과 욕설을 쏟아냈다.

시간이 지나자 누구네 집 아들이 숲얼단에게 잡혀갔고 누구네 집 가장이 반란에 연루되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누구네 집은 가족 전체가 반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아 집안이 풍비박산 났으며 누구네 집 딸은 도망치다 숲경찰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고 누구네 집은 야밤에 가족을 이끌고 N·피스로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숲에서 숲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태그:#박정희, #독립운동가, #빨갱이, #박근혜, #국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