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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Dear 엘라

엘라 나는 도대체 면접이 뭔지 잘 모르겠어. 왜 못 봐도 떨어지고 잘 봐도 떨어질까? 정말 너무 화가 나. 저번에 떨어진 회사는 분명히 내가 대답을 잘 못했어. 그때는 나한테 공격적으로 물어보는데 거기에 말려들어가서 자신감을 잃고 우왕좌왕해서 망쳤어. 면접이 딱 끝나고 돌아나가는데 '아 떨어졌구나.' 그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면접 끝나고 집에 오는 길 내내 엄마한테 짜증을 부렸지.

내 인생에서 가장 원하던 자리였고 회사여서 엄마도 같이 가서 밖에서 기다렸거든. 내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화가 나고 그걸 인정했다가는 폭발할 것만 같아서 괜히 엄마한테 심술을 부린 것 같아.

그래서 2주전에 본 면접에는 혼자 갔어. 여기도 큰 회사고 좋은 자리였는데도. 사실 그렇게까지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이제는 공연 일을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구나라는 생각에 갔었지. 그래도 관련자료 뽑아서 3일 내내 달달달 외우고 연습 많이 했어. 면접을 기다리는데 사람이 꽤 많아서 몇 개 조로 나눠서 기다리는데 음료수랑 쿠키랑 빵을 가져다 놓은 거야. 내가 또 빵순이잖아. 눈이 휙 뒤집어 지는데 립스틱 지워질까봐 못 먹었어. 대신에 면접 끝나면 먹으려고 참고 또 참았지. 음료수도 화장실 가고 싶을까봐 입만 간신히 축였어. 그런데 앉아서 세 시간이 넘게 계속 기다리는데 죽을 맛이더라. 결국 마지막에 면접을 봤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먹는 건데. 문 밖에서 대기하는데 거기 있던 신입사원이 자기도 마지막으로 면접 봤는데 그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 면접관 기억에 잘 남는다고. 그 말에 튀어나온 입이 쑥 들어갔지 뭐.

그리고 들어갔는데 외국어는 하나도 안 시키더라. 이상했어. 다른 조 참가자들은 다 영어는 기본이고 제 2외국어 하나씩 다 시켰다는데. 도대체 뭘 보고 뽑으려는 건지 아니면 여기 올 정도면 기본이 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리고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왔어. 회사에서 새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본 기억이 나서 질문을 했지. 언제 나오고 또 관련해서 보안된 기술이랑 동향 같은 걸 설명했는데 면접관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더라. 그거에 대한 대답은 지금 진행 중이라 입사하고 나면 해준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참가자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데 정말 속으로 '앗싸' 이랬다니까. 대답도 무난히 잘하고. 면접 끝나고 나왔는데 간식은 이미 다 치워버려서 그건 좀 아쉬웠지만.

그리고 너무 더워서 화장실에서 정장은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같이 면접 봤던 사람이 있는 거야. 그래서 전철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는 곳도 거의 비슷했어. 그 언니는 나보다 3살이 더 많고 통번역대학원 졸업했대. 근데 나한테 그러더라. 대학원 가지 말라고. 석사학위 가지고 취업하려니까 마땅한 곳이 없고 회사에서도 싫어한다고. 자기는 대학원 가서 고생도 많이 하고 공부도 엄청 해서 더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너무 속상하다고 하더라. 나보고 잘 될 것 같다는 이야기해서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난 내렸지. 그리고 집에 오는데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엄마아빠랑 저녁 먹으면서 면접 본 이야기하는데 아빠가 왜 이렇게 싱글벙글 하냐고 하더라.

"너 면접 잘 봤나보네? 안 그러면 똥 씹은 얼굴 하고 있는데."

그 말에 아니라고는 했지만 뜨끔했어. 그리고 면접에 대한 생각은 떨쳐버리고 편안하게 인턴 하는 데서 일을 했지. 그런데 3일전, 합격자 발표를 확인했는데 불합격이었어. 도대체 이제 더 이상 면접을 어떻게 봐야할지도 떠오르지가 않더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어. 그리고 분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씩씩거리기만 했지. 또 부모님은 내 눈치만 보고. 일도 손에 하나도 잡히지 않았어. 그러다가 인턴 하는데서 과장님이 시킨 일을 하다가 칼로 손을 베는 대참사가 일어나고야 말았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황당하더라. 아프지는 않고. 결국 병원 가서 꿰맸어. 손가락이 얼얼한데 정신은 퍼뜩 들더라.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던 것 같아.

너한테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다시 떠오른다. 난 정말 모르겠어. 공연일 할 운명인가? 그래서 나를 자꾸 일반회사는 떨어뜨리는 건가? 다시 이런 생각도 들어. 넌 어땠니?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보고 싶다, 엘라.


태그:#취준생, #백수, #면접, #인턴, #취업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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