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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 사진은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철도공사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정홍원 국무총리. 사진은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철도공사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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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원 국무총리님!

제가 이 글을 쓰기 전, 정흥원 총리님의 약력을 조금 살펴봤습니다. 1944년생 경남 하동 출신으로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신 뒤 서울 홍제동 인왕초등학교 교단에 서시며 주경야독으로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시고 1972년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셨더군요. 한때 교단에 서신 분으로 법과 상식이 통할 분인 것 같아 친근감을 갖고 이 공개질의서를 드립니다.

우선 저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1945년 경북 구미에서 출생하여 구미초등학교와 구미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고교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곧장 교직에 몸담아 30여 년 봉직하다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자 정년을 5년 담긴 2004년 2월 29일 조기퇴직했습니다.

저는 퇴직 후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산골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이 마을에서 한 폐가를 도지로 얻어 텃밭을 가꾸며 뒷산에서 나무를 해 군불을 때고 뒤늦게 역사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외 의병·독립군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항일유적답사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영웅 안중근>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

이즈음 전 주인에게 집과 텃밭을 모두 돌려드리고 그 산골마을을 떠나 원주의 한 아파트를 얻어 지난 역사를 독학하면서 다음 세대들이 쉽게 역사 공부에 흥미를 느끼도록 사진으로 보는 <개화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펴냈습니다. 이어 <미군정기> 등 대한민국 현대사까지도 여력이 닫는 한 펴낼 생각입니다.

사실 제가 정년이 보장된 교단을 물러난 것은 차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내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저는 저술을 통해 부정부패 비리 끝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실증으로 말하고, 나라가 망한 뒤 백성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으며 해방이 돼도 나라까지 분단됐다는 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게 근본 처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도종환 의원의 전화... 깜짝 놀랐다

2013년 9월 13일 아침. 평소 친분이 있는 도종환 의원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에 학도병 이우근님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제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수집해와 펴낸 <한국전쟁Ⅱ> 237쪽에 실린 사진과 똑 같다고, 정말 이우근님이 맞는지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사실 저는 강원도 시골에 사는 사람으로 그때까지 교학사 출간 <한국사> 교과서를 보지 못한 터라 답변을 유보하며 그 부분이라도 스캔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한 시간 뒤, 도 의원은 그 부분을 오려 스캔해 내 메일로 보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313쪽의 학도병 이우근 관련사진
 교학사 한국사 313쪽의 학도병 이우근 관련사진
ⓒ 교학사 / 도종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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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한국사 l 학도병 이우근

이우근은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1950년 8월 10일 학도병 71명은 M1 소총 1정과 실탄 250발을 받고 포항여중 앞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1950년 8월 11일까지 11시간 30분 동안 48명이 전사하면서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였다. 전사자 중 한 명인 이우근이 그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저는 도종환 의원의 메일을 보고, 어떻게 한국사 교과서에 이런 황당한 장난을 칠 수 있는지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교학사는 한 여름에 전사했다고 기술해놓고 동복을 입은, 이름 모를 국군 병사의 사진을 이우근님으로 둔갑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마이뉴스>에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라는 기사를 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허구성을 지적했습니다.

문제의 사진, 국군 병사의 동복차림(1951. 1. 5.)
 문제의 사진, 국군 병사의 동복차림(1951. 1. 5.)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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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이 사진은 2004년 2월 12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 자료실에서 박유종(역사학자 백암 박은식 선생 손자) 선생님과 같이 찾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전쟁 관련 문서상자 186, 192, 195, 201 네 상자를 열어봤는데 이 사진은 그 가운데 담겨 있었습니다. 그날 박유종 선생님이 번역해 준 이 사진의 영문 캡션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날짜, 1951년 1월 5일. 신발, 겉옷, 모자; 한국제. 코트, 무기(M1소총), 탄알 미제."

저는 또한 서남수 교육부장관과 양진오 교학사 대표이사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습니다(관련기사 : 교육부장관과 교학사 대표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그러자 교학사에서는 2013년 9월 30일 아래 별지와 같은 답변서를 보내왔습니다(아래 이미지 참고).

교학사의 답변서
 교학사의 답변서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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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육부는 해가 바뀐 오늘까지 묵묵부답입니다. 결국 교육부의 오만한 태도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율 1%도 안 되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전국 1794 고교 중 2곳 교학사 채택... 채택률 0.11%).

현 정권의 정체성을 묻다

정 총리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까? 저는 이즈음에서 현 정권의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일과 관련해 저는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읽어보며 관련되는 조문을 뽑아보았습니다.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7조
①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제26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교육부장관은 헌법 위에 있습니까? 설사 제 질문이 답변하기가 거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관직에서 물러나 집에서 책이나 보면서 소일하는 게 옳지 않는지요?

이런 사태를 몰고 온 근본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렇게 교과서를 무성의하고 부실하게 만들어놓고 어떻게 학교에게, 교사에게, 학부모에게 채택해 달라고 손을 벌립니까. 고등학교 학생이 어리다고 그들에게 아무것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마 정 총리님도 중학교 다닐 때 3·15 선거 당시 대구에서 자유당 정권이 야당 유세장에 청중이 모이지 않게 하기 위해 일요일 학생등교와 같은 무리수를 쓰다가 결국 4·19민주혁명을 맞은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 시신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라 혁명의 도화선이 되신 걸 진주와 이웃 동네라 잘 아실 겁니다.

한 버스기사의 말

얼마 전 산책길에 원주 시내에서 55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버스가 종점 가까이 이르자 승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자 기사가 저에게 말을 걸어 이런저런 세상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버스가 부론 남한강 기슭에 이르렀습니다. 버스 기사가 차를 잠시 정차시키더니 손으로 산언덕을 가리켰습니다.

"어르신, 저기가 어딘 줄 아십니까?"
"…."
"저기가 바로 법무부 고관이 섹스파티를 벌였다는 문제의 별장입니다."

다음에 말은 전달치 않겠습니다. 저도 정말 그런 사태가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말로 다시 묻겠습니다.

첫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까?
둘째, 대한민국 공무원은 국민 위에 군림합니까?
셋째, 대한민국의 국가기관은 국민이 문서로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해도 됩니까?

여기에 대한 답은 모든 백성들이 지켜볼 것입니다. 제발 나라의 불행을 막아주십시오.

2014년 1월 9일 공개질의자 박도 올림

[관련기사]
- 교학사 교과서가 불량품인 이유
- 서남수 교육부장관님, 대체 뭐 하고 계시나요?
교학사도 잘못 인정하는데... 교육부는?
학도병 사진 문제 한 달... 교육부는 묵묵부답
교육부장관과 교학사 대표에게 드리는 공개 질의서
학도병 이우근 조카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5개월 전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

덧붙이는 글 | 정홍원 총리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는 오늘 원주 우산동우체국에서 익일특급우편물로 정부세종청사 총리실로 발송했습니다.



태그:#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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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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