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엔더가 무중력 훈련장 앞에 서 있는 모습, 그의 영웅적 이미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 영화 포스터 엔더가 무중력 훈련장 앞에 서 있는 모습, 그의 영웅적 이미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주)


화엄경전의 최고 경지인 십현연기 중, 한 현상에 의해 무궁무진한 진리를 알게 되는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이라는 말이 있다. 아사 버터필드(엔더 역)에 의한 아사 버터필드의 영화, '엔더의 게임'은 탁월한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이다. 탁사현법생해문처럼 우리가 보는 영화의 여러 장면 속에는 매우 무겁고 동시에 복잡한 상징이 담겨져 있다.

영웅 그리고 메시아

마지막 몇 분을 제외하면 대체적인 영화의 구성은 원작이 가진 인간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보다는 대중적 오락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주라는 공간과 외계인이 등장하고 컴퓨터 게임과 흡사한 전투장면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우주, 외계인 침공, 공상과학드라마의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천천히 영화를 생각해보면 원작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상징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먼저 엔더의 나이는 영화에서 십대 초반의 나이로서 아직은 앳된 소년인데도 불구하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그것도 외계인을 쳐부수기 위해 전쟁훈련을 받는다. 지금의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미래의 어는 순간에는 이것이 가능하고 오히려 소년, 소녀들에게 전쟁 수행의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이상한 논리아래 그들에게 전투교육을 시킨다. 결국 전쟁의 수행에 있어 더 뛰어난 감각을 본능에 의한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본능이 어른에 비해 줄어들지 않은 소년, 소녀들이 전쟁 수행의 적임자가 된다는 논리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전쟁은 일정한 알고리즘을 가진 컴퓨터게임처럼 되었기 때문에 게임 순발력 면에서 어른보다는 소년, 소녀들이 월등하다는 논리도 작동하고 있다. 힘과 체력으로 하는 전쟁은 이미 종식된 세상이 된 것이다.

주인공 엔더 소년의 모습이지만 영웅, 또는 메시아로 그려지는 엔더

▲ 주인공 엔더 소년의 모습이지만 영웅, 또는 메시아로 그려지는 엔더 ⓒ 롯데엔터테인먼트(주)


앤더는 처음부터 선택된 아이였다. 문득 메시아적 요소가 느껴진다. 또 실제로 메시아처럼 보인다. 정형화된 영웅 탄생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웅으로 만들어지는 앤더, 여기까지는 일반화된 할리우드 영웅이미지에 근접한다.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조직을 장악하며 동시에 적을 무찌르는 보통의 영웅이야기. 하지만 앤더는 영웅에 머물지 않고 적을 연민하며 그들과의 영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생존에 대해 고뇌하는 메시아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주 등장하는 앤더의 눈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은 앤더의 내면에 대한 원작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영화적 표현으로서 그가 영웅의 모습을 넘는 또 다른 위대함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시아적 이미지에 대한 복선은 영화 곳곳에서 감지되는데 앤더가 소속되었던 모든 조직에서 보여주는 그의 존재감은 이전의 영웅이야기에서 흔히 보이는 용맹함이나 저돌적 느낌보다는 우정과 연민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하며, 복수심에 가득한 친형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형을 이해하는 장면은 앤더가 가진 정체성이 단순한 영웅적 이미지와는 조금은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묵시록

전쟁에 대한 그라프 대령(헤리슨 포드 분)의 생각은 동서고금의 모든 전장에서 통용되는 진리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적을 섬멸하는 것만이 후환을 없애는 길이라는 생각인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정말 소름 돋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적이 될 것이고, 더 넓게는 이 우주에서 지구는, 또 다른 외계의 존재들에게 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섬멸이란 모조리 무찔러 멸망시킨다는 뜻인데 영화에서 앤더는 외계의 존재들이 사는 별 자체를 공격하여 지구의 적인 외계의 존재들을 섬멸시킨다. 그라프 대령과 최초 외계인 침공을 막아낸 메이저 래컴(벤 킹즐리 분)은 매우 기뻐한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자. 외계의 존재에 의한 우리의 멸망도 그 외계의 존재들에게는 엄청난 기쁨이 될 것이 분명하다. 원작이나 영화에서 이러한 간접적 방식을 통해 인류 멸망에 대한 잠재적 공포를 표현했을 수도 있다. 앤더는 그 멸망의 책임자에서 다시 새로운 부활과 창조주의 책임을 지고 우주를 여행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데 이것은 원작의 작가가 가진 메시아에 대한 이미지를 교묘한 방법으로 소설에 녹여낸 결과이며 영화는 이것을 좀 더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엔더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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