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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고창의 한 매몰지에서 살아 있는 오리를 살처분하려는 장면을 방송사들이 포착했다. <17일 KBS 9시뉴스 갈무리>
 지난 17일 고창의 한 매몰지에서 살아 있는 오리를 살처분하려는 장면을 방송사들이 포착했다. <17일 KBS 9시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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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9일 오후 10시 3분]

지난 16일 고창의 한 오리농가에서 발병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전북의 한 지역. '예방적' 살처분 대상이 돼 오리 2만여 마리를 살처분한 농민 A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무 이상이 없는 오리를 살처분했는데, 우리 농장의 오리에서 AI 양성반응이 나왔다. 행정에서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름 조류 관리를 잘한다고 자부했던 A씨였다. 오리 출하 시 배털(오리 배 부위에 나는 털) 없이 출하한다는 것은 그만큼 완겨 등을 깔아주고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오리 농장에서는 판단한다. A씨의 농장도 그중 하나였다.

"증상도 없는데, 어떻게 신고를..."

"무슨 증상이 있어야 신고를 하지. 오리가 죽지도 않고 아프면 증상이라도 보이는데 그런 것도 없는데..."

A씨가 한숨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유는 살처분 과정에서 AI 증상이 드러나면 그 책임을 해당 농민에게 묻기 때문이다. A씨는 가축평가액의 80% 보상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에 따르면 A씨는 AI가 발생된 것(20% 페널티)과 더불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60% 페널티)되어 가축평가액의 20%만 보상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료값은 40%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신고 안 해서 득 되는 것도 없다. AI가 들어왔는데 신고 안하면 다음 번 사육 때도 문제가 되니까 당연히 신고를 한다. 이상 증세가 없으니까 하지 않은 것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살처분 농가 중에도 나와 같은 일을 겪은 곳이 많다."  

이번 일로 A씨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AI 의심신고가 지난 주 들어왔다고 해서 사료도 다량으로 확보했지만, 이 사료들도 예외 없이 묻었다. 그 양이 무려 40톤이다. 이동제한이 걸리면 사료와 왕겨를 들여올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농민은 상당히 난감한 처지가 된다. 미리 사료를 사놓은 것은 지난 10년간 4차례의 AI 발병 이후, 정부 대책에 대한 경험적 행동이었다.

결국, 사료값만 약 2000만 원의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오리 가격은 지난 2010년 AI 태동 당시에는 높아서 살처분 보상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은 폭락해 제값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사육비를 겨우 건지는 수준이라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정부는 AI 피해 농가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재기할 수 있도록 ▲ 살처분 보상금 신속 지원 ▲ 생계안정자금 및 가축입식자금 융자 지원 ▲ 재산세 감면 및 지방세 체납액 1년 유예 ▲ 피해농가의 자녀 희망 경우 입영 연기 등의 지원을 28일 발표했다.

그러나 AI 피해 농가들은 각종 페널티로 보상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에 기댈 수 있는 지원이 대출이어서 농가에게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부분 빚과 오리 유통업체의 선급금으로 시작하는 사육이라 살처분 후 피해는 A씨가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다시 오리를 사육할 수 있는 날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A씨를 고통스럽게 한다. AI 한파가 잠잠해지고 약 2~3달이 지나서야 토질검사를 시작으로 하는 검사에서 AI 청정지역으로 판명이 나야 사육이 가능하다.

"양성이 나온 것도 정말 의문인데, 살처분 보상도 그렇고 앞으로 사육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지금 농가들은 양성이냐, 음성이냐 그것만 쳐다보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전부 보상을 했지만, 농가 스스로도 방역을 철저히 하시라는 뜻에서 (페널티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AI 양성 농가면 열심히 했다 해도 뭔가 부족한 것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어서 일부 감액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발생 및 의심농가 3Km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을 하는 가운데, 그 밖에 있는 지역의 농민들도 걱정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전북 고창의 한 지역에서 20년 동안 토종닭과 병아리를 키우고 있는 B씨(AI 발병 농가와 10Km 반경에서 양계를 하고 있다)는 현재 상황을 "방법도 없고 불안하지만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그렇다"고 말했다.

B씨는 "닭은 그나마 오리보다 발병 확률이 적지만 혹시 몰라 어디 다니지를 않고 있다. 집과 농장만 왔다갔다 하는데, 농장은 혼자 간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그에게 주변 농가들의 상황을 물었지만, "AI 발병 이후에는 어디 나가지를 않고 여기만 있다 보니까 상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AI 발병 당시 B씨가 겪은 정부의 살처분 방식을 생각하면 외부와 스스로를 차단한 B씨의 모습은 이해가 간다.

"여기는 살처분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에는 사료차가 우리 동네를 들렀다 AI가 발생한 오리 농가로 간 것이 문제가 되어 살처분했다."

천연기념물 연산오계 농가까지 살처분 공포

전국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265호 연산오계(오골계)를 키우는 충남 논산의 이승숙씨도 정부의 예방적 살처분 방식의 AI 대책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씨는 6대째 376년간 연산오계의 명맥을 유지해왔다.

2~3년에 한번씩 벌써 5번째 겪는 AI지만, 한번 겪을 때마다 이씨는 피가 말라 10년은 늙는 기분이다. 이씨는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을 겪을 것인데, 이렇게 살고자 하는 농민이 어디 있겠나"라며 한숨을 지었다.

AI 발병 반경 3Km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는 농림부의 조치를 볼 때, 천연기념물 연산오계를 유일하게 키우고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에도 친환경적인 사육 방식 등을 이유로 AI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살처분에 예외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승숙씨는 "2010년에는 다른 곳으로 피난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내 축산 농가 보호차원에서 오는 것을 꺼리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피난 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한, 철새를 주요 감염 원인으로 보고 있는 농림부의 시각으로 인근의 저수지에서 머물고 있는 철새에서 AI 발병이라도 되면 예방적 살처분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씨 역시 이런 상황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다.

이씨는 "AI긴급행동지침에는 발생 지역 500m에 대해서는 살처분을 하게 되어 있지만, 3Km는 위험지역으로 분류해서 지자체의 판단을 참고해서 예방적 살처분을 하게 되어 있다"면서 "지금은 3Km에 대해 무조건 살처분을 하고 있다. 지침 개정 없이 하는 것은 위법이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씨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철새를 AI 원인으로 보는 농림부의 시각이다. 이씨는 "이미 많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시베리아 등에서 지난 10월에 온 철새들이 그곳에서 AI가 발병했다는 소식도 없는 상황에서 3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문제가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면서 "오히려 동림저수지에서 80마리 정도의 철새가 죽은 것을 1000마리 떼죽음으로 시끄럽게 하는 것이 농림부의 부주의를 숨기기 위해 철새를 주범으로 모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씨는 공장식 축산이 이번 AI의 발병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공장식 축산이 이번 AI의 발병 원인이라는 주장은 국제기구에서도 지난 24일 발표한 바 있다. 그래서 이씨는 AI 대책에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공장식 축산을 친환경 축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연산오계 국가지정 사육인 이승숙씨의 농장 모습. 이승숙씨는 정부가 공장형 축산이 아닌 자연친화적 축산으로 전환을 꾀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이승숙>
 천연기념물 연산오계 국가지정 사육인 이승숙씨의 농장 모습. 이승숙씨는 정부가 공장형 축산이 아닌 자연친화적 축산으로 전환을 꾀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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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양계를 하면 가금류들이 면역력도 높아 AI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연 양계 및 친환경 축산을 하는 농민들에게 복지인증제도를 도입하여 인증 받은 농장에 대해서는 살처분을 예외로 해주는 등의 혜택을 준다면 농민들이 자연스럽게 공장식 축산에서 친환경 축산으로 전환하기 않겠나? 그러면 공장식 축산의 규모도 줄이고 지속가능한 축산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씨는 농림부가 발표하는 AI 대책과 상황에 대해 "현재 농민을 죽이는 것은 AI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전쟁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도 형태를 보면 마치 AI 점령군의 공격에 어디 어디를 방어하고 있다는 식이다. 전쟁난 것처럼 쓸데없이 공포심을 키우고 있다. 사람 전염 위험이 큰 인수공통전염병(사람과 동물을 옮겨다니는 질병)이라고 공포심을 주면서 익혀 먹으면 괜찮다고 말하는데, 누가 먹겠나. 오히려 닭의 뉴캐슬병(1종 가축전염병으로 가금류에게 발생하는 병이다. 호흡기 질환과 신경 마비 등의 증상을 보이며 폐사율은 90%에 달한다)이 농가에 미치는 피해는 더 크다. 그런데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뉴스 한 줄 나오지 않는다. 제발 호들갑 좀 안 떨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살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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