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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은 찜통 밤에는 보온밥통 같은 더위가 절정에 달한 지난 12일 지렁이를 사육하는 농장을 찾아가는 도로에는 커다란 덤프트럭이 유난히 많이 달렸다. 큰 공사라도 하는가 싶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고 막다른 길 앞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이 보였다. 뭔가 부조화스러운 그것들은 덤프트럭들이 쏟아낸 쓰레기로 쌓여진 쓰레기 매립지였다.

생활쓰레기를 매립하는 인천시 서구의 매립지 인근에 위치한 지렁이 농장을 다시 찾느라 내비게이션을 보며 꾸불꾸불한 외길을 따라 가다가 이번에도 막다를 길을 만났다. 아뿔싸! 머리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비좁은 철창 안에 나란히 앉아 있는 개들과 정면에서 눈이 마주쳤고 그 앞에는 반으로 길게 잘라낸 드럼통 안에서 펄펄 끓고 있는 음식물쓰레기가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이 말복이라는 생각도 잠시 다시 지렁이 농장을 찾아서 근처를 돌고 돌았다.

쓰레기를 매립하여 만들어진 산
 쓰레기를 매립하여 만들어진 산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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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매립지 아래에 있는 지렁이 농장은 손바닥만 한 간판을 못봤다면 비닐하우스 농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5000평 규모의 농장에는 50~100미터 길이의 사육동이 14개가 있다. 지렁이를 사육한 지 10년이 되었다는 왕길농장 박기자(62) 대표는 남편과 함께 직원 3명을 두고 지렁이를 돌보고 있다. 사육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 악취가 날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냄새도 없었고 지렁이가 배설한 분변토에서는 좋은 흙 냄새가 풍겼다.

또 다른 방문객도 있었다. 집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지렁이의 먹이로 주고 있다는 전지수(15) 학생은 지렁이의 생태에 관한 관찰기록으로 학교에서 상을 탔고, 이번에는 서울시가 주최하는 환경관련대회의 본선에 제출할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지렁이 농장을 찾았다고 한다. 전지수 학생의 가족들은 사육하우스 안에서도 지렁이를 반려동물처럼 친근하고 익숙하게 대했다.

지렁이는 뱀을 연상시키는 모습 때문에 혐오감을 가질 수 있지만 알고보면 무척 깨끗한 동물이며 지구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청소부다. 만약에 지구상에서 지렁이가 사라진다면 인류를 비롯한 모든 동식물들은 멸망할 것이라고 한다. 지렁이는 공룡보다 3억2천만 년이나 앞선 5억 년 전 지구에 출현했다. 지금도 지렁이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중이며 그 신비는 아직도 다 풀리지 않았다.

지렁이 사육하우스는 특별한 시설이 없었다. 비와 햇볕을 가려주고 온도와습도만 맞춰주면 잘 자란다. 겨울에는 얼지않는 깊이의 흙속에서 서로 뭉쳐있다
 지렁이 사육하우스는 특별한 시설이 없었다. 비와 햇볕을 가려주고 온도와습도만 맞춰주면 잘 자란다. 겨울에는 얼지않는 깊이의 흙속에서 서로 뭉쳐있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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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포항공대에 다니던 딸이 지렁이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을 계기로 지렁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각종 유기성 슬러지(영양분이 있는 찌꺼기) 처리의 대안으로 지렁이 농장을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무척 많은 시행착오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땅속에 살고 있는 지렁이의 생태와 먹이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다 자랄 때까지 4개월이 걸리는 데 구별하는것도 쉽지 않았지. 2년이 지나면서 지렁이에 대한 생태와 사육에 대한 기술이 생기면서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지렁이는 식물성 유기물의 썩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먹이로 한다. 정화조를 거친 인분과 축분의 슬러지를 먹이로 하기도 한다. 식품이나 종이를 만들고 남은 슬러지도 지렁이가 아니면 모두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쓰레기가 되었겠지만 지렁이의 먹이가 되는 순간 체내의 미생물에 의해 소화되고 배설하는 분변토는 흙과 식물을 살리는 영양분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왕길농장에서는 제빵과 제지공장에서 나온 슬러지를 먹이로 하는데, 많을 때는 한 달에 300톤을 지렁이의 먹이로 소화시키고 1년 주기의 순환을 거쳐서 분변토를 생산한다.

슬러지는 돈을 받고 지렁이 먹이로 처리해주고, 생산되는 지렁이와 분변토는 판매를 통해서 수익을 올린다. 지렁이는 화장품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데 피부를 맑고 촉촉하게 유지시키는 화장품에 지렁이에서 추출한 물질을 쓴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렁이의 몸은 항상 수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몸이 잘리더라도 피부가 재생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분변토는 주로 비닐하우스와 같은 시설재배가 많은 요즘 농업에서 오염된 흙을 살리는 토양개량제로 쓰이고, 식물과 농산물을 키우는 거름으로도 판매가 되고 있다.

국가에서 농촌에 지렁이사육단지를 조성하여 귀농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왕길농장 박기자 대표
 국가에서 농촌에 지렁이사육단지를 조성하여 귀농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왕길농장 박기자 대표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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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농장은 전국적으로 약 300여 개 된다고 하는데 그 숫자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폐기물처리업으로 등록된 사업이다 보니 혐오시설이라는 편견 때문에 민원발생 등의 문제로 과거에 비해 법과 조건들이 강화되어서 신규로 허가받는 것도 까다롭다. 쓰레기매립지 인근에 농장이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박 대표는 국가정책으로 지렁이사육에 대한 법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촌(살리기) 정책의 하나로 지렁이를 사육하는 대규모 단지를 만들어서 귀농인구를 늘리고 사육기술을 보급하는 일을 하면 국가적으로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환경관련 프로젝트로 제안을 해도 실천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유럽에는 지렁이와 관련된 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정에서 지렁이를 키울 수 있는 지렁이 사육상자뿐만 아니라 식물영양제인 웜주스(worm juice)도 판매되고 있고, 학교에서도 환경지표생물인 지렁이에 대한 생태교육을 통해서 어릴 때부터 친근감을 갖도록 하고 있다.

지렁이는 하루에 제 몸무게 만큼의 먹이를 소화시킨다.
 지렁이는 하루에 제 몸무게 만큼의 먹이를 소화시킨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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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는 15조 원어치가 넘으며 처리비용도 1조 원을 넘을 뿐만 아니라 매립이나 소각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여러 부작용들은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되었다. 환경단체와 관심있는 개인을 중심으로 한 지렁이 보급운동이 이제부터라도 전 국가 차원에서 장려되고 지방자치단체와 급식시설을 갖춘 기관과 가정에서 일부라도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한다면 환경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처리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미생물을 활용한 친환경적인 방법들이 나오고 있지만 지렁이처럼 자연상태로 되돌려주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지렁이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가정에서 지렁이를 키울수 있는 방법과 정보는 다음번 기사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태그:#지렁이, #분변토, #왕길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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