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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결정 기자회견 - LA 라크마 박물관 앞
 환수결정 기자회견 - LA 라크마 박물관 앞
ⓒ 안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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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현지 시간으로 추석날(19일) 오후 4시. 나는 문정왕후 어보 환수 2차 협상을 마친 후 혜문스님과 함께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발표를 하였다.

"조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이곳 LA에서 기쁜 추석 선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LA 라크마 박물관은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므로,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해 조건 없이 어보를 반환키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동안 성원과 후원해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문화재청과 LA총영사관 관계자들께 정식으로 감사드린다.

☞ 관련기사 : '손에 땀을 쥐게 한' 문정왕후 어보 환수 협상

수사와 압수보다 협상을 통한 반환 요청

LA 현지 시간으로 19일 오전 10시 30분. 오후에 예정된 라크마 박물관 측과 정식 협상에 앞서 제프 야로슬라프스키(Zev Yaroslavsky) LA 카운티 슈퍼바이저와의 면담이 성사된 것은 다행이었다. 러시아계 정치인으로 65세인 그는 40여 년 동안 LA 한인타운을 기반으로 시의원을 거쳐 19년째 슈퍼바이저를 하고 있는 우리 표현으로 '소탈한' 정치인이었다.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는 면담 자리에 박물관 담당 변호사를 배석시켜 사전 이견 조율이 가능토록 하였으니 매우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와 면담이 없었더라면 환수 결정은 다음으로 연기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면담 대표 자격으로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요청하였다. 문정왕후 어보가 한국전쟁 동안에 도난당한 문화재라는 우리의 증거 자료가 완벽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는 한국을 2번을 방문했다며 너무 아름다운 나라라고 자신의 한국방문기를 이야기했다. 나는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가 우리나라를 전혀 모르는 인물보다 우리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정치인이었기에 문정왕후 어보 반환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약간 놓이기도 했다.

야로슬라프스키 LA 카운티 슈퍼바이저 면담 - 오른쪽 흰머리 남자는 박물관 측 변호사
 야로슬라프스키 LA 카운티 슈퍼바이저 면담 - 오른쪽 흰머리 남자는 박물관 측 변호사
ⓒ 안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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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6월에 국회에서 문정왕후 어보 반환 결의안을 제출했었고, 그 결의안을 이미 라크마 박물관에 제출했었다. 한국의 국회와 국민들이 문정왕후 어보 반환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와 라크마 박물관 고문 변호사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나는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와 어보 반환에 대해 대화하던 중 우리 검찰이 미국 정부에 어보 수사를 요청한 자료를 보여주면서 "수사를 통해 장물로 확인되면 압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한미 우호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될 것입니다. 수사나 압수보다 평화로운 협상을 통해 돌려받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압박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스님은 2010년 LA카운티 라크마 박물관에서 구입한 어보가 도난당한 유물이란 것을 증명하는 미 국무부 보고서를 메릴랜드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내었다. 이 기록을 근거로 문화재청이 대한민국 검찰청에 수사를 요구했고, 대한민국 검찰청은 미국 국토안보국에 어보에 대한 불법성 수사를 요청했던 것이다.

문정왕후 어보가 도난품이란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말에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와 변호사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긴장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되는 듯했다. 

한 시간가량의 면담을 마친 후, 야로슬라프스키 슈퍼바이저는 사무실 밖 베란다로 우리를 안내했고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박물관에 전시된 어보를 압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압수를 막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고, 나는 "만약 어보 반환을 위해 당신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준다면 대한민국 정부가 당신에게 감사장을 주도록 추천하고, 차기 선거에 내가 LA 한인들의 표를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후에 반환이 결정되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이 말은 나의 진심이었다. 그만큼 어보 반환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난품 인정, 조건없는 반환 결정

면담 후 어보 압수를 우려하는 야로슬라프스키 LA 카운티 슈퍼바이저
 면담 후 어보 압수를 우려하는 야로슬라프스키 LA 카운티 슈퍼바이저
ⓒ 안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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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박물관에서 협상을 시작하기 전 우리 일행을 격려하기 위해 총영사께서 오찬을 마련해주셨다. 총영사는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한 바 있는 외교관이어서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상당한 분인 듯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예상하는 협상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협상을 통한 반환은 전례가 거의 없고, 특히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십중팔구 수사를 핑계로 환수 결정을 유보할 것이고, 장기임대 형식을 제안할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오후 3시. 잃어버린 조선의 혼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지난 7월에 이어 두 번째 협상을 위해 라크마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측 협상 대표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부관장과 변호사가 나왔고, 지난번 부관장이 테이블 중앙에 앉아 불쾌했던 자리 배치와는 달리 이번엔 부관장이 나와 마주 앉으니 좋은 징조가 느껴졌다. 한가위 명절을 핑계로 나와 김준혁 교수가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면 박물관 측이 위축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난생 처음 입은 두루마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예상과는 달리 협상은 아무런 이견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박물관 측은 "어보가 도난품인 것을 자체 조사로도 충분히 확인을 했으니 반환을 결정했습니다. 반환 절차를 협의할 파트너를 정해주면 즉시 반환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귀를 의심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옆자리의 혜문스님에게 "다 된 거죠?"라고 확인하자 스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김준혁 교수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확인 표시를 해주었다.

이에 협상 대표 격인 내가 "지금까지 문정왕후 어보를 안전하게 잘 보관해준 라크마 박물관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오늘 추석인데 국민들에게 최고의 추석 선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화답하였다. 62년 동안 미국을 떠돌던 문정왕후 어보 환수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18일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어보 환수,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 계기로 삼아야

환수 결정 기자 회견
 환수 결정 기자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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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 반환 결정 소식은 방송, 신문 등 모든 언론에서 추석 연휴 주요 기사로 다루어질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한국전쟁 당시 한 미군 병사가 종묘에서 훔쳐간 어보가 마침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순전히 혜문스님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라고 치하드리고 싶다.

'문정왕후 어보 환수 촉구 대한민국 국회 결의안'을 발의한 인연으로, 박물관 측과 두 차례에 걸친 협상 대표로 나선 내가 보기엔,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혜문스님에게 충분한 감사의 표시를 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민간단체의 노력에 의해 미국으로 약탈된 문화재 반환을 성사시킨 최초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어보 환수에 대해 정부도 하루속히 고국으로 돌아오는 문정왕후 어보를 위해 국민적 예를 갖추는 형식을 준비하고, 차제에 약탈당한 문화재를 환수하려는 실효성 있는 계획을 세우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반환촉구 성명서를 발표한 북한 당국에도 감사의 뜻을 표하는 아량을 우리 정부가 보여주길 희망한다. 이번 어보 환수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미미했던 것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정부가 행정과 예산을 뒷받침해주고 민간이 앞장 서는 효율적인 거버넌스를 작동하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약탈된 국보급 문화재 환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 문화재 환수 목표는 중국 대련에 있는 금강산 종이다. 이미 지난 여름 대련 여순 박물관에서 금강산 종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환수받은 금강산 종을 북한에 돌려주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꿈꾼다. 금강산 종은 조선의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기왕후가 금강산 표훈사에서 만든 것인데, 1906년 대동아 공영의 일환으로 일본이 만주로 옮겨 놓은 국보급 보물임을 경희대 김준혁 교수가 사료를 통해 확인하였다.

금강산 종은 우리의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민족의 종일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남북한 모두를 위한 평화의 종이다. 꼬여 있는 남북관계에서 화해의 물꼬를 트는 평화의 상징으로 삼아 남북이 합심하면 금강산 종의 환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중국 정부와 당당하게 협상하여 금강산 종을 되찾도록 민족의 지혜와 힘을 모으길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문정왕후 어보 환수를 비롯하여 조선왕조의궤와 조선왕조실록 등 문화재 환수에 탁월한 공을 세우고 계신 혜문스님의 명함에 적힌 문구를 전하고자 한다.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깬다."


태그:#안민석, #LA 라크마, #어보,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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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제 꿈은 국민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에 글쓰기도 정치를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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