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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기차는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교통수단이었다. 시골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는 사람들, 멀어져가는 열차와 승강장에서 작별을 고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시대극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21세기인 지금 철도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고속철도는 전국을 반일 생활권으로 묶어주고 있으며, 시골의 낡은 철도도 하루가 다르게 쭉쭉 뻗은 직선으로 개량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관광열차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관광열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밋밋한 차량과 패키지 방식의 관광열차는 그저 전세버스를 여러 대 붙여놓은 식이었을 뿐이었다. 이는 먹고 마시며 춤추는 단체여행에서, 가족이나 연인 등 소그룹이 여행지의 의미를 짚어보며 여유 있게 하는 여행으로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코레일의 '렛츠 코레일'과 '에스트레인' 이미지
 코레일의 '렛츠 코레일'과 '에스트레인' 이미지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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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코레일에서는 올해 초 기차여행 패밀리 브랜드인 'Let's Korail(렛츠 코레일)'을 출범시킨 후, 알파벳 시리즈의 특별 관광열차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미 중부내륙순환열차인 O-train(오트레인)과 백두대간협곡열차인 V-train(브이트레인)이 4월부터 운행을 시작하였으며, 이들 열차는 9월초까지 19만 명이 이용하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평소 기차로 가기 힘들었던 곳을 운행하며, 특별하게 제작된 차량을 사용하였고, 각 정차역에서 연계관광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한 것이 성공의 동력이었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새로운 알파벳 관광열차가 운행을 시작하니 바로 남도해양관광열차 S-train(에스트레인)이다. 코레일의 에스트레인은 현재 시승단 시승중이며 오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다.

에스트레인의 큰 특징은 열차를 타는 즐거움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여행을 할 때 관광지라는 목적지만을 생각하지 관광지로 가는 과정은 깊이 생각해지 않는다. 특히 자가용 여행의 경우 오고가며 겪는 교통정체로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비록 관광열차는 이러한 교통정체를 피할 수 있지만, 기존의 열차와 차이가 없다면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차내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루함의 연속일 뿐이다.

에스트레인의 내부. 가장 이색적인 다례실을 비롯하여 다양하게 공간구성이 되어 있다
 에스트레인의 내부. 가장 이색적인 다례실을 비롯하여 다양하게 공간구성이 되어 있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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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스트레인은 차내에서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꾸며졌다. 전체 5량으로 구성된 에스트레인의 객차는 각각 힐링실, 가족실, 카페실, 다례실, 이벤트실이라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특히 4호차 다례실은 에스트레인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다. 천장을 한옥의 서까래로 이미지화하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좌식 객실로 꾸며 이곳에서 다도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일반 열차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콘셉트의 디자인과 가족석, 수유실, 커플룸과 같이 기능화된 공간 구성은 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 지루함 대신 신선함을 줄 것이다.

에스트레인의 둘째 특징은 철도의 변방지역을 지난다는 점이다. 에스트레인은 경전선을 주된 운행구간으로 한다.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철도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 우리나라 남해를 따라가는 노선이다. 경전선은 직선거리상 수도권에서 제일 먼 노선으로서 열차수도 적은데다 워낙 멀리 있어서 쉽게 체험하기 힘든 노선이다. 하지만 부족한 열차 상황에서 에스트레인이 하루에 왕복 2회 추가로 운행되면서 이곳의 관광 교통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에스트레인이 정차하는 득량역과 벌교역. 평소 열차가 적어 찾아가기 힘든 역이다
 에스트레인이 정차하는 득량역과 벌교역. 평소 열차가 적어 찾아가기 힘든 역이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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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교통이 좋아지면 관광객이 늘어나고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 같은 효과는 이미 오트레인과 브이트레인에서 입증된 바 있다. 이 지역은 남도해양권이라는 훌륭한 자연경관과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불편한 교통 때문에 그 잠재력이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27일 운행을 시작하는 에스트레인이 이 지역 관광발전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에스트레인은 동서화합에 기여한다. 에스트레인은 전체 2편성의 열차가 있으며, 아침에 각각 광주와 부산을 출발하여 마산과 여수에 도착한 뒤 저녁에 출발지로 돌아가는 형태로 운행한다. 그리고 두 열차가 점심시간에 만나는 곳이 바로 하동이다. 하동이 어떤 곳인가, 섬진강을 옆에 끼고 화개장터가 열리는 동서화합의 중심이다. 이런 곳에서 열차가 서로 만나다니 매우 상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양군과 하동군의 경계의 섬진강 바로 옆에 있는 하동역은 동서화합의 중심이다
 광양군과 하동군의 경계의 섬진강 바로 옆에 있는 하동역은 동서화합의 중심이다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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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레인은 보성, 벌교, 순천, 여수 등 전라남도의 주요 관광지를 지나간다. 이곳에서 승객들은 차(茶) 공원, 태백산맥 문화관, 순천만 생태공원, 여수엑스포 수족관 등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다양한 관광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에스트레인은 창원, 마산, 진주, 북천 등 경상남도의 관광지를 지나며 주남저수지, 마산어시장, 진주성, 북천코스모스역 등의 관광이 가능하다. 두 열차가 화개장터의 하동에서 교차하며 달리면서 양쪽의 문화를 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에스트레인을 더욱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대로 에스트레인은 기존의 전세나 패키지 형태가 아닌 소그룹 위주의 관광열차이다. 깃발을 따라 무리지어 이동하는 여행이 아니라, 스스로 경로를 정하는 DIY(Do It Yourself)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에스트레인의 승차권은 기존의 다른 열차들과 같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직접 예약 및 구입이 가능하다.

또한 시각표를 파악하여 원하는 관광지가 있는 역에서 내려서 오래 머문다거나 하는 방식의 여행도 가능하다. 이 경우 에스트레인은 이미 떠나버린 후이므로 그 역에 정차를 하는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형태로 이용이 가능한데, 이때 유용한 것이 바로 패스이다. 에스트레인 패스는 1일 권 4만 8천 원으로 에스트레인은 물론이고, 에스트레인이 운행하는 구간에 연결된 열차들을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북으로는 익산과 동대구까지 갈 수 있다. 에스트레인의 최장거리 운임이 2만 7천 원이므로 열차를 많이 탈 것이면 패스가 유용하다.

에스트레인 패스. 이 패스가 있으면 에스트레인은 물론이고 연계열차까지 자유롭게 승하차가 가능하다
 에스트레인 패스. 이 패스가 있으면 에스트레인은 물론이고 연계열차까지 자유롭게 승하차가 가능하다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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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레인은 남쪽에서 동서로 운행하므로 수도권에서 타려면 아침 일찍 남쪽까지 내려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럴 때는 KTX를 이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서울역에서 5시 45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면 부산역에 8시 28분에 도착하여, 아침을 먹고 9시 20분에 출발하는 에스트레인을 탈 수 있다. 또한 용산역에서 5시 20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면 광주송정역(옛 송정리역)에 8시 5분에 도착하여, 광주송정역에서 8시 25분에 출발하는 에스트레인을 탈 수 있다.

에스트레인의 열차시각표. 하루에 왕복 2회 운행된다.
 에스트레인의 열차시각표. 하루에 왕복 2회 운행된다.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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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레인의 S는 구불구불한 경전선 철도의 모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실제로 KTX가 운행되는 삼랑진-진주 구간을 제외하면 경전선은 꼬불꼬불한 시골 철도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진주 서쪽은 전철화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기기관차 대신 우렁찬 엔진음이 나는 디젤기관차가 열차를 끌고 있다. 특히 두 대 밖에 없는 이 기관차는 거북선을 메인 테마로 하여 쪽빛으로 도색하였기 때문에 기념사진을 찍으면 좋다.

에스트레인의 기관차. 거북선을 테마로 하였다
 에스트레인의 기관차. 거북선을 테마로 하였다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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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과 관광은 철도 수요의 주요한 두 축이다. 일본과 같은 철도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양쪽이 함께 발전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자랑할 만한 관광열차가 없었다. 하지만 오트레인, 브이트레인을 비롯하여 에스트레인까지 계속 이어지는 '알파벳 관광열차'는 자신만의 이름과 콘셉트, 스토리를 갖고 있다. 자신만의 스토리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경쟁력이다.

오는 27일 운행을 시작하는 에스트레인이 남도해양권의 자연과 문화를 널리 알리고,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문화교류에 앞장서는 역할을 완수해, 관광열차계의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쓰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한우진은 철도애호인, 교통평론가, 미래철도DB(frdb.wo.to) 운영자입니다.
에스트레인에 대한 자세한 안내 : http://www.korail.com/2009/htm/htm54000/w_htm54210.jsp



태그:#에스트레인, #관광열차, #코레일,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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