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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따온 어린이시부터 읽어보자.

시 써라 /뭘 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 써서 내라고! /네.…… /제목을 뭘 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니 맘대로 쓰라고 /뭘 쓰라고요? /한 번만 더하면 죽는다('뭘 써요, 뭘 쓰라고요?' 전문, 문성민, 26쪽)

시 한 편씩 적어 내라 했더니 2학년 성민이가 나무늘보처럼 허리를 늘리며 "뭘로 시를 쓰냐"고 슬슬 선생님 속을 긁는다. "뭘 쓰냐고, 뭘 쓰냐"고 연거푸 묻는 물음에 "써라. 쓰라고. 써서 내라고!"는 말만 되풀이한다. 아이는 "뭘로 쓰냐" 물었다가 말을 바꿔 "제목은 뭘 쓰냐"고 연필 끝을 잘근잘근 씹으며 또 묻는다.

시가 별 거냐? 평소 지껄이는 대로 써

글 김용택, 그림 엄정원, 한솔수북, 2013
▲ 뭘 써요, 뭘 쓰라고요? 글 김용택, 그림 엄정원, 한솔수북, 2013
ⓒ 한솔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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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후딱 써서 선생님 책상 위에 척, 내고 나가는 아이도 있을 거다. 선생님은 "니 맘대로 해야지. 니 맘대로 쓰라고" 했다가 끝내는 버럭 성을 낸다. "한 번만 더하면 죽는다"고 말이다.

이 아이 뿐이랴. 글쓰기 할 때마다 묻고 묻고 지겹도록 묻는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아이들은 속엣말을 눈치보지 않고 내뱉는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이쯤에서 선생이 백창우(가수·시인)라면 이렇게 말을 거들지도 모르겠다.

니가 쓰고 싶은 걸 써 /니 맘대로 써 /니 말로 말이야 /니가 좋으면 돼 /시 쓰면서 눈치 볼래면 /뭐 하러 시를 써 /세상에 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니가 아무리 잘 써 봐 ('니 맘대로 써' 부분, <동시 마중> 2012년 5, 6월호)

암튼 아이로선 뭘, 어떻게 써야할지가 곤혹스럽고 선생으로선 뭘, 어떻게 써야 한다고 콕, 집어 말하는 게 어렵다. 그런데, 이 교실 선생님은 그저 그런 선생이 아니라 시를 알아도 아주 잘 아는 시인이다. 어디 시뿐이랴. 시집은 빼놓고 동시집만 쳐도 네 권이나 낸 김용택 시인이다. 그래서 뒷일이 궁금하고 흥미롭다. 하아, 그런데 너무 허술하고 게을러 보인다.

그러나 결국 어찌 되었는가. 신기한 건 "뭘 써요"하고 묻던 아이가 시를 써냈다. 그것도 장면이 환하게 그려지게 시를 썼다. 이쯤에서 저자는 '시가 별 거냐? 평소 지껄이는 대로 써. 그게 시야!'하고 말하고 싶었을 거다. 저자는 이렇게 뭘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답답해하는 이들에게 오랜 경험을 담아 답하려고 한다.

글 쓰려면 나무 하나 가슴에 품어라

저자는 아이들한테 시를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봐라 말하지 않는다. 숙제로 자기 나무를 정하고 가만 바라보라고 한다. 아이한테 나무를 봤냐고, 나무가 어떻게 하고 있더냐고 묻는다. 살아가는 일은 내 눈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일이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세상을 알아간다. 안다는 건 머릿속 지식만을 말하지 않는다. 몸으로 마음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생각을 귀하게 소중하게 가꾸는 것이 공부라고 한다. 아는 것이 인격이 되어야 하고, 인격은 세상과 '나'의 관계를 깨닫는 일이라고 한다. 고개 끄덕여지는 말이다. 책상머리에 앉혀놓고 뭐도 가르치고 뭐도 가르치는 공부는 죄다 교과서의 말이고 선생의 눈이다. 공부를 했지만 헛공부다. 저절로 본 것 말고 내 눈으로 보았다고 뻐길 수 있어야 제대로 한 공부다.

본다는 건 '선택'이다. 눈 가는 곳에 마음이 가서 머물러야 한다. 사랑이 일어야 한다. 곧잘 자연을 보고 쓴 시들이 시도 뭐도 안 되는 게 있다. 왜 그럴까. 거기에 사랑이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눈으로 보면 그때부터 나무는 보통 나무가 아니다. 내 나무다. 나무가 소곤소곤 내 귀에 대고 말을 걸어온다. 연둣빛 이파리는 언제 내는지, 언제 어떤 빛깔로 꽃을 피우는지, 언제 꽃잎을 떨구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가 하는 일들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것들 가운데 마음의 그물에 걸린다. 눈이 뜨이고 귀가 트인다. 저자는 "내 마음에 바람이 일고, 배가 내리고, 달이 뜨고, 강물이 출렁이고……, 그것이 사랑"(55쪽)이라고 말한다.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한다. 그걸 받아 그대로 적으라고 한다. 그게 글쓰기다! 책에 나온 시 두 편을 감상한 뒤에 말을 이어가겠다.

오동꽃은 보라색이네/ 이 마을 저 마을 없는 데가 없네/ 나는 오동꽃을 처음으로/ 알았네 ('오동꽃' 전문, 정현아, 58쪽)

마른 살구나무 가지에/ 봄바람이 불었다/ 죽은 것 같던 가지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는 잎도 피겠지/ 잎이 피면/ 살구도 열린다('살구나무' 전문, 한성현, 64쪽)

아이들 눈을 따라 풍경이 떠오른다. 꽃구경하는 현아도 성현이도 참 예쁘다. 이 산 저 산 오동꽃이 피어도 관심이 없으면 그냥 산에 들에 피었다 지는 꽃일 뿐이다. 아이들은 나무를 본다. 관심을 갖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현아의 눈에도 성현이의 눈에도 나무가 그대로 밀고 들어온다. 그저 꾸밈없이 썼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다운 마음, 삶이 있는 아이라면 "있잖아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하고 말하고 싶어서 참지 못할 때가 온다. 그 다음은 누구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죽죽 쓰면 누구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다.

사실 시 쓰기 교육의 실패는 말장난을 일삼고 뭔가 기발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 탓이 크다. 무엇보다 어린이가 써야할 시를 '어린이시'로 보지 않고 '동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절로 본 것 들은 것 말고 사랑을 담아 보고 들은 것을 자기 말로 쓰라고 말한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이쯤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저자는 어린이는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쓰면 짜잔, 하고 시가 나온다는 말은 한 마디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태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고 합니다. 글쓰기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길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말해 왔으니 맞는 말일 것입니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고 합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니 그 말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딱 맞는 말이 없기도 하고 다 맞기도 합니다."(24쪽)

그래서 글쓰기 왕도나 요령에 온통 마음이 가서 책을 펼친 독자라면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기껏 말해주는 건, "따뜻한 눈으로 나무를 보세요. 엄마를 자세히 보세요.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으세요,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면 글이 돼요!" 하아, 이게 전부다. 이 말은 "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과 농부들이 하는 말, 그리고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썼습니다"고 한 저자의 말과도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남다른 글쓰기 지도 비법은 정작 따로 있다. 그게 뭐냐면 아이가 쓴 글이라면 어떤 글이라도 귀하게 여기고 아이와 같이 마음을 나누며 "와!"하고 놀라워하는 일이다. 실제로 저자는 아이들이 쓴 글이 어떻든 글 한 편 한 편 읽고 놀라워하며 그 아이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네려고 한다. 선생이 이러는데 저절로 쓰고 싶은 마음이 어찌 들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적어낸 말이나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적잖이 엉뚱한 말이 많은데 그 말들 하나하나가 감동이다. 저자는 '어떻게 해야 애들이 글을 잘 쓰게 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아이들이 쓴 글은 정성을 다해 읽어 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글을 잘 쓰게 된다'하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비가 가만가만 온다/ 나는 오늘 빗소리를 들었다('비' 전문, 임현수, 50쪽)

언뜻 봐서는 참 성의없이 쓴 시다. 내 눈에만 그런가 몰라도, 놀 마음만 가득해서 휘딱, 써내고 교실 밖으로 펄펄 내달리는 아이 모습이 선하다. 내가 이 교실 선생이라면 불러 앉혀놓고 뭐라고 한 마디 보탤 것 같은데 오히려 저자는 아이가 써낸 시를 들고 감탄해 마지 않는다. 이 시를 저자는 어떻게 봤을까.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무심코 읽어보면 그다지 잘 쓴 것 같지도 않고 별 재미도 없는 것 같은 글입니다. 그런데 천천히 글을 읽다 보면, 현수가 비가 오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가 오기는 하는데 '가만가만' 온다니……. 대단한 관심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가 가만가만 와도, 부슬부슬 와도, 주룩주룩 와도 '오는가 보다.' 하거든요. 관심을 가지면 이렇게 어떤 소리도 들리고, 어떤 모습도 자세히 보입니다.(51쪽)

여전히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지점이 평범한 선생과 저자가 다른 점이다. '비가 오기는 하는데 '가만가만' 온다니……. 대단한 관심의 결과입니다'하고 감탄한다. 그만큼 아이들을 믿는다. 그래서 마음이 살아 있어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정직과 진실이 통한다고 믿는다. 나는 바로 여기에 저자가 글쓰기 지도를 해온 비법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아이 생각을 있는 그대로 귀 쫑긋 세우고 정말 귀하게 들어 주는 일, 그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글쓰기의 끝점이 아니라 글쓰기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 삼으라고 한다. 그렇게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남는 아쉬움들

하지만 책을 읽고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짚고 가야겠다. 무엇보다 저자는 '동시'와 '어린이시'를 구별하지 않았다는 혐의가 느껴진다. 잘 알다시피 동시는 어른이 아이한테 주려고 쓰는 시다. 어린이시는 말 그대로 아이가 쓰는 시다. 그런 까닭에 어른이 쓴 동시와 어린이가 쓴 어린이시는 글쓰기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른인 작가들은 시를 어떻게 쓸까? 시인이면서 동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오래오래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새로운 생각이 찾아왔고, 생각이 마음속에서 익으면 그 생각을 정리해서 밖으로 또 내보냈지요"(71쪽)하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 쓰기는 다르다. 아이들은 머릿속으로 말을 이리저리 굴리는 과정이 무시되거나 어른과 견주면 아주 짧은 순간이다. 시가 뭔가. 어느 한때에 일어난 마음의 움직임을 터져 나오는 대로 쓰는 글이다. 아이들은 감동을 곱씹지 않고 그대로 토해낸다. 그래서 절로 입말이 들어가고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간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시들을 보면 저자의 무뚝뚝한 글쓰기 지도와는 다르게 아이들 시를 보면 참 매끄럽고 깔끔하다.

거미줄에/ 이슬이/ 동글동글/ 바람에 흔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음악이 들릴까?('거미줄' 전문, 김재영, 21쪽)

우리 마을 큰 나무는/ 다 알고 있다//우리 엄마 아빠/ 어릴 적!// 말은 못해도/ 나무는/ 우리 마을 역사를/ 많이 알고 있다// 나무는/ 나무는/ 다 보고 / 다 알고 있다('우리 마을 큰 나무' 전문, 박산영, 40쪽)

내가 그 비둘기를/ 만난 것은/ 지난 겨울//그 비둘기는 혼자 있었다/ 아무래도 외톨이인가 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둘기를/ 볼 수가 없다/ 이제는 내가 외톨이가 되었다('비둘기' 전문, 이창희, 84쪽)

물론 한 교실에서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내온 저자이니 아이들이 알게모르게 말투고 몸짓이고 닮아갈 수밖에 없다. 그 영향을 무시 못한다. 하지만 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 또렷하지 않은 데다가 몇 학년 아이가 쓴 시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교실에서 아이들한테 처음 시를 쓰라고 하면 흔히 죽죽 달아서 쓴다. 하지만 여기에 보기에 든 시들은 짧게 끊어 쓰고 연 구분도 잘 지어 놓았다. 저자가 전남 임실 마암분교에서 일하면서 가르친 아이들이 쓴 시라고 밝혔지만 아이들은 1학년이 다르고 2학년이 다르고 6학년은 아주 다르다. 낮은 학년 아이일수록 입말이 살아있고 산문시로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년이 더해지면 글말이 두드러지고 교과서 동시처럼 쓴다. 하지만 학년을 밝혀놓지 않아 보기 시에 대해 선뜻 말하기 힘들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책의 독자 대상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도 들어야겠다. 보기시들이 초등학생 글이고 여백이나 글자 크기나 편집이 시원시원해서 초등학생을 주독자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주독자는 아닌 것 같다. 출판사에서 낸 책 소개에는 '13년 동안 전국 곳곳을 돌며 강연이나 방송을 통해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들, 어른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읽어내기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보면 글쓰기 지도를 하는 어른들이 독자들이겠다.

다들 알겠지만, 혹시 너무 순진해서 모르는 분이 있을까 봐 말하겠다. 이 책에 나온 방법은 어디까지나 김용택 시인의 글쓰기 수업일 뿐이다. 그러니 그대로 따라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아이한테 어른의 '눈길'을 강요해선 안된다. 이렇게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참고만 해야지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 "저기 나무를 찬찬히 봐봐! 그래, 보이지! 그걸 써!" 해봐야 여기 보기에 든 시들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저마다 자기 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못 찾으면 또 어떠랴. 걸어간 만큼 내 길이고 어쩌면 새 길이 막 나올 지도. 그게 진짜 교육이 아니겠나.


뭘 써요, 뭘 쓰라고요? - 김용택 선생님의 글쓰기 학교

김용택 지음, 엄정원 그림, 한솔수북(2013)


태그:#글쓰기, #김용택, #뭘 써요, #뭘 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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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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