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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서는 어떤 곳인가?

하문 선착장에서 바라 본 고랑서
 하문 선착장에서 바라 본 고랑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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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하문시의 대표적인 관광지 고랑서(鼓浪嶼)를 보러 간다. 고랑서의 중국식 발음은 구랑위(Gulangyu)다. 섬에 부딪치는 파도소리가 마치 북소리를 닮았다 해서 고랑서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고랑서로 가기 위해서는 하문 페리선착장(輪渡碼頭)으로 가야 한다. 페리선착장은 하문섬의 서쪽 연무대로변에 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선착장으로 걸어간다. 건너편으로 고랑서의 상징 팔괘루(八卦樓)와 일광암(日光岩)이 보인다. 그런데 선착장에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일요일이어서 더 많은 것 같다. 고랑서는 하문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유원지다. 여기서도 무이산 남문을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이삼십 분 걸려 배를 타니 겨우 숨통이 트인다. 하문-고랑서간 페리는 손님이 타는 대로 계속 운행을 한다.

고랑서에서 바라 본 하문의 고층빌딩
 고랑서에서 바라 본 하문의 고층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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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10분 정도 만에 고랑서에 도착한다. 고랑서에서 하문 쪽을 바라보니 고층빌딩이 많이 보인다. 그 지역이 하문시 사명구(思明區)다. 고랑서와 사명구가 하문시에서 가장 먼저 개방되고 개발된 지역이다. 고랑서는 음악의 고향, 피아노의 섬, 현대 스포츠의 선구, 의료산업의 선구, 만국 건축박물관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방과 함께 들어온 것으로, 고랑서와 하문시 더 나아가 중국을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랑서는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피아노 덕에 서양음악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피아니스트와 음악가를 배출하게 되었다. 1920년대 주숙안(周淑安), 30년대 임준경(林俊卿), 50년대 오천구(吳天球)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중국 최고의 여자 지휘자 정소영(鄭小瑛: 1929-)이 1998년 이래 하문 오케스트라의 감독을 맡고 있다. 고랑서에는 또한 아시아 최대의 피아노 박물관이 있다.

마약한 동상
 마약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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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포츠는 고랑서 출신의 마약한(馬約翰 John Ma: 1882-1966)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원래 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나중에 체육을 공부해 청화대 체육주임이 되면서 중국 제일의 운동 코치가 되었다. 그가 중국 현대 스포츠를 소개하면서, 고랑서에도 운동부가 창설되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고랑서가 건축박물관이 된 것은 19세기말 20세기 초부터다. 외국영사관들이 자기 나라의 건축양식으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13개국 영사관과 그들이 사는 사택이 서양식으로 지어졌고, 외국에서 성공해 귀국한 화교들도 서양식으로 집을 지었다.

건물마다 사연을 담고

고랑서 지도
 고랑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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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랑서 선착장에서 숙장화원까지 걸어가면서 고랑서의 역사와 문화가 서린 건축물을 살펴본다. 가장 먼저 영국 영사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869년에 지어진 3층짜리 벽돌건물이다. 현재 이 건물의 일부는 영사관 여관(Consulate Inn)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국 영사관의 역사는 1842년의 난징(南京)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5개 무역항을 할양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하문(Amoy)이었다. 영국은 1843년 11월 2일 녹초로(鹿礁路) 16호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영사 업무를 시작했으며, 186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했다. 이 건물에는 현재 만석산 풍경명승구 관리위원회가 들어와 있다.

일본영사관 건물
 일본영사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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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난 건물이 녹초로 24호에 있는 일본 영사관이다. 일본은 1875년 고랑서에서 처음으로 영사 업무를 시작했고, 1898년 현재의 위치에 영사관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600㎡의 2층짜리 건물을 완성했으며, 1층은 사무실로 2층은 숙소로 사용했다.

그 후 1928년 영사관 오른 쪽에 두 동의 붉은 벽돌 건물을 신축했다. 이 건물 중 하나는 숙소동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경시청으로 사용되었다. 1945년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영사관 건물은 중국 정부에 귀속되었고, 그 후 현재까지 하문대학교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

세 번째 만난 건축물은 교회 건물들이다. 하나는 개신교인 유니온 교회(Union Church), 다른 하나는 가톨릭 교회인 천주당이다. 유니온 교회는 1863년 중국 최초의 국제 예배당으로 문을 열었다. 그래서 예배를 영어로 보았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물은 1911년 수리를 거쳐 좀 더 큰 유니언 채플(Union Chapel)로 거듭 났다. 그 후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쳤고, 2011년부터는 종교박물관, 음악홀, 예식장 등이 문을 열었다.

천주당 건물
 천주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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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로 34호에 있는 천주당은 1916년 마수렌(馬守仁) 주교에 의해 지어진 고딕식 건물이다. 흰 벽에 붉은 지붕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서양식 건축이다. 에스파냐 도미니크 교단 소속으로 성당 기능을 이어왔으나 1966년 문화혁명 이후 공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2년 천주당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애심요양원: 건물 앞에 존 오트의 흉상이 보인다.
 애심요양원: 건물 앞에 존 오트의 흉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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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만난 건축물이 애심요양원(愛心療養院)이다. 우리의 요양병원 비슷한 것으로 아주 현대적이다. 이 요양원을 시작한 사람이 고랑서 의료사업의 선구자 존 오트(John Abraham Otte 郁約翰: 1861-1910)이다. 그는 1888년 아모이에 왔고, 1889년부터 네르보쉬 구호병원(Neerbosch Hospital)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0년간 중국인들에게 현대의학을 가르치고 또 의술을 베풀었다. 그리고 1898년 구세의원(Hope Hospital)을 세웠으며, 여성전문 병원인 애심요양원(Wilhelmina Hospital)의 초석을 놓았다. 그래서 그를 추모하는 흉상이 요양원 앞에 있다.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기념비에 의하면, 그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인술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실현한 사람이다. 1900년 한 해 동안 그가 진료한 환자만 1만200명, 입원환자만 1206명이었다고 한다. 수술을 631회나 했고, 155개의 이를 뽑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20년 넘게 중국인을 위해 몸과 마음을 헌신하다 1910년 죽었다. 그는 네덜란드인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중국에서 일하다 중국 땅에 묻혔다. 중국사람들은 이 비석을 통해 그가 쌓은 공덕과 베푼 은혜를 기리고 있다.

고랑서 인민체육장
 고랑서 인민체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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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고랑서 음악청(Concert Hall)을 지나 인민체육장으로 간다. 이곳 인민체육장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생긴 잔디구장이다. 체육장 앞에는 또한 현대 스포츠의 선구 마약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들을 통해 고랑서가 중국 현대 음악과 체육의 시발점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인민체육장을 지난 우리는 중화로를 따라 숙장화원(菽庄花園)으로 간다. 중간에 고랑서 간부요양원과 해상화원 주점을 만날 수 있다.

언덕 아래 바다를 품은 숙장화원

숙장화원
 숙장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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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장화원은 고랑서에서 가장 큰 공원(公園: Public Garden)이다. 이 화원을 만든 사람이 임숙장(林菽庄: 일명 林爾嘉)이어서 숙장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그는 1874년 타이완의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임유원(林維源) 형제들이 타이베이 판교(板橋)에 살아 판교 임씨라 불렸다. 판교 임씨는 대만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타이완이 일본에 넘어가자 판교 임씨 일가는 선대 고향인 복건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타이완에서 가장 가까운 하문의 고랑서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임숙장이 1913년 초자산(草仔山) 아래 타이베이의 판교 빌라를 모방해 숙장화원을 지었다. 언덕 아래 바다를 품은 2만㎡의 땅에 환상적인 주택을 마련한 것이다. 우리는 이곳 숙장화원을 보기 위해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앞쪽으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왼쪽으로 언덕과 빌라가 보인다. 우리는 먼저 바다 쪽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있는 44교를 건너기 위해서다. 44교는 화원 앞 바다 쪽으로 뱀처럼 구불거리게 만든 다리다. 임숙장이 자신의 44번째 생일을 기념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44교에 있는 해활천공 바위
 44교에 있는 해활천공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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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곳에는 해활천공(海闊天空)이라는 글씨가 새져져 있다. '바다 쪽으로 탁 트였고, 하늘은 끝이 없다'는 뜻이다. 그 뒷면에는 침류(枕流)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편안하게 누워 파도의 흐름을 즐긴다'는 뜻이다. 바위를 지나면 다리는 바다로 이어진다. 중간에 정자가 있다. 그곳에는 '명월부공십이란 장교지해삼천장(明月浮空十二欄 長橋支海三千丈)'이라는 시가 적혀 있다.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열두 난간을 비추고, 긴 다리가 바다를 따라 만 미터나 이어진다는 뜻이다. 중국인의 시답게 과장이 심하다. 열두 난간은 누정이 높음을 말하고, 삼천장은 다리가 굉장히 김을 타나내기 때문이다. 임숙장은 이곳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시를 짓고 낭송하기를 좋아했다. 그 모임이 숙장음사(菽庄吟社)다. 음사는 낭송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모임의 결과 이런 시가 나온 것 같다.

44교에서 바라 본 해수욕장과 일광암
 44교에서 바라 본 해수욕장과 일광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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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교를 지나며 우리는 바다 쪽 항자후(港仔后) 해수욕장에서 노는 사람들을 본다. 해수욕장 뒤로는 고랑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용두산 일광암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언덕 쪽을 보면 피아노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청도헌(聽濤軒) 건물이 보인다. 일광암은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바위라는 뜻이고, 청도헌은 파도 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제 파도 소리가 아닌 피아노 소리를 들으러 청도헌 쪽으로 올라간다.        

피아노 박물관 살펴보기

피아노 박물관
 피아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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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입구에 청도헌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위로 고랑서 동금박물관(銅琴博物館)이라는 글자가 더 크게 쓰여 있다. 동금은 피아노의 중국식 표기이다. 그러므로 동금박물관은 피아노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고랑서 동금박물관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피아노 박물관이다. 이곳이 피아노 박물관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숙장화원의 주인이었던 임숙장이 1945년 타이완의 해방과 함께 타이베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의 친지가 남아 숙장화원을 관리하다 1955년 이곳을 국가에 넘겼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화교인 호우의(胡友義)가 70대가 넘는 피아노를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들 피아노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산된 것이다. 그리고 거리의 악사들이 사용하던 18세기 원통형 피아노(Barrel Piano)로부터 1928년 헤인즈(Haines)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랜드 피아노 스타인웨이 & 선스
 그랜드 피아노 스타인웨이 & 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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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박물관은 2000년에 하나의 전시실로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로마 출신의 영국 피아니스트 무치오 클레멘티(Muzio Clementi: 1752-1832)에 의해 만들어진 정말 오래된 피아노가 있다. 1801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랜드 피아노인 스타인웨이 앤 선스(Steinway & Sons) 피아노도 있다. 그 외에 독일에서 1900년대에 만든 뢴니쉬(Rönisch)나 베크슈타인(Bechstein) 같은 피아노도 보인다.

현재는 피아노 박물관이 1층과 2층 두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2층 전시실로 올라간다. 2층에 올라가자 유리창을 통해 바깥 해수욕장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에는 피아노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연대별로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피아노의 역사와 특성을 모두 알기는 어렵다. 오히려 벽에 걸린 슈만, 베르디 같은 음악가의 사진이 더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이제 피아노 박물관을 나와 언덕 쪽에 있는 건물과 정원을 더 살펴본다. 건물 뿐 아니라 정원도 아주 잘 꾸며져 있다.


태그:#하문시 고랑서, #음악과 건축, #스포츠와 의료, #숙장화원 , #피아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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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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