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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태는) '촛불이 커지느냐, 작아지느냐'가 아니라 (이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추궁하는 것에 성패가 달린 싸움"
 "(국정원 사태는) '촛불이 커지느냐, 작아지느냐'가 아니라 (이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추궁하는 것에 성패가 달린 싸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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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촛불 700여개가 처음으로 광장을 밝혔다. 집회 참가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10일에 촛불도 절정에 이르렀다. 이날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아래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최한 제6차 범국민대회 참석 인원은 서울 5만 명, 전국 10만 명(주최 쪽 추산)을 기록했다.

다음 집회부터 참가자는 조금씩 줄었고, 8~12차 대회 때는 약 2만~3만 명 선을 유지했다. 한쪽에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처럼 참가자가 급증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죄 혐의 등이 불거지면서 촛불집회가 힘을 잃고 사그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국정원 시국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태호(46) 참여연대 사무처장 생각은 달랐다.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008년과 지금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정원 사태는) '촛불이 커지느냐, 작아지느냐'가 아니라 (이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추궁하는 것에 성패가 달린 싸움"이라며 "어려운 싸움이고, 긴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촛불과 다를까

이 사무처장이 2008년과 2013년의 촛불이 다르다고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촛불의 원인이다. 2008년 촛불집회는 정부가 광우병 위험이 해소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을 결정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정부가 '(수입 조건 완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고, 국민 안전과 직결된 사안을 밀실 외교로 처리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란) 사안 자체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데다 이후 정부 거짓말이 드러나면서 촛불이 더욱 타올랐다"고 했다. 또 "고시 철회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료한 목표가 있었다"며 "사안의 해법까지 딱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사태는 대선 과정에서 일어난 메가톤급 사건이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보다 더 큰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2008년과 달리 사건의) 진실이 아직 다 규명되지 않았다. 또  해당 사건 하나가 아니라 국정원이라는 거대한, 지금껏 개혁을 시도했지만 하지 못한 권력집단을 개혁하는 일이라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구조적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느끼고 있다.

촛불도 사건이 일어난 지 한참 뒤인 6월에야 일어났다. 계기는 국정조사였다. 시민들은 '거기에서  진실이 규명되는지 아닌지 지켜보겠다'며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완화 직후 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2008년과 다르다."

촛불의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 사무처장은 "촛불이 국정원 문제 해결에 있어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지금은 무척 중요하다, 적어도 올해 연말까지는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해법을 찾는 일도 시급하다. 그가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다. 국정원 시국회의는 8월말부터 특검 수사를 촉구하는 '100만 서명운동'을 추진해왔다.

이 사무처장은 "이 사건은 사실 검찰이 다룰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인 만큼 법무부 장관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이란 점을 볼 때, 국정원 사태와 닮아 있는 미국 워터게이트사건(닉슨 대통령이 1972~1974년 동안 야당인 민주당을 탄압하기 위해 불법 도청한 사실이 드러난 사건)을 거론하며 "이때도 특검을 실시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두 사건이 흘러가는 양상 역시 비슷하다고 봤다. '검찰총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란 한국의 현재 상황은  특검이 진행 중이던 1973년 미국과 닮은 점이 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미 상원의회 특별위원회에 제출될 상황에 처하자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부 장관에게 아치볼트 콕스 특별검사의 해임을 요구했다. 리처드슨 장관은 이를 거부하며 자진 사퇴했고, 법무차관도 물러났다. 국민들은 이 일을 계기로 닉슨 대통령을 더욱 의심하게 됐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특검해야... 채동욱 사퇴는 본게임 시작"

"지금 국정원이나 정부 기관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박 대통령과 국정원 사태의 연관성을 계속 높이고 있다"
 "지금 국정원이나 정부 기관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박 대통령과 국정원 사태의 연관성을 계속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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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무처장은 "워터게이트사건을 예로 든다면, 검찰총장이 옷을 벗은 건 초반부"라며 "국정원 사건은 이제 본게임을 시작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게임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과 별도로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일이 포함된다"며 "청와대가 검찰총장을 날리는 게임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가 해야 할 '게임'은 국정원 사태만이 아니다. 이 사무처장은 "풀어야 할 과제들이 100개가 있는데 큰 사고가 터져서 다른 것은 다루지 못하는 상황이라 국민으로선 큰 손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선 때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문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이런 것들의 추가 수사도 해야 하는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당장 넘어야 할 산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최하 60%대를 유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 사무처장은 아직 국민들이 국정원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을 연결 짓고 있지 않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에게 감사해야 한다. 근데 이게 영원하지 않다는 건 잊고 있는 듯하다. 지금 국정원이나 정부 기관이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박 대통령과 국정원 사태의 연관성을 계속 높이고 있다. 또 이 사건의 진실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느낄 때가 온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국정원 사태는 지금이 시작하는 시기다. 중반이나 종반이 결코 아니란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팬 관리'에 민감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갈등 위에 있으면서 '나는 관계없는데 너희들이 정쟁을 벌이니 내가 조정하겠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점은 가장 큰 문제"라며 "초기에 지지도가 높을 때는 굉장히 근사해보이겠지만, 대통령 리더십을 의심하거나 불신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질 것"라고 말했다. 소통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5년 역시 '불통의 시기'가 된다는 말일까. 이 사무처장은 "아직 예단하긴 힘들다"면서도 "올해와 내년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어떤 개혁이든 정권 초반에 해야 하는데 그게 임기 1~2년차에 달려 있다"며 "이 시기는 복지와 경제민주화, 그 결과 민생을 잘 챙기느냐 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팬 관리'면에선 안심이지만, 불안요소는 남아 있다. 이 사무처장은 "박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복지, 경제 민주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을 제대로 추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임기 2년차가 고비일 것"이라며 "이때 잘 못할 경우 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더 빠른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명박근혜' 확실해지면 레임덕... "현재로선 '다르다' 인상 줄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지금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분리해서 보고 있지만, '같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레임덕이 올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이 지금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분리해서 보고 있지만, '같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레임덕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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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박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 점수를 줬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 등으로 가산점이 붙은 만큼 박근혜 대통령은 여느 대통령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하지만 (그 결과가) 기대 밖이라면, 이명박 정부 때 평가를 유보했던 일들까지 다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 때 중간 선거 패배 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것처럼 될 수 있다"고 했다.

국정원 사태 해결은 국민들이 '이명박근혜'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보다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사무처장은 "야당이나 국정원 시국회의는 '대선 자체를 무효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이 정도로 신중함을 취한다면 정부가 사과나 진실 규명에 있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고 국정원 개혁 방안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제 책임이 아니다'란 말이 성립가능하다"며 "근데 (대통령은) 마치 자기 책임이 있는 일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저는 책임이 없다'는 말만 남긴 채 입을 닫았다. 이 사무처장은 그의 긴 침묵을 우려했다.

"많은 시민들이 지금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분리해서 보고 있지만, '같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레임덕이 올 수 있다. 지금 봐선 '다르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적어지고 있다."


태그:#이태호, #참여연대, #국정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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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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