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노가 누군지 아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도 포털 인물 정보 검색을 통해 대략의 정보를 얻겠지요. 1928년생,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한국 1세대 의상디자이너.

노라노의 업적은 대단합니다. 1956년 국내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고, 1963년 국내 최초로 디자이너 기성복을 생산했습니다. 또, 미국 머시스(Macy's) 백화점 1층 전면 디스플레이 광고에도 그의 옷이 실렸습니다.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를 만든 그는 한국 영화사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영화에 스타일리스트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 시대의 유행을 이끌었던 그지만, 사람들은 대개 동시대를 산 고 앙드레 김을 기억할 뿐, 노라노는 기억하지 못하지요.

"코코 샤넬, 소니아 니켈,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과 같은 선상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내 나라의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현실이 슬펐다. 이제는 대한민국 패션사의 뿌리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이 말은 지난 10월 31일 개봉한 영화 <노라노> 속에 나오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의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한국 패션디자인계의 산증인이자 역사인 노라노를 복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에게 힘이 됐던 디자이너, 노라노

 영화 <노라노> 중 한 장면

영화 <노라노> 중 한 장면 ⓒ 연분홍치마


영화는 '노라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합니다. 옷을 만들고 있는 손, 수많은 세월을 거쳤음을 짐작케 하는 손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곧 손의 주인공을 설명하는 증언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로 들리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 목소리는 감독이나 제3자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바로 디자이너 노라노의 목소리입니다.

영화 <노라노>의 매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노라노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노라노의 목소리를 통해 회고하 듯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부담감 없이 그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노라노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본명인 명자를 버리고, 노라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했던 그의 신념은 박정희 정권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 흐름에 맞춰 빛을 발합니다. 그의 손을 거친 여성 기성복은 여성들에게 남성 중심사회에서 절대 주눅 들지 말라는 응원이 됐고, 일종의 '여성 의류 혁명'이 됐습니다.

영화에는 노라노 자신의 회고와 함께 그와 같은 세월을 살고 있는, 혹은 노라노를 좇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이 이야기로 하여금 노라노가 얼마나 힘들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성'에만 국한돼 있는 설명... '인간' 노라노는 어디에?

 영화 <노라노> 중 한 장면

영화 <노라노> 중 한 장면 ⓒ 연분홍치마


하지만,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성'이라는 범위 안에 묶여 있습니다.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불협화음을 넣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는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때 징집을 피하기 위해 일본인 장교와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아버지가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국민총력조선연맹에 참가해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노창성씨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한 이혼 뒤 1947년에는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그는 자신의 배경 덕분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한국사에서 가장 아픈 시기를 피해가지요.

영화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노라노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를 말로써 복원하는 이들은 작가·전직 교수·디자이너·연예인 등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소위 '상류층'뿐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왜 안돼(걸스데이-여자대통령 중)'라는 노랫말이 나올 만큼 여성이 당당히 마케팅 요소로 쓰이는 시대라 하더라도, 영화는 5·16 군사정변 당시 그의 삶을 '남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웠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게 전부입니다. 영화 전반적으로 '노라노는 여성이다'라는 말만 강조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노라노를 알기 전에 '여성' 노라노만 알게 됩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나오는 각종 사료와 사회 상류층들의 증언들은 그를 '명망 있는 여성 디자이너'로만 묘사합니다.

누군가의 증언과 사료들 그리고 그를 한데 엮어 편집한 기록물은 대상의 모든 면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관객들이 잘 알지 못하고, 감독 역시 영화 서두에 던졌던 공통된 질문 '노라노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려줘야 노라노를 복원하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노라노 김성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