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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억새밭은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의 능선에 하얗게 펼쳐져 있다.
 간월재 억새밭은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의 능선에 하얗게 펼쳐져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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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Alpes)'는 유럽 중부에 있는 산맥의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알프스'를 말할 때, 그 함의는 훨씬 새롭고 깊다. 실제로 알프스를 가 보았는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운도 오브 뮤직>이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같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형성된 이미지 때문일까. 알프스는 영세중립국 '스위스'와 '요들송' 같은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산, 마지막 청정 지역'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니! 영남에 웬 알프스?"

일본 중부 지방의 산맥 몇을 일러 '일본 알프스'라고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에 안달하는 일본인들의 '유럽 지향'이 알프스까지 끌어들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알프스'는 메이지 시대에 영국인들이 알프스 산맥과 비슷하다고 해서 명명한 것이라 했다.

영남 동부지역에 있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일러 '영남 알프스'라고 이른다고 했을 때의 느낌도 좀 묘했다. 내게 알프스란 아름다운 푸른 초원의 이미지보다는 눈 덮인 빙하와 만년설 따위로 먼저 떠오르는 것이었으므로 그걸 나지막한 우리 산악과 잇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남 알프스는 경북 경주와 청도, 울산광역시 울주, 경남 밀양과 양산 등 3개 시도, 5개 시군에 모여 있는 해발 1천m 이상인 가지산, 운문산, 재약산, 신불산, 영축산, 고헌산, 간월산 등 7개 산들을 이른다.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낙동강과 평행을 이루며 형성된 이들 산들의 풍광이 알프스 산맥의 그것과 버금간다 하여 알프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영남 알프스의 이른바 '하늘 억새길'을 다녀왔다. 나는 무엇보다도 '간월'이란 산 이름에 끌렸다. '볼 간(看), 달 월(月)'자를 썼구나. 이 산 이름은 산기슭에 있었던 '간월사'라는 절 때문에 붙었다고 했다. 그런데, 1861년에 간행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看月山(간월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상북면 등억리에 터와 석조여래좌상만 남은 절 이름은 '시내 간(澗)'자를 쓰는 '澗月寺(간월사)다.

이제 막 간월재 임도 주변의 나무들은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제 막 간월재 임도 주변의 나무들은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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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갈색이 어우러지면서 가을의 비색을 연출하는데 간월재엔 붉은색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단풍은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갈색이 어우러지면서 가을의 비색을 연출하는데 간월재엔 붉은색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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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나무처럼 쭉 늘어서는 것'을 '임립(林立)'이라 한다. 간월재 임도 주변에는 쭉 곧은 인물 좋은 나무들이 많았다.
 '숲의 나무처럼 쭉 늘어서는 것'을 '임립(林立)'이라 한다. 간월재 임도 주변에는 쭉 곧은 인물 좋은 나무들이 많았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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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살펴보니 간월의 표기는 여럿이다. '磵月·澗越·肝越' 등으로 쓰는데 정작 공식적으로 쓰는 글자는 '간월(肝月)'이다. 하필이면 동물의 장기를? '간월'은 이웃의 신불산(神佛山)처럼 그 안에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란다. 글쎄, 이러저러하게 어원을 설명하는 글이 몇 있지만 그런 데는 아둔해서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

에멜무지로 떠난 '억새 하늘길'

나는 산을 타는 건 잘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더구나 최근 십여 년 동안 산에 오른 건 손꼽을 정도다. 그런데 유명한 영남 알프스의 억새를 구경하고 싶다. 그것도 역시 산을 오르는 데는 젬병인 아내와 딸애와 함께 가고 싶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신불산 자연휴양림 쪽 상단지구에서 간월재로 오르는 코스가 최단거리,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됐다! 우리는 아침 느지막이 집을 떠났다. 점심과 간식을 준비해야 했지만 우리는 현지에 가서 마련해도 되지 않겠냐고 느긋하기만 했다. 내비게이션은 두 시간 남짓이면 목적지에 닿는다고 알려주었고, 산을 오르는데 1시간쯤이면 된다니 가볍게 동네 뒷산을 오르는 것쯤으로 아주 시뻐본 것이다.

상단지구에 도착했을 때까지 우리는 점심은커녕 간식도 준비하지 못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관리인에게 물으니 오르는 데 '1시간 반'쯤 걸린다고 했다. 우리의 시간표는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점심은 어쩌지? 올라갔다 내려와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산 위에도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뭐.

산행 내내 눈에 이처럼 내외가 함께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산행 내내 눈에 이처럼 내외가 함께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우리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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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가 함께하는 경우뿐 아니라, 이처럼 홀로 산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내외가 함께하는 경우뿐 아니라, 이처럼 홀로 산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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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주변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예상한 대로 모두들 제대로 등산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얼추 등산화를 신고 위아래로 등산복이라고 걸쳤으나 아내와 딸은 거의 '동네 뒷산' 가는 차림새였다. 등산 재킷이라도 걸친 아내와는 달리 딸애는 춥다고 야전상의를 걸쳤고 둘 다 면바지에다 운동화였다.

'히말라야파' 아닌 '동네뒷산파'도 꽤 많다

저마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히말라야 등정 복장'을 하고 지나가는 등산객들을 바라보며 아내는 은근히 "복장이 어째 좀 창피하다"고 말했지만 딸애는 "이 정도 길에는 이만해도 충분한데 뭘"하고 씩씩하게 앞서 나갔다. 그러나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건 이내 밝혀졌다. 도중에 만난 이들 가운데 '동네 뒷산파'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산 들머리부터 오르막이었다. 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게야 경사라 할 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가끔씩 디스크 증세를 호소하고 산행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아내에게는 물론, 체력이 시원찮은 딸애에겐 만만찮은 물매다. 나는 천천히 아내를 격려해가며 그 속도에 맞춰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자연휴양림과 간월재가 갈리는 삼거리부터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단풍이 맑고 곱게 느껴지는 해는 많지 않다. 아직 일러서일까. 간월산의 단풍은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었다.
 단풍이 맑고 곱게 느껴지는 해는 많지 않다. 아직 일러서일까. 간월산의 단풍은 맑고 투명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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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와 산등성이에 들고 있는 단풍은 눈부시지 않지만 처연하면서도 안정된 산의 표정 같아 보인다.
 골짜기와 산등성이에 들고 있는 단풍은 눈부시지 않지만 처연하면서도 안정된 산의 표정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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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다리를 위로한 것은 연도의 풍경들이었다. 아내와 딸애는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정말 좋다! 그 외마디 감탄사 속엔 '힘들지만 오길 잘했다'는 속내가 담겨 있었음을 틀림없다. 하늘은 맑은 청잣빛! 널찍한 임도 양옆으로 따라오는 숲은 바야흐로 단풍이 들고 있는 중이었다.

단풍은 '붉을 단(丹)'자를 쓰지만 정작 숲에 붉은색 단풍이 드는 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간월산 오르는 길에는 단풍나무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붉은색 단풍은 붉나무가 대신하는 듯했다. 붉은 단풍 대신 노랗게 물드는 활엽수가 가을의 산빛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있었다.  

한 시간 반이면 된다던 간월재는 두 시간이 지나도 나타날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사진을 찍거나 틈틈이 쉬어가며 오르니 한결 나았지만, 정오를 넘기면서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뱃속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오르면서 먹은 거라곤 바나나 두 개를 나누어 먹고 물을 몇 모금 마신 게 다다. 힘이 들어 진이 빠진 데다 허기까지 겹치니 아내와 딸애의 얼굴빛이 하얘졌다.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계속해서 '다 와 간다'는 말로 위로하며 끌고 왔지만, 상황은 꽤 심상찮은 상태다. 어떡하나, 머리를 굴리며 모퉁이를 돌자, 쭉 벋은 길 저편으로 새파란 하늘과 나무와 숲 대신 억새가 빽빽하게 들어찬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만질만질한 그 능선에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은 억새 하늘길, 간월재였다.

탈진에 허기가 겹칠 무렵에 거짓말처럼 간월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탈진에 허기가 겹칠 무렵에 거짓말처럼 간월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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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간월재 억새밭과 나무데크 길 사이에 구원처럼 휴게소가 보였다.
 멀리 간월재 억새밭과 나무데크 길 사이에 구원처럼 휴게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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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왔어. 저기야!
- 정말! 이제 살 거 같네.

10여 분을 오르자, 간월재 대피소와 휴게소가 나타났다. 휴게소 안팎은 등산객으로 넘쳤다. 딸애는 재빠르게 배낭을 벗어놓고 매점의 길게 늘어선 줄에 붙어 섰다. 컵라면과 초콜릿 쿠키에 삶은 달걀, 커다란 봉지 속에 든 무슨 칩……. 휴게소 탁자 위에 그것들을 늘어놓고 우리는 그것을 요샛말로 '폭풍 흡입'했다.

정상에 '휴게소'가 있어야 하는 이유

덜 끓은 물을 부어 설익은 컵라면도 꿀맛이었고 달걀도 추억의 맛을 떠올려 주었다. 평소 같으면 꺼리는 초콜릿 과자 맛도 그만이었다. "자기 쓰레기는 되가져 갑시다"라는 푯말을 보더니 딸애는 컵라면 용기와 젓가락만 휴지통에 버리고 나머지 포장들을 야무지게 꾸려 배낭 속에 넣었다.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서 아내와 나는 마주보며 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눈이 좀 떠지는 것 같네.
-그래, 산 정상에 휴게소가 왜 있어야 하는지를 이제야 알겠구먼.

간월재의 억새는 산바람에 적응할 걸까. 그리 키가 크지 않았다. 사람들은 억새밭에서 영남알프스의 풍광을 즐겼다.
 간월재의 억새는 산바람에 적응할 걸까. 그리 키가 크지 않았다. 사람들은 억새밭에서 영남알프스의 풍광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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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간월재 억새밭은 맛보기에 그친다고 한다. 수만 평의 하얀 억새밭이 펼쳐지는 신불평원에 비기면.
 그러나 간월재 억새밭은 맛보기에 그친다고 한다. 수만 평의 하얀 억새밭이 펼쳐지는 신불평원에 비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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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억새밭 사이에 낸 나무데크 길은 등산객들에게 매우 훌륭한 포토 존인 셈이다.
 간월재 억새밭 사이에 낸 나무데크 길은 등산객들에게 매우 훌륭한 포토 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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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서 이어질 듯 끊어지고 사라졌다 다시 드러나는 억새길은 '영남 알프스'가 자랑하는 풍광이다.
 시야에서 이어질 듯 끊어지고 사라졌다 다시 드러나는 억새길은 '영남 알프스'가 자랑하는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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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 억새밭을 뒤로 하는 하산길. 언제쯤 다시 이 영남알프스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간월재 억새밭을 뒤로 하는 하산길. 언제쯤 다시 이 영남알프스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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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를 채우고 나서 간월재 억새밭 사이로 낸 나무데크 통로로 '억새밭 하늘길'을 걷는다. 하늘과 맞닿은 완만한 능선에 펼쳐진 억새는 산바람에 적응한 걸까,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았다. 나무 하나 없이 억새가 우거진 이 산등성이를 일컬어 '간월재'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휴게소 왼편 봉우리로 오르면 간월산(1037m), 오른편 산봉우리를 넘으면 신불산((神佛山, 1,159m)이다. 이 두 산 사이의 간월재는 해발 900m. 등산객들로 넘쳐나지만 간월재의 억새밭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신불산 정상에서 남쪽 영축산(1081m)에 이르는 수백만 평 능선에 펼쳐지는 '신불평원'에 비기면.

그러나 빈약한 체력에다 맨몸으로 아무 준비 없이 오른 산행길이다. 서둘러 우리는 하산길에 올랐다. 대충 한 시간쯤이면 넉넉하게 하산을 끝낼 수 있으리라 보았지만 그 예측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목을 빼 보았지만 산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좋이 두 시간이 지나서였다.

- 어땠어, 구경 좋았지?
- 최고였어. 그런데 힘이 너무 들었어요.
- 좋은 구경하는데 그만 힘도 안 들까? 언제 신불평원 구경을 할 수 있을까.
- 아서요. 헬기가 거길 데려다주면 몰라도…….
- 그래, 맞아. 신불평원은 사진으로나 구경하지 뭐.

우리는 언양으로 나와 이름난 '얇게 썰어 양념해 석쇠에 구운 불고기'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역시 '실패'였다. 주차장 관리인은 '봉계리'를 추천했는데, 내비를 검색하니 봉계리가 나오지 않았다.(아마 경남으로 검색한 탓인가 보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맛집을 찾았더니 언양읍내의 가게 하나가 떴다.

언양 불고기는 실패지만 "그래, 알프스 맞아!"

'1박 2일'이 다녀갔고 공중파에 소개되었다는 사연을 내세우고 있는 가게였지만, 우리는 서둘러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얌전하게 자리를 떴다. 고기 맛은 그만했는데, '곁들이찬(쓰키다시)'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맛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되어 싱싱한 맛을 잃은 게 태반이었다. 계산하는데 밥 먹을 때 나온 된장찌개 값을 따로 지불하면서 우리들의 저녁식사는 '화룡점정'을 쳤다.(그게 그 동네의 풍속인지는 잘 모르겠다.)

간월재 등정은 최고의 풍광을 즐긴 시간이었지만 후유증(?)도 만만찮았다. 나는 이틀쯤 지나 원래의 컨디션을 회복했지만 아내와 딸애는 한 이틀이나 더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농 삼아 '가지 말걸 그랬나?'하고 튕겼더니 둘은 즉각 반응했다.

- 아니! 그래도 간월재는 너무 좋았어!
- 대신, 왜 거길 '영남알프스'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 걸요, 뭐.


태그:#간월재, #영남알프스, #억새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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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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