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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것은 입에는 좋아도 몸에 해롭듯. 사랑도...?
▲ 양면성 달콤한 것은 입에는 좋아도 몸에 해롭듯. 사랑도...?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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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 H사에서 신형 S차를 막 출시했을 때쯤 세간에 '월 300만 원 이상 벌면 S차 한 대 끌고 다니기에는 무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당시 연애 중이었던 그와 나는 '우리 결혼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굴리겠는데?'라고 겁없이 말하며 신혼의 꿈을 꿨던 20대 풋내기였다. 그와 나는 결혼을 암묵적으로 약속하며 신혼 첫 자동차를 H사 S차로 정해놨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을 했더니 '약속은 꿈이 되고, 꿈은 현실성이 없어진다'는 걸 깨닫게 됐다. 두 사람이 같이 버는 만큼 돈 나갈 구멍 또한 두 배로 넓어졌다. 그와 나는 신용카드회사에 매달 '약정 후원'을 하는 꼴이 됐다.

결혼한 후 월급이 통장에 잉크만 남긴 채 지나간 지 3개월 정도 지났을까. 우연히 그의 카드명세서를 보게 됐다.

"오빠, 이리와 봐~. 무슨 카드 값이 이렇게 많이 나가?"
"뭐가? 아… 그거 있었냐? 너 신혼여행 때 면세점에서 가방 산 거?"
"그게 언젠데…. 그렇다 해도 좀 많은 것 같은데…. 어디 보자, 우리가 뭘 이렇게 쓰나…."
"뭘 봐~! 봐봤자 너랑 나 먹고 입은 것뿐인데…. 그리고 얼마 전에 내 카드로 회사 물품도 샀어."
"뭐야? 말도 없이…. 그래서 돈은 받았…, 오빠!! 이거 뭐야?!"

몇 백만 원 무이자할부... 동공이 흔들렸다

"그 달 내 카드값이 좀 넘치더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내 카드값 막고, 너 화장품부터 가방까지 무이자로 긁었어"라는 남편. 어찌해야 합니까.
 "그 달 내 카드값이 좀 넘치더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내 카드값 막고, 너 화장품부터 가방까지 무이자로 긁었어"라는 남편. 어찌해야 합니까.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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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카드명세서를 보니 OO백화점에서 결제한 몇백만 원이 무이자 할부로 다달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동공이 흔들렸지만, 차분하게 읽어봤다. 최초 결제일은 결혼 전 어머님께서 주신 꾸밈비로 예복 및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쇼핑했던 날이었다.

"세상에. 이게 뭐야…. 그날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결제한 거 아니었어!?"

그는 날카롭게 카드명세서를 빼앗아 갔고 그 뒤로 말이 없었다. 내가 계속 고양이가 주인 쫓아다니듯 캐물으니 그제서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해주기 매우 귀찮다는 듯 말해줬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 달 내 카드값이 좀 넘치더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주신 돈으로 내 카드값 막고, 너 화장품부터 가방까지 무이자로 긁었어."
"카드값이 내 꾸밈비 만큼 넘쳤어? 몇 백씩이나?"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 카드값 내고 남은 돈은 내 카드 남은 할부 다 갚았어. 결혼하는데 카드값 있는 채로 결혼하긴 좀 그렇잖아. 그치?"

하아…. 이 사람을 귀엽다고 해야 하나, 순진하다 해야 하나. 아니면 바보라고 해야 하나,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는 말 그대로 어머니가 주신 꾸밈비로 카드 막음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결혼 전에 샀던 예복·화장품·가방·신발값을 따박따박 갚고 있었던 것이다.

"혼수, 나도 카드 결제할 걸 그랬나?"

"나 원참 기가 막혀서…. 뭐라 할 말이 없네…."
"왜 또 화내려고 그래~. 카드로 쓰나 현금으로 쓰나 거기서 거기잖아. 그리고 결과적으로 너는 너가 사고 싶은 거 다 샀으니까 된 거 아니야?"
"야! 그게 어떻게 똑같아! 따지고 보면 어머니가 나한테 사주시는 선물값이었는데 그 돈으로 너 술 먹고 다닌 카드값을 낸 거잖아!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돈으로 나한테 선물을 하신 꼴이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돈이 다 거기서 거기지. 어느 주머니에서 나오냐가 뭐가 중요해?"
"오빠 웃긴다. 그럼 나도 카드 할부나 대출금으로 혼수해올 걸 그랬나?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죄다 신용카드 무이자로 벅벅 긁어서 사고, 나중에 오빠랑 같이 '그래 우리 이제부터 빚갚기 시작이다, 파이팅!' 이럴 걸 그랬나?"
"야…. 그건 이거랑 다르지…. 집을 내가 샀으니 네가 집을 채우는 게 우리나라 결혼의 전통이라며. 그래서 나는 집을 샀고 넌 혼수를 했지. 그리고 어머니가 너 들고 입으라고 돈 줬지. 그래서 너는 들고 입을 거 샀지. 뭐가 문제지?"

"그게 문제야. 어머니가 나 들고 입을 거 사라고 준 돈을 오빠가 중간에서 빼돌린 것!"
"말 다했냐? 빼돌리긴 누가 빼돌려! 그 돈으로 뭐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다 우릴 위해서였다고! 결혼시작부터 신용카드 빚 가진 채로 시작하는 거 너도 싫다 했잖아!"
"그래, 그건 나도 싫은데…. 그렇지만 그건 오빠 빚이었으니 오빠가 알아서 갚았어야지. 어머니가 나한테 준 돈으로 갚으면 안 되는 거였잖아! 어머니가 오빠한테 전해주라고 한 그 돈은 엄연히 따지면 내 돈이라고 내 돈!!"

그는 이과생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의 뇌구조는 보통사람의 그것과 달랐다. 똑같은 말을 백 번 천 번 해도 도통 알아듣지 못했다. 같은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그와 나는 대화가 아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도, 하기도 싫었다. 내 말을 절대로 이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면 절대 저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는 데 내 돈으로 저 많은 화장품과 가방 그리고 평소에 입지도 않을 화려한 예복을 샀다고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더불어 '집안의 모든 소품을 순순히 현금 결제로 한 내가 어리석었던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꾸밈비를 이제 와서 도로 뱉으라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때 그 돈을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였다'고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 속아서 결혼한 걸까

비슷한 것 있어도 같은 것은 없지.
▲ 다름 비슷한 것 있어도 같은 것은 없지.
ⓒ 꺽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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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잠시라도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런데, 고작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고 해서 마치 그동안 쌓아놓은 눈물을 댐 개방하듯 단시간에 이렇게 쏟아내도 되는지 참 신기했다.

"이 사람, 정말 내가 알던 그 사람 맞아? 나 속아서 결혼한 건가? 이런 게 바로 성격차이야? 그래서 다들 성격차이로 이혼하는 거야?"

나는 자꾸 과거의 그와 현재의 그를 비교했다. 마치 새로운 사람과의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이전의 애인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듯 말이다. 나는 그러니 애인과 남편을 비교하고 있는 셈이었다. '같은 사람 다른 느낌'이랄까.

결혼의 문턱을 넘어선 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6년 동안 알아온 그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물 밀려오듯 나를 엄습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이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앞으로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태그:#결혼,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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