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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그 곳이 북미대륙의 머나먼, 동쪽 땅끝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을 떠나 차 안에서 생활하며 떠돌이 여행을 한지 한 달이 넘은 시점, 그리고 평소 워낙 더럽게 사는데 익숙한 태도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빨강머리 앤'은 동화로 널리 알려진 소설 속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은 캐나다 동쪽의 섬,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와 그 옆에 있는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라는 곳이다. 소설 속의 앤은 노바 스코티아 출신이다. 노바 스코티아는 라틴어로 '새로운 스코틀랜드'라는 뜻인데, 캐나다의 맨 동쪽 끝에 위치한 반도 지형의 땅덩어리이다.

얼마나 외진 곳인지, 같은 캐나다로 위도가 비슷한 서쪽의 밴쿠버에서 노바 스코티아까지 거리가 대략 6000km나 된다. 대서양 건너 영국의 진짜 스코틀랜드까지가 직선 거리로는 더 가까울 정도이다. 

캐나다 입경 포인트는 우드스톡 이라는 국경도시 근처였다. 우드스톡은 서쪽으로 미국의 메인 주와 국경을 마주한 뉴 브룬스윅이라는 주의 소도시였는데, 국경 검문소에서 사단이 생겼다. 불법이민 문제 등으로 살벌한 미국 멕시코 국경과 달리 미국 캐나다 국경은 평소 상대적으로 훨씬 평화로운 편이다. 이런 까닭에 마치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 통과하듯, 차에 탄 채로 신분증을 내보이는 걸로 입국 심사가 끝난다.

동양인을 자주 보기 힘든 지역에서 벌어진 일

헌데 우드스톡이 동양인을 자주 보기 힘든 북미 대륙의 귀퉁이였던 데다가 내 몰골이 부랑자 비슷하게 보였던 게 말썽을 일으켰다. 캐나다 국경검문소 여직원이 부스에서 고개를 쓱 빼더니 내 차 안을 흘깃흘깃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내민 서류는 건성으로 보면서, 내 모습과 내 차 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곧이어 국경검문소 사무실 옆으로 차를 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 가라고 했다. 유치장 면회소처럼 조그만 구멍들이 뽕뽕 뚫린 방탄유리 창문을 통해 검문소 직원과 대화했다.

냉랭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역력했다. 간단한 조사가 끝난 뒤 이윽고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사무실로 옮겨 가라는 명령이 또 떨어졌다. 사무실에서는 미주알고주알 세밀한 물음과 답변이 오고 갔다. 이런 식으로 30분 이상의 조사가 계속됐다. 캐나다 검문소 사람들이 나를 불법이민이 많은 멕시코사람으로 생각했거나, 아니면 워낙 후줄근한 차림에 오래 씻지 않아 풍겨나오는, 유쾌하지 않은 체취 때문에 부랑자로 여겼던 듯했다. 30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1년에 한두 차례 목욕할 정도로 씻기를 싫어하는 체질이 일을 키운 것 같았다.

검문소 직원들이 수상한 사람으로 간주한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사람을 죄인취급 하듯 막 다루는데 화가 나서 좀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자 검문소 직원은 제 발이 저렸는지, 얼굴이 발개졌다. 그리고서는 단 3일만 캐나다에 체류할 수 있는 특별사증을 내주고 국경 통과를 허용했다.

빨강머리 앤의 고향, 살고 싶은 곳이네

노바 스코티아
 노바 스코티아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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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국기와 노바 스코티아 주기. 주기가 영국의 스코틀랜드 국기와 비슷하다. (왼쪽) 노바 스코티아는 뉴 스코틀랜드라는 뜻으로 실제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이민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산다. 이 곳 사람들의 영어 발음도 캐나다보다는 영국의 스코틀랜드에 더 가깝다. 캐나다 국경검문소에서 내준 3일짜리 특별 사증. 불법 이민자로 의심돼 30분 넘게 조사 받은 뒤 3일 이내에 캐나다를 떠나는 조건으로 받은 비자다.

빨강머리 앤의 동네
 빨강머리 앤의 동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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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스코티아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캐나다 본토보다는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흡사한 이 풍경을 배경으로 소설, '빨강머리 앤'이 쓰여졌다. 날씨가 대체로 약간 추우면서 구릉이 많은 이런 시골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이민 가서 살게 된다면 1순위 후보지 가운데 하나이다. 

소박한 풍경
 소박한 풍경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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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빨강머리 앤'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왼쪽, PEI 관광청 제공) 노바 스코티아와 PEI 일대에서는 빨래를 마당에 널어 놓은 집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짐작하게 한다.

노바 스코티아 바닷가
 노바 스코티아 바닷가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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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노바 스코티아의 마을. (위 왼쪽과 오른쪽) 소설 속에서 앤은 노바 스코티아 출신의 고아로 PEI에서 농장을 하는 한 가정으로 입양된다. 앤은 PEI와 노바 스코티아에 살면서 어쩌면 가끔씩 파도 치는 대서양의 해변에 바람 쐬러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예술가
 예술가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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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 40세가 넘은 나이에 홀로 머나먼 땅, 노바 스코티아로 이민한 골럼바 김씨. 서울에서는 미술학원장을 했는데, 노바 스코티아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유명한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녀의 인생도 한편의 소설처럼 우연의 연속이었다.

최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김씨는 개인 화랑(www.golumba.com)을 운영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바 스코티아의 펀디(Fundy)만. (오른쪽) 한반도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넓은 펀디만의 물 색깔이 온통 황토 빛 인 것이 이채로웠다. 김씨는 노바 스코티아와 PEI 등의 풍경이 너무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영감을 얻기 쉽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sejongsee.net(세종시닷넷)에도 실렸습니다. sejongsee.net은 세종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비영리 포털입니다.



태그:#빨강머리, #앤, #스코틀랜드, #노바 스코티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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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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