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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혹은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죽음'을 목격한다는 건 엄청난 자랑거리이다. 아파트 고층에서 친구의 큰아버지인가가 몸을 던져 동네가 잠시 시끄러웠다. 학원이 파하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 쯤 나는 친구들과 팔짱을 꼭 낀 채 기어코 '죽은 사람'을 보러갔다. 구급차와 경찰차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당연히 주검은 천으로 덮여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피는 선연히 기억에 남는다. 바닥에 검붉은 젤리처럼 엉겨있던 피. 한쪽 끝을 잡아들면 덩어리째 딸려올 것 같았던 죽음의 흔적. 생애 최초의 죽음을 그것으로 확인하곤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돌아가신 분의 귀신이 자신의 죽음을 '구경'했다고 혼구멍을 낼 것만 같았다. 뒤도 돌아볼 수 없게 무서웠고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비록 다음날은 무용담을 쏟아내며 잊어버릴 공포였지만.

그 후로 다시 열 살, 혹은 훨씬 더 많은 나이를 먹으며 '죽음'은 익숙해졌을까. 그런 것 같다. 인터넷을 달구는 죽고 죽인 기사. 누구네 누구가 돌아가셨대, 하는 소식. 집안 어른의 장례식에서 슬피 우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런데 현재의 나는 그 흔한 죽음을 기피하려 하는 만큼이나 삶이 간절해졌다. 응? 이미 살아있는데 뭐가 더 간절하단 얘기인고? 이건 사춘기적 고뇌도 아니오, 인생의 황혼녘에 반추할 무엇도 아닌 꽤나 조심스럽고 뜨악한 발상인데, 가을이를 입양하면서 심화된 증상임에 분명하다.

가을이가 온 후, 삶이 간절해졌다

날이 추우면 다리를 절어 두터운 옷을 입혔다
▲ 산책 준비 완료 날이 추우면 다리를 절어 두터운 옷을 입혔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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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집을 나가 길을 걷고 볼 일을 보고 다시 길을 건너 귀가를 한다. 그 와중에 무단횡단도 하고, 신호도 무시하고, 인도를 벗어나 군것질을 하느라 정신을 팔고 다니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입양 후에 달라졌다. 만에 하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 치자. 그럼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을이는 어떻게 되나, 에 생각이 미친다.

화장실을 참다 참다 마지못해 바닥에 누겠지(가을이는 산책 시에만 배변을 한다). 배가 고파 남은 사료를 싹싹 핥아 먹겠지. 떠놓은 물은 고작해야 이틀간 마실 양인데. 자다 자다 지쳐 바닥을 긁고 있을지도 몰라… 망상이 날개를 달고 겉잡을 수 없이 흐르다 보면 결론은 '정신 차리고 몸 사리자!'가 된다(이런 맥락에서 나는 '오타쿠'도 바람직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목숨 집착'은 더 구체화 되었다. 운전자인 나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순간 방심하여 다른 차에 피해를 주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다. 그것이 단순히 민폐의 수준이라 사과로 마무리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본의 아니게 누군가 다치기라도 하면! 모든 경우의 수에 '만약 가을이라면'을 갖다 붙이면 아주 몰입이 잘 된다. 지금껏 가족 없이, 특별한 누군가 없이 살아온 것도 아닌데 지금에서야 이러고 있는 이유는 뭘까.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연약한 생물을 맡은 바람에 쪼그라든 심장 탓일 게다. 그리고 한 사람, 한 목숨이 얼마큼 고귀한지 알게 만든 입양의 선물 덕이기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작은 말씨에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이 지금까지의 나였다면, 이젠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애틋한 존재임을 상기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그러니 물 흐르듯 넘어가지 못할 일이 없더라… 제법 점잖아 지지 않았나?

9월에 세상을 떠난 왕왕이

보호소에서의 첫 겨울을 무사히 보내길
▲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가들 보호소에서의 첫 겨울을 무사히 보내길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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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목요일, 친구와 보호소를 찾았다. 주말이 아닌 평일 방문은 처음이었다. 예상대로 견사엔 월요일부터 쌓인 배설물에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밥통과 물통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허리가 끊어지게 이고 지고 날라도 해야 할 일은 계속 밀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400마리의 개들은 순수한 눈망울로 우리를 반겼다. 핥아주고 안아줬다. 다가와 비비기도 하고 귓속말을 속닥이기도 했다. 이 녀석들의 생명은 또 얼마나 소중한지. 추우나 더우나 같은 자리에서 한결 같이 기다려주어 고맙고 대견하다.

중성화수술 직전 거사를 치른 어느 '탕아' 덕에 10월에 태어난 꼬물이들은 엄마 품에서 갖은 응석을 다 부리고 있었다. 바람 들까 걱정하여 겹겹이 깔아준 이불엔 물을 엎지르고 사료를 뭉갠 채 신나게 뒹굴었다. 천진한 분홍색 발바닥들, 마냥 사랑스러운 작은 이빨들. 여리지만 굳센 생명.

지금은 강아지 별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겠지
▲ 왕왕이 지금은 강아지 별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겠지
ⓒ 평강공주보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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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세상을 떠난 왕왕이가 떠오른다. 눈과 코에 피부병이 번져 얼굴은 무서웠지만 다정하고 똑똑한 진돗개였다. 나이가 들어 먹기도 벅차하고 몸 가누기도 힘들어하여 볼 때마다 가슴을 졸였더랬다. 왕왕이는 점차 시력이 약해지고 고개를 숙일 수도 없어 겨우 벽에 기대 숨을 고르곤 했다. 봉사자들의 지원으로 특별식을 먹은 지 몇 개월 만에 왕왕이를 볼 수 없게 됐다.

"…왕왕이는요?"
"편히 잘 갔어요…."

보호소 소장님은 얼마나 여러 번  별이 된 아이들 소식을 전하셨을까. 얼마나 많이 가슴 아프고 얼마나 더 담담해지셔야할까. 지금도 개와 고양이는 버려지고 있다. 곱디 곱게 살다가도 어차피 이별해야할 운명인데 그 수순을 어그러트리지 않으면 좋겠다. 정 주고 마음 쓰는 일에 지치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 준 그것이 나를 믿고 사랑하는 만큼만 책임지면 좋겠다. 그래서 더 이상 죽음이 구경거리도, 흔해 빠진 가십거리도 되지 않으면 좋겠다. 살 때 기쁘게 살고, 보낼 때 가슴 깊이 애도하며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태그:#가을이, #유기견, #강아지별, #죽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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