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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들 덕분에 성균관의 공부방, 명륜당이 화사해졌다.
 은행나무들 덕분에 성균관의 공부방, 명륜당이 화사해졌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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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상큼한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비타민C의 상징 노란색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의 색상이기도 해 생동하는 생명의 색깔이기도 하다. 그냥 노란색도 아닌 진노랑 잎으로 온통 수놓은 이맘때의 은행나무들을 보면 그래서 기운을 얻고 심신에 활기가 돋는다. 인위적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관리한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와 달리 노랑 잎이 매달린 가지를 마음껏 펼치며 수백 년을 살아오고 있는 노거수(老巨樹) 은행나무 두그루가 도시 서울 속에 존재하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학교내 명륜당 마당에 사는 400살 수령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로, 비슷한 연배의 은행나무와 이웃하여 살고 있다. 가을 햇살이 환하게 비쳐질 때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이 은행나무는 늙어갈수록 더 멋있어 지는 대표적인 명목 나무다. 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완성임을 깨닫게 해주어 보는 이의 부러움과 경탄을 부른다. 게다가 노거수 나무에 어울리는 흥미로운 전설까지 품고 있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나무이기도 하다.

천 원 지폐에 나오는 명륜당

대문 너머로 보이는 널찍한 명륜당 뜰, 추색이 완연하다.
 대문 너머로 보이는 널찍한 명륜당 뜰, 추색이 완연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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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분위기가 어울렸던 옛 공간이 화려한 은행나무잎 덕분에 무척 새롭게 다가온다.
 흑백의 분위기가 어울렸던 옛 공간이 화려한 은행나무잎 덕분에 무척 새롭게 다가온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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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서 수위실 우측의 주차장으로 걷다보면 큰 한옥 건물들이 나온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는 명륜당이라는 곳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탁 트인 마당과 한옥 공간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명륜당은 조선시대 학생들이 공부하던 공부방이며 공자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대성전 사당이 바로 옆에 있다.

천 원 지폐를 보면 퇴계 이황 선생의 인물 그림 뒤로 명륜당(明倫堂) 글자가 보이는 한옥 건물이 이곳이다. 건축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정신사적 상징성이 강한 건물이라 한 나라의 지폐에 실렸나보다. 고려 말부터 조선왕조 500년에 걸쳐 최고의 국가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중심 건물이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는 넉넉하고, 모든 것은 소탈하여 최소한의 꾸밈뿐이다. 적은 것이 아름답고, 비움으로써 꽉 찬다는 현대의 세련된 미니멀리즘(최소주의),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예전에 한옥 공간에서 구현하였다.

조선시대 인재의 산실이었던 성균관은 조선의 국립대학이었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인 이곳에서 당대의 수재들이 숙식을 해가며 유학을 공부했다. 그들은 유생(儒生)이라 불렸다. 문과 응시에 많은 편의를 제공 받기도 했던 유생들은 강도 높은 수업을 받으며 엄격하게 생활했다. '어그러짐을 바로잡아 고르게 한다'는 '성균(成均)'의 의미를 실천하듯 유생들은 왕에게 직접 상소를 올리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권당(捲堂)'을 하며 나라의 부당한 처사나 바르지 못한 정치에 대해 자신들의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성균관은 크게 두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앞부분은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고,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뒷부분은 공부를 가르치던 공간이다. 이를 전묘후학(前廟後學)이라 한다. 이 두 공간을 옛 부터 지켜보며 역사의 증인처럼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수백 년 묵은 고목 은행나무로 제 59호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명륜당을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성전환을 한 전설속의 은행나무

이런 거대한 은행나무가 열매 냄새를 뿜는 암나무였다면 유생들이 공부하기 힘들었겠다.
 이런 거대한 은행나무가 열매 냄새를 뿜는 암나무였다면 유생들이 공부하기 힘들었겠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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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안뜰에 서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400살이 넘은 고목으로, 쳐진 가지에 지지대를 대고 있지만 압도적인 분위기의 풍모와 진노랑 은행잎의 광채로 누구나 감탄할만하다. 서울 도심 속에 이런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었다니, 가져간 카메라도 잊은 채 나무 앞에 서서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땅을 움켜쥐듯 드러난 나무 밑둥의 굵은 뿌리들은 아직도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수묵화처럼 흑백의 분위기가 어울렸던 옛 공간이 황금빛 은행나무의 잎들로 새롭게 다가온다. 문득 성균관 마당에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나 대나무가 아닌 은행나무를 심은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은행나무는 유교의 상징목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은행나무를 공자의 행단(杏壇)에 많이 심었는데 이를 본 따서 우리나라에서도 문묘(文廟)나 향교, 서원, 사찰의 경내에 많이 심었고, 관가의 뜰에 심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 실질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향교나 사당에서는 제사를 지낸다. 즉, 돈 들 일이 많아 가을에 은행을 수확하면 돈으로 바꾸어 제사비용으로 쓰고 관리인 살림에도 보탰다고 하니 재미있다.

중국 남부지역이 고향이지만 한국에 노거수로 또는 유서 깊은 사연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은행나무가 18 그루,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은행나무가 자그마치 813 그루에 이를 정도로 우리 민족과 희노애락을 같이 한 인연이 많은 나무다. 한자 이름(은 銀, 살구나무 杏)처럼 은행 알이 살구나무의 열매를 닮아 은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00살의 나이지만 땅을 꽉 움켜쥔 뿌리에서 나무의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400살의 나이지만 땅을 꽉 움켜쥔 뿌리에서 나무의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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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경탄 속에서 나무 구경을 하다가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곱디고운 노랑 잎의 가을 은행나무가 이맘때 흔히 내뿜는 진한 냄새가 안 나는 거다. 거대한 몸체와 이 많은 은행잎으로 보아 엄청났을 고약한 열매 냄새가 안나다니··· 안내 게시판을 보니 두그루 모두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란다. 건너편 사당의 뜰에 있는 동생뻘의 은행나무 두그루도 수나무. 어린 은행나무를 심을 때 암수구별이 불가능한 사실로 보아 명륜당 유생들은 운이 무척 좋았다.

신라 마의태자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1,100살의 용문사 은행나무처럼 명륜당 은행나무에도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재미있는 전설이기도 한데 이 은행나무가 성 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나무라는 거다. 원래 심었던 나무는 암나무로 가을철 열매가 많이 열려 냄새가 고약해 유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했을 뿐 아니라, 은행 알을 주우려는 주민들로 엄숙해야할 학교가 소란스러워지자 선비와 학동들이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려 수나무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명륜당에 전해온다.

삼월 삼짓날이면 막걸리 스물네 말에 취하는 나무,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나 나무가 된 이야기, 애절한 사랑을 나누던 연인의 넋이 나무로 환생했다는 사연 등 동네 노거수 나무들마다 다양한 전설을 품고 있다. 이렇게 나무에게 사람과 똑같은 대접을 한다거나 혼이 깃든 나무로 여기는 것은 나무를 아끼고 잘 보호하고자 하는 마을 사람들의 지혜가 아닐까.

학교 교정과 나무 주변으로 운동 삼아 산책을 하러 나온 동네 어르신 몇 분에게 수나무가 된 은행나무 얘기를 여쭤보니 웃으시며 아마 이 은행나무가 나이를 많이 먹고 늙으면서 생식기능을 잃어 버려서 일거라는 하신다. 하긴 400살이나 먹은 노거수 나무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무의 다른 뿌리 유주(乳柱), 참 거시기 하게 생겼네

위엄이 느껴지는 노거수 은행나무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톡특한 모양의 기형 뿌리.
 위엄이 느껴지는 노거수 은행나무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톡특한 모양의 기형 뿌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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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3억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온 이 나무는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생존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일본 히로시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식물도 은행나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은행나무는 세계적으로 은행나무 과에 오직 은행나무 1속, 1종만이 있을 뿐이며, 이 세상에 변종이 없이 외동으로 자라온 외로운 나무이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당에도 은행나무 외에 노거수 느티나무, 소나무, 향나무 등이 살고 있지만 생명이 다해 말라가고 있거나 머지않아 고사할 것 같은 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웅장한 자태의 이 나무에서는 은행나무의 기묘한 특징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유주(乳柱)라고 하는 은행나무의 특별한 현상이 그것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의 가지에서 땅을 향해 아래쪽으로 자라는 돌기를 가리킨다. 지름이 10㎝가 넘고 길이가 100㎝에 가깝다. 가지처럼 보이는 이 돌기는 공기 중에서 호흡하는 뿌리로, 식물학에서는 기근(氣根)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부분이다. 이 은행나무처럼 가지에서 돋아나 땅을 향해 자라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종의 기형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도 지금의 학생들처럼 좋아했을 듯하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공부하던 유생들도 지금의 학생들처럼 좋아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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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乳柱)란 글자 그대로 '젖기둥' 이라는 뜻으로 그 모양이 마치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남근을 더 닮아 보면 볼수록 '거시기한' 모양이다. 오래 묵은 노거수 은행나무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한다. 신목(神木)의 위엄이 느껴지는 은행나무에서 독특한 모양의 기형 뿌리를 발견하니 웬지 해학적이고 나무가 친근해진다. 명륜당 은행나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유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형태라니 더욱 눈길을 끈다.

은행나무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유년시절 동네의 넓은 터에 살던 당산나무가 떠오른다. 그 앞에서 동네 친구들과 술래잡기도 하고 축구를 하며 뛰어 다녔다. 당산나무 가까이에 높고 위압적인 송전탑이 있었는데 동네 수호신 같은 나무 덕분에 송전탑이 덜 무서웠던 것 같다. 나무에서 고향을 느끼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고향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마을 어귀의 커다란 나무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일게다.

내년에나 다시 볼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나무 옆에 기대어 섰다가 반짝거리는 노랑 은행잎 하나를 골랐다. 햇살 아래 비추어본 은행잎의 노란 빛깔은 더없이 상큼하다. 은행잎 몇 개를 더 주워 들고 있던 작은 책과 잡지에 끼워 넣었다. 마치 황금 책갈피라도 얻은 양 마음이 뿌듯하고 풍족했다.

덧붙이는 글 | ㅇ 11월 8일에 다녀왔습니다. 다음 주엔 명륜당 뜰에 깔린 은행잎 융단위를 걸을 수 있겠네요.
ㅇ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은행나무, #명륜당, #천연기념물, #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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