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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동네, 성미산마을에 비보가 날아듭니다.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동네, 성미산마을에 비보가 날아듭니다.
ⓒ 스튜디오 느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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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좀 달라보이네요?"
"어제 미용실에서 돈 좀 썼어요."

"옆에 애가 없어서 그런가? 애 엄마처럼 안 보여요."
"너무 홀가분해요."

세탁소 다녀오는 길에 마을에 사는 엄마 두 명을 같이 만난다. 그 두 사람은 같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사람들이고 그 중 한 명은 나와 같이 비폭력대화 모임을 했었다. 다른 한 명은 공동주택 모임에서 만나기도 하고 우리집 주차장에 차를 대기도 한다. 

집 밖에 나가면 나를 알아보고 눈 마주치며 인사 건네는 사람들. 이런저런 커뮤니티와 모임으로 그물망처럼 관계가 엮어져 있는 마포구 성미산 마을 골목엔 생기가 돈다.

이 마을에 살면서 '생동감'을 느끼다

도시에서 살면서 물질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얻는 만큼 사람들은 외로움과 불안함을 세트처럼 달고 다닌다. 집 밖에 나가면 손에 든 백 라벨까지 경쟁하고 2년 뒤 오를 전셋값 걱정을 이사 오면서부터 시작한다.

정착을 원하지만 그것은 경제적 능력과 직결되는 것이고 부유물처럼 이동네 저동네 떠도는 사이 외로움이 조금씩 스며든다. 아파트 평수나 아이의 성적, 혹은 고가의 물건 등을 통해 작은 경쟁에서라도 이겨 마음의 위안을 삼아보려 하지만 그것도 진정한 위로가 되진 못한다. 그런 것으로는 본인만의 빛나는 가치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북구 '재미난 마을'에 살면서 '재미난 카페'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은팬더(별칭) 가족은 이 마을에 살면서 내 아이에 올인하지 않고 다른 집 아이들도 살펴보게 되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찾았다고 한다.

마을 카페나 마을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재능을 나누면서 주어지는 대로의 삶이 아닌 만들어가는 삶을 누리다 보니 생동감을 느낀단다. 생동감! 생명은 살아있음을 느낄 때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행복이 조금씩 찾아오게 마련 아니던가.

어떻게 하면 내 아이 성적을 올릴까 고민하기 보단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동작구 상도동 엄마들은 '성대골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 마을학교도 만들었다. 대부분 엄마들이 선생님이다. 아이 낳고 버려졌던 엄마들의 재능으로도 마을학교는 운영된다. 내가 배우고 익혔던 것을 발휘할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헛 살지 않았다는 충만감을 준다.

내가 맡고 있는 마을살이의 한부분이 전체 마을살이를 지탱하고 윤기를 더한다는 사실은 돈으로 채워질 수 없는 행복감이다. 그런 엄마들은 아이의 교육에만 머물지 않고 한발짝 더 나갈 용기를 얻는다. 요즘 성대골 마을은 에너지 자립마을로 나아가는 중이다.

마을살이에서 참 신기한 게 이런 거다. 처음엔 내 가족, 나의 자아실현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곧 전체 마을 사람들의 삶을 고민하고 같이 잘 사는 방법을 찾아가게 된다. 이기적인 관심과 개인적인 욕구에서 출발해 전체로 넓어지는 것! 그래서 각박한 도시에서 마을이 꼭 필요한 거 아닌가?

'마을'이 복지가 되는 순간, 행복해진다

<마을의 귀환>(오마이북) 책 표지
 <마을의 귀환>(오마이북) 책 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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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도시지역 공동체는 어떨까? 브리스톨 시에 있는 바턴 힐 지역은 실업자는 많고 교육 수준은 낮고 범죄율은 높은 곳이다. 이런 곳에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가 도입한 정책으로 1999년부터 공동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바턴 힐 세틀먼트'라는 기관 건물에 알코올, 마약 중독 치료센터, 패밀리센터가 들어서 있다. 패밀리 센터는 보육시설이 아니라 가족들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다. 미혼모나 이민자들이 모여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함께 고민하는 곳. 보육원 가족모임, 초등학생 가족 모임, 무슬림 여성 점심모임, 바느질 모임, 컴퓨터 수업, 영어 수업..... 35개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바턴 힐 세틀먼트에 끊임없이 주민들이 드나든다. 

정부 주도로 만들어지는 마을 공동체는 지속가능성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던 활동가가 사라지면 공동체도 같은 운명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이 커뮤니티 운영 활동가가 되어야 하고 주민들 입맛대로, 그들의 주도로 커뮤니티가 운영되어야 한다.

소말리아에서 온 사다는 바턴 힐 세틀먼트를 드나들다 영국 여성, 수단 여성과 함께 저녁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소말리아 커뮤니티에서는 사다의 행동이 충격이었지만 사다는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한단다. 이렇게 마을 활동가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할 일 없어 걱정이라는 사다는 청소년과 함께 하는 여러 활동을 해보고 싶은 꿈도 꾸고 있다. 살아온 환경도 문화도 달랐던 이민족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같이 뭔가를 꿈꾸는 것, 바턴 힐 세틀먼트가 이뤄내고 있는 마을공동체의 모습이다.

몇 년전 우리나라 마포구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는 몇 개월사이에 투신자살이 연이어 벌어졌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이고, 병든 몸이 걱정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 그들은 생명을 끊어야 했다. 이런 곳에 커뮤니티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은 돈이 없어 생목숨을 던졌다기 보다는 희망이 없고 혼자라는 외로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거기에 공동체가 있었다면, 거기서 나를 챙겨주고 내가 할 일이 있는 공동체가 있었다면···.

영국에 바턴 힐 세틀먼트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관악주민연대가 있다. 신림동, 봉천동에 있는 임대아파트에 음식을 배달하는 나눔푸드를 하고 아파트 안에 방과후 공부방을 만들었다. 마을 도서관도 개관했다. 관악주거복지센터를 만들어 집 고민 상담도 해주고 집 수리서비스도 제공한다.

돈도 시간도 부족해서 도움을 받다가 도움이 끊기면 뿔뿔히 흩어지는 '가난의 문화'를 절감하는 게 현실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는 한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할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어려움을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연속되는 속에서 우리들은 외로움과 불안함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마을이 있고 내가 마을 사람이 되어 활동에 참여하면 외로움과 불안함은 조금씩 잦아든다.

굳이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이래저래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생기고 내 안색을 걱정하는 눈빛을 마주하면서 치유가 일어난다. 급하게 몇 시간 아이 맡길 수 있는 동네 엄마를 알게 되고 갑작스런 집 구하기도 알음알음으로 해결되기도 하다. 마을이 복지가 되는 순간이다.

도시 소시민들한테 마을공동체 생활은 '있으면 나쁠 것 없지만 나는 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잠깐으로 느껴지는 세집살이 2년 동안 삶은 지속되고 아이들은 커간다. 2년이든 4년이든 우리는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맞고 소소한 행복을 맛보고 싶어한다.

마을공동체를 만들자. 없고 외롭고 추운 사람들이 도시에서 따뜻하게 지낼 힘을 얻게 된다.  마을의 귀환.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이 우리나라와 영국의 마을공동체를 탐방하고 기록했다. 적당히 도톰하고 가방에 쏙 집어넣기 좋은 사이즈로 만든 이 책에서 작지만 결정적인 팁을 얻을 수 있으니 마을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라! 중국집 배달원 신분증 검사하는 고층 빌딩서 아무도 필요없다는 듯이 사는 정책 입안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시고!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마을의 귀환, #공동체, #도시,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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