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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간 고집스럽게 한국연극의 터를 지켜온 배우 남미정이 자신을 모티브로 한 모노드라마 <당신의 손>(2013.11.21 ~ 2013.12.08)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중이다.

배우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연극 <오구>에 대한 극찬에도 "내 삶의 시간과 내 나이만큼 연기했던 것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남미정은 늘 "연극을 한다는 것과 배우로 산다는 것이 인생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지난 긴 시간 동안 연극이 무엇이었는지, 그 시간의 한 곳에서 자신을 모티브로 한 모노드라마에 어떤 채비를 하고 나섰는지 지난 4일 만나 차근차근 들어보았다.

사진
▲ 배우 남미정 사진
ⓒ 극단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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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이 작품이 내 얘기라고 꼭 집어 말한다면 배우의 입장에서 당황스럽지만, 이 역할의 어떤 모습들이 내 안에 들어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오랜만에 간 극장에서 만난 김수희 연출이 나에 대한 느낌이 좋다고 했고, 그 느낌으로 배우에 대한 모노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었다. 어떤 느낌이 좋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단지 늘 그랬듯, 한 걸음 한 걸음 새로워지려고 애쓰던 때였다. 그런 모습을 알아채 준 게 아닌가 해서 정말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아직 이 나이에 벌써 모노드라마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러나 같이 하자는 얘기가 좋았다. 누군가가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저 모습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만들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는 게 고마웠다. 이런 모습을 알아채 준 사람이니까, 그러나 90분을 혼자서 연기하는 건 외로운 일이다."

- 객석에 앉아 있을 관객들을 상상해 보았나.
"오래 함께 작업했던 연극인들과 연극하며 만난 친구들과 학생들이 앉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극장에 와서 여전히 언니는 누나는 선배는 하면서, 작업을 일을 계속 하고 있구나 하면서, 나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안심하고 위로를 받아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공연 사진
▲ 연극 <당신의 손>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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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에 서기 위해 어떤 채비를 하고 있는가.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몸의 테크닉을 준비하는 것과 주제를 보여주는 첫 장면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려는 것 등이다. 독일의 어느 중년 여배우는 혼자서 대사 없이 60분을 연기하더라. 그녀가 연기했던 장면은 마치 나 같은 일상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TV보고 청소하고 밥 먹는 정말 무료한 밤이었다. 나중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는 연기로 마무리하는데, 대사 한 마디 없이 60분을 몸으로만 긴장감을 만들어서 간단 말이다. 그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머물러 있다.

그건 아트(Art)가 되는데 나는 왜 아트가 안 되지? 이러면서 말이다. 어떻게 하면 아트로 갈 수 있지? 그러려면 몸이 좀 따라줘야 되는데. 따로 대사가 없다 뿐이지, 굉장히 일상적인 것이다. 60분을 대사 한 마디 없이 몸으로만 움직이면서 긴장감을 만들었다 풀었다 하면서 사람들을 60분 동안 보게 하는 것이다. 

결국 배우가 신체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거기서 미적인 시각적인 감정적인 코드를 찾지 못하면 시간만 버리는 거다. 엄청 훈련되어 있어야 하고 거의 완벽하게 안무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매일 매일 그걸 똑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기가 차는 거지. 우산을 놓는 장면도 매일 똑같은 에너지와 똑같은 방법과 똑같은 호흡으로 놓아야 하는 거다. 이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첫 번째 포인트다.    

처음에 들어가는 장면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주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뭔가 해결되지 않고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으면, 그게 일상에 늘 있는 것 같다. 그 문구가 일상의 어떤 상황과 딱 만났을 때 비로소, "아, 이 말이 이런 말일 수 있겠구나" 그런 식으로 깨달아 간다. 그게 나 혼자의 취미이자 습관이기도 하다. 노란 보호등이 깜박이는 게 주제임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시 처럼 느껴지도록 호흡과 소리와 타이밍과 몸의 상태를 고민 중이다."

공연 사진
▲ 연극 <당신의 손>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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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첫 장면에 대해 좀 더 알려 달라.
"어둠 속에서의 첫 대사가 기억난다. 무대에 노란 보호등이 있다. 보호등이 있을 때 깜박거리는 것은 보호라는 것이고, 보호등이 없을 때도 깜박거리는 것은 정말 나와의 싸움이거나 나와의 도전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실제 삶을 보면 누군가 깜박거려주는 지침 속에서 수동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보호등이 없어지거나 없애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와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힘든 얘기다. 그런데 마지막에 해가 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첫 부분은 대사하기가 힘들다.

내 삶에도 노란 보호등이 있었다. 어느 날 보호등이 없어지기도 하고 내가 보호등이 이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때가 왔을 때, 나 혼자 나와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해가 뜬다는 것이다. 여명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밝아오는 것. 누구나 깜박깜박하는 수동적인 삶 속에서, 그런 느낌을 어떻게 잘 살릴 수 있을까.

이 얘기가 이 작품의 프롤로그라고 생각한다. 슈퍼가 수현의 노란 보호등이었다면, 보호등이 깨지는 지점에서 그녀의 해가 뜬다는 것을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게 표현하고 싶다. 한 편의 시처럼 귀에 삭~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뭐든 다 해보고 감이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려고 한다."

- 지난 첫 공연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작년에 처음 이 작품을 올리고 나서, 한동안 일상으로 못 돌아왔다. 연기적으로 아쉬웠던 상태들도 많고 뭔가 아쉬움이 진했다. 얼마 전 말도 안 되게 바쁜 한 주를 보내고 난 토요일. 그날 아침 10시에 일어났는데, 대본에 나오는 병원에서 깨어날 때의 아침처럼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그럴 때 "아, 이런 게 있구나" 했는데, 정말 할 게 없었다.

대본에서 나타난 이런 일상의 것들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간이 다가올 때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몸이 이렇게 되는구나, 그러다보니 거울도 보게 되는구나, 거울을 보는데 머리는 부스스해도 푹 자고 난 사람의 해맑은 얼굴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가슴에 커다란 빈공간이 생기면서 막 기분 좋은 그런 게 있더라. 그런 것들을 너무 막 지나온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계속 있었다. 초연이 리딩 단계라면, 이번 공연은 블로킹 단계이고, 다음 공연은 아마 리허설 단계가 아닐까?(웃음)"

공연 사진
▲ 연극 <당신의 손>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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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과 달리 공연 때는 어떤 준비를 하는가.
"은근히 엄청난 집중을 해야 해서 몸과 마음이 풀어지지 않으면 도입부에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공연 때는 막상 공연이니까 별로 어렵지 않다. 단지 눈 뜰 때부터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간다는 게 차이점이랄까? 절대 기분이 좋아서도 나빠서도 안 되는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기분이 나쁘면 나쁘게 에너지가 들어가고 좋으면 좋아서 날아다녀서 문제다다.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공연 들어가면 종일 이것만 생각한다. 지난 번 연습 때도 24시간 동안 나의 뇌 한쪽이 이 작품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은 약간 거리가 생겨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새벽3~4시까지 잠 못 자고 대사를 주절거리게 된다. 초연과 달라지는 게 있다면, 이런 것들이 좋게 영향을 미칠지 나쁘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 결과는 공연을 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번에는 24시간 동안 <당신의 손>만 생각하며 살았다."

- 오랜 작업에 대한 배우로서의 의지나 원칙 등의 기준이 있을 것 같다.
"계속 연극을 하는 건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연극을 하는 시간 동안 만큼은 시간과 공간이 세상에서 주어진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시간과 공간이 된다. 그 속에서 모르던 것을 깨우치고 '다시 보는 과정'을 겪게 된다. 언제나 '연극 안 하면 몰랐을 걸'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이런 관계들이 있을 수 있구나' 같은 새로운 걸 알아가고 배워가고 성숙해가고 아직도 모르는 것과 깨우치지 못한 게 많은 것 같다. 조금 더, 조금 더 세상을 알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이 연극인데, 이 만나는 것에 대한 조건이 없다. 순수하게 어떤 공간과 시간 속에서 한 문제에 대해 이익 관계없이 생각을 공유하고 그런 것들이 즐겁고 재미있다. 특별한 의지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연극이 그리고 세상이 뭔지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가끔은 '누군가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사명의식이 생기기도 한다(웃음).

요즘은 현장에서 선배님보다 후배님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이 하는 작업들이 궁금하고, 그 작업들 속에서 내가 도울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것 또한 내겐 즐거움이다."

공연 사진
▲ 배우 남미정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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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을 하기 전과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연극은 20살에 극회 들어가서 처음 접했다.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극을 하지 않았던 시간에도 나는 연극작업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시인이 시를 안 쓰고 있어도 언제나 시인인 것처럼. 나는 효녀 심청이란 별명만큼 평범한 가정에서 얌전하게 자랐는데, 이게 연극을 하면서 달라졌다. 연극이 긍정적인 것보다는 세상에 대해 회의하고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짙고, 이런 작업들을 반복하다보니 그런 쪽으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 세상에 대해 무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끊임없이 깨어있고 예민해지려고 한다는 게 좋다. 지금은 내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해 사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만족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무지몽매하게 살 수 있었는데, 다행히 여러 가지를 예민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게 좋다.

연극 작업은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다. 할 수 있을까,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여러 요건 들이 '되는 걸' 보면서, 좌절과 절망을 하더라도 긍정적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힘들고 극복하기 어려운 중간 과정에 대해서도 작품을 깊고 단단하게 해주는 꼭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도 '진심으로 꿈을 꾸고 바라면 이뤄진다'는 것을 믿는다. 연극을 하며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연극하면 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과 심지어 나조차도 대학 졸업하면 극회활동이 끝나겠지 했다. 원래 끈기 있게 뭔가를 해내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이것만은 오래하고 있다. 사람들도 다시 안 볼 일이 없는 사람처럼 대하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한다. 연극의 장면 만들기에서 중요한 건, 서로의 진실이 충돌하는 것 아닌가? 난 나의 진실이 있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진실이 있기 때문에, 그 두 진실이 부딪히는 것 아닌가? 자연스럽게 저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연극작업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고, 예민하게 뭔가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무것도 없는 데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짜릿함이 있다. 그것밖에 없다. 내 밋밋하고 심심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연극이 차지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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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남미정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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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춤추는 장면과 나도 유연한 사람이 되길 기대했다는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연기를 하며 나와 다르지만 전혀 다르지 않은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여성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모든 일들에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말들이 있다. 그 말들이 정말 좋다. 이젠 좀 더 아웅다웅 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직설화법이 필요한 나이가 되어간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까지 빙빙 돌려 은유와 과장과 치기로 얘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소 머쓱하지만 이제는 교훈적인 투로 들리게 되더라도 좀 더 꼬리가 짧은 직설화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작업을 하면서, 혹은 다음 작업을 하면서, 이 과정이 또 다른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는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외로워서 사람 만나려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연습장에 연출과 조연출과 무대감독 밖에 없다(웃음). 모노드라마는 외로워서 못하겠다.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즐겁다.   

- 배우 남미정에게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누구나 일상의 삶을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다 갑자기 한 번, 정지되는 상태가 있다. 그 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오구>의 경우 내 삶의 시간과 내 나이만큼 연기했던 것 같다. 딱, 내 삶의 시간이 가진 만큼의 고통과 감정들을 표현했던 것이다. 내가 먹어온 삶만큼 할머니라는 역할이 입혀지는 삶이 다르니까 당연한 거다. 그래야 어느 순간 의미를 깨닫게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당신의 손>도 나의 나이와 함께 나이를 먹는 작품인 듯하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 따라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질 것 같아서, 길게 보고 있다. 이런 작품들은 나를 연기하도록 만든다. 무척 행복하다."

포스터
▲ 연극 <당신의 손> 포스터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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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한다는 것과 배우로 산다는 것이 인생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그녀의 말은, 사람들은 늘 성장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짐작하게 한다. 남미정 배우는 연극 <당신의 손>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랑'이라는 과정을 '성장'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마음 둘 곳 없이 공허한 긴 겨울의 문턱에서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아보는 어떨까? <당신의 손>은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삶의 작은 기쁨을 제공할 것이다. 삶의 용기와 사랑을 전하는 연극 <당신의 손>이 11월 21일부터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태그:#드림아트펀드, #남미정, #김수희, #연극, #당신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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