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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급격한 우경화의 길을 걷더니 급기야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고 나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익 세력인 새역모의 교과서 개악 배후에도 아베를 위시한 극우세력의 지원과 조종이 있었다.

일본인 출신으로 2003년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정교하게 연구하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인물이다. 현재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호사카 교수는 독도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와 관련된 문제를 두루 살피고 있다.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아래 이털남)은 호사카 교수를 '보이는 팟캐스트'에 초대해 일본 우경화의 본질적 배경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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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교수가 한국에 오게 된 데에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읽었던 명성황후 시해 사건 관련 잡지 기사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호사카 교수는 그 기사를 읽으며 한국에서 한국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대로 연구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비록 렌즈 업체를 운영하던 부친의 요구에 따라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부친 회사에서 잠시 사무를 봐야 하는 기간을 거쳐야 하긴 했지만.

호사카 교수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70년대에만 해도 학교에서는 일제 침략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때문에 일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한국은 '한때 식민지였던 나라'라는 피상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호사카 교수는 "신주쿠 거리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최고 길게 답한 사람이 15년이었다. 짧게는 3년이라는 답도 나왔다"며 일본 교육의 심각성을 전했다.

일본 우경화, 역사적 콤플렉스의 반영

연구를 하면서 정립한 호사카 교수의 판단은 일본의 우경화 정책이 콤플렉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군대를 가질 수 없는 전범국가라는 콤플렉스다. 따라서 일본의 우경화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식 군대를 가지는 보통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호사카 교수는 진단했다.

"1990년 이라크 전쟁 때 일본은 군대가 없어 군사력 지원은 전혀 하지 못하는 대신 130억 달러에 달하는 큰돈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도 뿌리지 않고 돈 낸 걸로 큰소리치지 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때 일본이 깨달은 점이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호사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전범국가의 오명을 벗고 군대를 가진다는 큰 플랜 하에서 우경화 정책이 시작됐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것도 이 플랜의 일환이다.

동시에 일본 우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국민 교육이다. 군대를 가질 수 있도록 개헌하려면 50% 이상의 국민들이 찬성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본이 잘못을 저지른 침략국가가 아닌 정당방위를 행한 보통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호사카 교수는 "결국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은 국민 세뇌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는 범죄자이고 우린 범죄자를 사형시킨 것뿐이다, 우리는 나쁘지 않았다'나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신사인데 참배를 가는 것이 뭐가 문제냐'나 '위안부에 강제성은 없었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세계적인 상식을 완전히 부수려 한다."

새역모가 교과서 만들기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사카 교수는 "새역모는 왜곡 교과서를 만드는 이유가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는 이상한 좌파사상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 우파세력의 활동은 일본 내의 좌파사상을 뿌리 뽑고 자신들의 사상을 국민에게 심어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로 거듭나 과거의 야성을 되찾기 위함이다.

미흡한 과거청산이 우경화의 근원

"일본이 이렇게 된 배경엔 매우 미흡한 과거청산이 있다."

호사카 교수가 진단하는 우경화의 시발점, 근원은 바로 이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이 형성되면서 공산주의 혁명을 우려한 연합국의 판단이 전범 청산을 불완전하게 미흡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천황을 죽이면 천황을 따르는 무리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 나아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했다.

결국 맥아더는 전쟁의 최고 책임자인 천황을 책임 대상에서 제외했고 대신 A급 전범 몇명만 기소하는 선에서 그쳐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의 틈새에서 살아남은 전범과 그 후손들이 이후 일본 사회의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고, 이들이 지금의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

호사카 교수의 진단은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친일파의 잔재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이털남, #호사카 유지, #일본 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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