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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8주년을 맞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8.15평화통일대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 등 통일의 염원을 담아 '6.15선언이행'과 '한반도'가 그려진 대형현수막을 펼쳐보이고 있다.
▲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광복 68주년을 맞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주최로 열린 '8.15평화통일대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체결 등 통일의 염원을 담아 '6.15선언이행'과 '한반도'가 그려진 대형현수막을 펼쳐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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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다. 이렇다할 정도로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딱히 활동적인 무언가를 별로 안 했음에도 땀이 온몸을 적시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추위는 그나마 참아도 더위는 도저히 못 참는 나로선, 올해의 무더위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 뜨거운 날씨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8년째 되던 지난 8월 15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더운 날 아침에 연이어 두 개의 집회에 참석했다. 오전 9시경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군국주의화 규탄 집회에 참석했고, 11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8·15 대회에 갔다.

광장 한켠에서 벌어지고 있던 코레일 측의 행사로 인해 안 그래도 집회하기엔 좁은 서울역 광장은 더 좁았다. 그 자리에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으니, 더 답답하고 더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햇볕은 무척 쨍쨍했다. 더워서 쓰러질 것 같았다. 바로 그때, 먼발치에 8월 초부터 이날까지 전국 각지를 돌고 온 '통일선봉대' 대학생들이 보였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내가 더워봤자 저들보다 더울까.' 마음을 차분히 한 나는 조용히 아스팔트 땅바닥에 앉았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 광복의 기쁨만이 아닌, 그에 연이은 분단의 아픔을 함께 아로새긴 날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이후론 이 같은 분단의 아픔을 통일의 환희로 승화시킬 것을 결의하는 뜻에서, 매년 8월 15일마다 8·15대회란 이름하에 통일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엔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친 원로들을 비롯해 각 정당 정치인들, 시민사회단체 사람들 등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이 매년 모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사람들이 모인다. 바로 1988년 이래 '통일선봉대(아래 통선대)'란 이름으로 각지에서 통일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8·15대회에 모이는 학생들이다. 전대협, 한총련 시대를 거쳐 2013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통선대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어차피 길바닥에 버릴 유인물들 뭐하러 나눠주냐!"

나도 몇 년 전까지는 직접 통선대에 참가했던 '현역'이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세 번 통선대에 참가했다. 통선대가 활동하는 기간은 1년 중 가장 덥고 뜨거운 8월이다. 이 기간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서명을 받으며 다닌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지하철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역설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위 '반공 할아버지'라 불리는 보수적인 어르신들에게 혼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솔직히 정말 힘들고 하기 싫을 때도 많았다. 내가 얘기하고 다니는 가치엔 내 스스로 확신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체력적 한계를 무시할 순 없었다. 이 더운 날씨에 시원한 곳에서 퍼질러 자고 싶단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정작 통선대 활동 막바지에 가면 뭔가 아쉽고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드는 걸 보면 신기했다.

2011년 내 마지막 통선대 활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여름은 최악의 습도가 일정 끝날 때까지 우리 대원들을 괴롭혔다. 통선대 때 안 힘든 적은 없었지만, 그땐 심신 모두 그 어느 해보다도 힘들었다. 아마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하는 분들을 많이 접해서 그랬던 것도 같다(2010년 천안함 사건과 5·24 조치,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불쾌지수가 매일매일 100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던 시점에서 '빨갱이'란 말은 기본이요, "니들 김정일한테 돈 받고 이딴 짓하냐", "할 짓 없으면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 등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힘이 빠지기도 참 많이 빠졌다.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통일선봉대가 14일 서울시청 앞 광장 주위를 돌며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박근혜, 남재준 규탄하는 통일선봉대 한반도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통일선봉대가 14일 서울시청 앞 광장 주위를 돌며 박근혜 대통령과 남재준 국정원장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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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이 후반부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청량리역 앞에서 서명활동을 했다. 그날은 날씨는 흐렸지만 습도는 최악이었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더위와 '무시당한다'는 스트레스로 극도의 피로감에 휩싸여 있던 나는 웃음을 잃은 상태였다. 서명활동이란 것이 사람을 면대면으로 접하는 아주 중요한 활동이란 걸 알면서도, 완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평소 땐 그래도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최대한 친절히 설명하는 예의는 보였지만, 이날은 아예 그런 생각도 머리에서 날아간 듯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명판을 놓진 않았다. 사실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단 화가 나서였다. 아무도 내가 하는 얘길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함께하던 다른 동료들이 잠시 쉴 때도 나 혼자 계속 서명을 받았다. 동료들에게 모범이 되겠단 생각 때문이 아니라 화가 나서였다. 얘길 들어주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그날따라 하늘을 찔렀다.

그러다 결국 사고(?)를 쳤다. 서명을 받으러 한 어르신에게 다가가는데 그 어르신이 다짜고짜 내게 화를 냈다. 뭐 더운 날씨 속에서 화내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힘들고 속상했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그 어르신의 다음 말을 듣고 난 폭발했다.

"야! 어차피 길바닥에 버릴 유인물들 뭐하러 나눠주냐! 쓰레기 만들 일 있냐?"

난 그때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있었고, 다른 일행들은 누구는 서명을 받고, 누구는 유인물을 돌렸다. 그 어르신의 말을 듣고 주변을 돌아보니, 온 사방에 우리가 정성껏 뿌린 유인물이 버려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르신의 얘기를 듣자, 난 나도 모르게 어르신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아니, 저 유인물을 길바닥에 버린 사람들이 잘못이지 왜 저희한테 그러시는데요! 왜 저 사람들한테 뭐라 안 하고 우리한테 그러시냐구요! 이걸 시민들 보라고 주는 것도 잘못이냐구요!"

더위 속에 지친 내게 힘이 되어준 동료들, 그리고 시민들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까지 화를 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청난 무례였단 건 잘 안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어르신은 머쓱했는지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시더니만 자리를 떴다. 난 분이 안 풀려서 자리를 뜨는 어르신을 향해 "아, 말씀을 해보세요! 진짜 저희가 잘못했다 생각하시냐구요!"라 외쳤다. 근처에 있던 동료들이 내게 진정하라면서 물을 건넸다. 여전히 분이 안 풀린 채로 물을 마시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였다. 한 여자 후배가 내게 힘내라고 하더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힘내요! 서명왕!"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난 그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었다. 그날 청량리역 일대에서 한 30여 명에게 서명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하루 전체로 치면 70명이 약간 안 됐던 것 같다. 착한 그 후배는 내가 '영혼 없이' 서명받고 다닌 건 모르고, 나를 '서명왕'이라 표현했다. 그날, 그 어느 때보다도 허탈하고 분노했던 날, 그 후배의 그 말로 인해 처음으로 웃었다. 그 후배를 비롯한 동료들의 격려는 이후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동료들 외에도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우리를 응원해 줬던 대다수의 시민들이었다. 난 착각하고 있었다. 절대로 사람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없이 조용히,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한 그에 대한 응답을 했다.

서명판을 들고 있던 내 손에 "더운데 음료수라도 사드세요"라며 지폐를 쥐여주던 분, 먹을 걸 갖다주시던 분, 지하철에서 우리 얘길 듣고 박수쳐주시던 분, 그리고 힘내라면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던 분들까지. 그분들이 있었기에 뜨거운 8월을 잘 보낼 수 있었단 생각이 새삼 든다.

그날의 '서명왕'은 이제 통일선봉대가 아닌, '취업준비대'의 일원으로서 올해 8·15대회에 참석했다. 통선대 인원들을 바라보니, 일순 힘들어 보이면서도 눈빛만은 또렷했다. 순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가만히 서 있는 내가 이 더위에 힘들 정도면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남북관계 개선', '평화협정 체결' 등의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칠 저 후배들은 오죽할까. 음료수 하나 못 사주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 시대 최고의 서명왕 통선대 후배들아! 이번 8월에도 고생 많았다. 나도 너희한테 안 부끄럽도록 열심히 살 테니 너희도 앞으로 언제나 통일의 희망이 되어다오. 우리 모두 힘내자!

덧붙이는 글 | '폭염이야기'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통일선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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