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 개혁안이 가결된 후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함께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국회 법사위 출석한 남재준-김관진 1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 개혁안이 가결된 후 김관진 국방부장관과 함께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갑자기 (월남자인) 사단장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참모장인 내게 장지선정을 부탁했다. 도상연구를 거쳐 한 곳을 결정한 뒤 그 지방의 지관을 데려와서 확인시켰더니 깜짝 놀라더라. 사단장님도 만족하셨는데, 내가 생각한 건 '기관총진지 선정시 고려사항'이었다. 군사학은 군에서만 쓰는 게 아니다." (2004년 1월 육군대학 대대장반 정신교육)

"육군 참모총장 시절 이발할 때 경호원도 없이 직접 차를 몰고 나가기도 했다. 공사구분에 있어서는 결벽증 수준이다." (후배 육군 장성)

"간부들을 처음 관사로 초대한 자리에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양주를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온 사람이 있다. 그런 것도 안 받는 거다." (국정원 한 간부)

"사실 개인 캐릭터 갖고 인물 탐구하는 건 우리한테는 도움이 안 된다. (신용)카드도 잘 안 쓴다는 말도 들었다. 개인으로 보면 꽉 막힌 갑갑한 사람이다. 원세훈처럼 개인비리가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원세훈은 보안감각이 약했고, 입이 쌌다. 우리가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김하영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떠보는 질문에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나왔다고 바로 확인해줬다. 남 원장은 쓸데없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국회 정보위 민주당 관계자들)

남재준(70) 국가정보원장 자신의 발언과 그를 지켜봐 온 인사들이 전하는 말을 들으면, '청렴', '원칙주의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육군대학 교관시절인 1979년 12·12 군사쿠데타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육사 25기 동기생 김오랑 소령의 묘를 찾아가 통곡하고, 서슬 퍼런 신군부와 신군부의 광주항쟁 진압을 비판했다는 일화까지 감안하면, 여기에 '강직한 군인'이라는 표현이 덧붙여지게 된다.

자신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한 '노무현 청와대'와 '군 검찰 독립'을 골자로 한 군 사법개혁 문제 등으로 갈등하고, 그 와중에 '정중부의 난' 발언 보도(그가 육군 수뇌부 회의에서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느냐'고 말했다는 것은 현재까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가 나오면서, 그는 부패집단이라는 치욕에 시달리는 보수 세력으로부터 '군심(軍心)의 아이콘' 으로 칭송받는 대상이 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자신을 영입하려던  이명박-박근혜 양쪽에 안보관을 묻는 질의서를 보낸 뒤 그 답변 내용을 근거로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고, 결국 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국가정보원을 책임지게 됐다.

박근혜 시대의 '애국주의 전사'... "박 대통령과 부딪칠 각오도"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2월 23일 국회에서 열리는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출석을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2월 23일 국회에서 열리는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출석을 위해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청렴강직한 군인'이라는 이미지에 사실상 권력2인자인 국정원장이라는 실(實)이 합쳐지면서 명실상부한 '박근혜 시대의 애국주의 전사'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국정원장 취임사에서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 여러분도 전사로서의 각오를 다져달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을 '전사(戰士)'로 규정하고 있다. 군생활과 국정원장 활동을 종합해보면 그는 '36년 군인생활'을 강조하는 수사적 의미의 '전사'가 아니라, 자신만의 확신에 찬 투사로서의 '전사'형 인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장 남재준'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를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한, 지난해 6월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 공개 당시 그는 "박 대통령의 지시로 공개한 것이냐"는 질문에 "청와대와 교감 없이 독자적으로 했다, 역사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답했다. 정상회담 회의록을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도 하지 않고 공개했을 리는 없으나, 청와대 지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공개했다는 그의 주장은 그간 그의 행적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있다. 

안보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은 "남(재준) 원장은 가끔 이것(외부인맥을 통해 만들어온 자료들)을 들고 가 박 대통령을 설득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의견이 갈리면 박 대통령의 지시라도 듣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는 외부인의 시각만이 아니다. 한 국정원 간부는 "남 원장은 역사적 평가를 중시한다, 그가 역사서를 즐겨 읽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평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가 부딪칠 때는 박 대통령과 부딪칠 각오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국정원법 2조는 국정원을 "대통령 소속으로,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조직으로 규정해놨는데, 이를 무시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문민통제'라는 민주정치의 기본전제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이같은 그의 행태는 지난해 12월 21일 국정원 간부 송년회에서 했다는 '2015년 자유민주주의체제 통일'발언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24일자 <조선일보>는 이 송년회 참석자가  "조국 통일 달성을 결의하는 자리였다. 국가 보안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논의했다"며 "오는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남 원장이 간부들에게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 한 점도 거리낌 없이 다 같이 죽자"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고도 했다.

(국정원은 이 보도에 대한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었으나, 1월 1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남 원장은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대된 상황에서 북한 체제가 공고화되는 상황부터 북한 체제가 붕괴되는 상황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눈을 부릅뜨고 생명을 바칠 각오로 들여다봐라, 이렇게 얘기를 한 것"이라며 발언 취지가 왜곡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는 '2015'년 부분이 거론되지 않은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보도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역시 국가보안이라 말할 수 없다는 '조국 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부분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 붕괴를 앞당기기 위한 모종의 적극적인 조치, 즉 공작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가깝게는 '남북 간 신뢰를 바탕으로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전면적으로 배치되고, 멀리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1장 1조)하며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1장 4조)는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위반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통해 산출한 통일비용 추정에 따르면, 북한 급변사태시 통일비용은 30년간 총2조1400억 달러(약 2525조원)로 점진적 통일비용 3220억달러(약 379조 9600억원)보다 7배나 많은데, 이 역시도 완전히 무시됐다.

'조국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 북한 전복전 범주?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열린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뒤를 지나고 있다. 여야는 이날 특위에서 국정원 직원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정치활동 관여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처벌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정원 개혁안을 의결했다.
▲ 남재준 뒤에 황교안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열린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출석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뒤를 지나고 있다. 여야는 이날 특위에서 국정원 직원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정치활동 관여를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처벌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정원 개혁안을 의결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남 원장이 현역 군인과 학생군사학교(ROTC) 생도 등을 대상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1차례 강연할 때 쓴 '북한의 대남전복전략 실체와 우리의 자세'라는 강연 자료가 지난해 3월 공개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북한이 해방이후 현재까지 줄곧 '대남전복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전복전'을 상대방의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상대가 완전히 전복될 때까지 시간, 공간, 수단, 방법, 대상 면에서 무제한으로 투쟁을 전개하여 궁극적으로 상대방을 전복시키는 전쟁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남재준 국정원'이 구상하는 '조국통일을 위한  구체적 플랜'도 맥락상 이런 전복전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전히 자신을 '참모총장'으로, '반공 전사'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모총장이나 반공전사는, 북한과 (물리적으로) 맞서기만 하면 되지만, 국정원장은 대북업무만 하는 자리가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맞서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박정희 정권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그랬듯이 북한과 접촉도 해야 한다. 국정원이 핵심 책임을 맡아야 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대결주의적인 접근만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국정원은 비밀정보를 수집·분석·생산하고 이를 지키는 업무를 할 뿐이지, 정치적 판단을 내리거나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다.

민주당 소속의 한 정보위원은 "그는 군 시절 작전 전문가였는데, 군 작전처럼 하면 남북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국정원장은 고도의 정보기술, 정보관리가 필요하고 그래서 문민통제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 원장은 민간인 시절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국방전문가를 불러 만나면서 "쭉 지켜봤는데 당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반공주의 이분법 세계관의 소유자임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를 마치면서 "정상회담 공개, 국정감사 등을 거치면서 정치권을 보는 시각 등이 취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 간부송년회 발언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별다른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14년에도 여전히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태그:#남재준
댓글8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