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어린 아이 때부터, 머릿발에 흰서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이날 이때까지, 참으로 한결 같은 내용으로 아버지께 편지를 올립니다. 아버지, 혹시 제가 쓰고 있는 글들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지난 3개월 여에 걸친 시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적었던 글들입니다.

'알코올 중독'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아내도 아이들도 아닌 바로 아버지, 당신이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당신의 말투를 닮아가고, 당신의 행동을 흉내내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몸서리쳐지게 싫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대해 공부하며, 알코올 중독은 유전적 성향을 보인다는 여러 문건들을 접하고는, 이 불행의 연결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단주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의 피가 흐르는 내 자신과 그러한 핏줄에서 자유롭지 못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결심에서 실천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알코올 상담센터를 찾아가고, 단주 모임에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열린 마음의 깊이만큼 다시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술꾼의 아들', 저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주폭에 시달리는 가정의 아이들은 술 취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더욱 주눅이 들게 마련이지요. 다세대 주택의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그 시절, 낮이건 밤이건 술 취한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동네 어귀를 방황해야 했던 그 때. 담벼락에 기대 앉은 두 형제의 그림자는 더없이 작고 초라했습니다. 두 살 어린 동생의 배고픔은 아버지가 잠든 후에라도 달래줄 수 있었지만, 어머니만 두고 나온 두 아이의 서글픔과 죄스러움은 이리도 오래 가나봅니다.

알코올 중독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은 크게 네 가지 성장 과정을 겪는다고 합니다. 책임감이 있는 아이는 가정의 영웅이 되어 부모의 역할을 맡아하는 조숙함을 보이고, 위로하는 아이는 타인의 감정에 신경 쓰며 강박적으로 타인에게 자선을 베풀게 됩니다. 순응하는 아이는 자신의 무능력과 고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위축되고, 반항적인 아이는 문제를 일으킴으로 인해 관심과 보상을 받으려합니다. 결과적으로 네 유형 모두, 정서 발달상의 빈틈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불안감을 간직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까지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술꾼의 아들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거짓 행동도 곧잘 하곤 했지요. 분노는 최대한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섣불리 화를 내거나 감정을 드러냈다간 '주정뱅이 자식은 어쩔 수 없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축적된 슬픔과 분노는 술의 힘을 빌려 외부로 발산됩니다. 마치 다중 인격처럼. 그렇게 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알코올중독자를 대물림 하기엔 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 연년생 두 아들. 알코올중독자를 대물림 하기엔 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십여 년 전에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아버지를 살해한 한 여중생의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을 못 견딘 어머니는 집을 나갔습니다. 술 취해 학원까지 찾아와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그래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던 아이의 일기장이 눈시울을 적십니다. 결국 그 아이는 정상 참작으로 풀려나게 되었지만, 그 후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알코올 중독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를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가족들의 고통과 상처는 상상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알코올중독자들이 그러하듯이,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다정다감한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술이라는 악마에 영혼을 파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저의 단주 과정이 아버지에게 자극이 되기를

40년을 아버지의 술 뒷바라지 하시면서 해장과 관련된 음식의 달인이 된 엄마, 연당여사. 부디 남은 여생 행복하게 오래 사소서.
▲ 엄마의 아구찜 40년을 아버지의 술 뒷바라지 하시면서 해장과 관련된 음식의 달인이 된 엄마, 연당여사. 부디 남은 여생 행복하게 오래 사소서.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나이가 들어 완력으로 아버지에게 대항할 정도가 되었을 때, 그동안 어머니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은 먹먹했고, 죄의식도 컸습니다. 술 취해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파출소를 전전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차라리 자식들 놔두고 도망이라도 갔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비군 훈련까지 갔었다는 일화는 요즘 들어도 쓴웃음과 함께 마음 한편이 헛헛해집니다.

저는 요즘도 명절이 달갑지 않습니다. 전쟁 고아에 유복자셨던 아버지의 인생사는 명절 때 친척 하나 없는 집안 분위기 속에 침통하게 흐르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매년 명절 때마다 이어졌습니다. 명절날,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린 건 단지 공부를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자랐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그 뒷수발 드느라 등골이 휘는 어머니 신경쓰게 해드릴까, 사소한 주먹질 한 번 안 하고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술을 접하게 되고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고….

아버지, 해가 바뀌어 제 나이가 불혹이라는 마흔입니다. 남은 인생 똑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단주를 결심하였습니다. 또한 저의 단주 과정이 아버지께 어떤 자극이 되길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예전만큼 심하진 않으시지만, 요즘도 저희 가족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단란한 가정에서 곱게 자란 아내보기가 민망할 때도 많습니다. 기분 좋게 시작한 술이 결국은 화로 번지는 것을 이제는 끝내야하지 않겠습니까?

알코올 중독은 심각한 질병입니다. 암이나 고혈압과 같은 신체적 질병이며, 가정 파탄을 초래하는 사회적 질병입니다. 또한, 의지만으로 절대 치유될 수 없는 고약한 질병입니다. 하지만 가족과 전문가의 도움, 그리고 다른 알코올 회복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질병이기도 합니다.

남은 여생 어찌 사시렵니까? 이렇게 살다가 가련다 하시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집니다. 알코올에 의한 합병증으로 고통 속에 눈감으시겠습니까? 앞으로 20~30년 남은 여생 부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부디 술로 인해 잃어버렸던 인생을 되찾으소서.

2014년 1월 10일, 이 땅의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에게 알코올중독자 아들 올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마땅히 하소연 할 곳 없이, 음지에서 벌어지는 주폭에 시달리며, 가슴속에 멍에를 지고 살아야하는 알코올중독자 가족들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입니다.



태그:#알코올중독, #주폭, #알코올중독 유전, #알코올중독자 가족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