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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8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구·경북·울산입니다. [편집자말]
동대구역과 대구공업고교 중간 지점의 대도로변에는 '평화시장 닭똥집 원조 골목', '대구 명물거리 닭똥집 골목', '닭똥집 명물거리 평화시장' 등을 외치는 대형 간판들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다.
 동대구역과 대구공업고교 중간 지점의 대도로변에는 '평화시장 닭똥집 원조 골목', '대구 명물거리 닭똥집 골목', '닭똥집 명물거리 평화시장' 등을 외치는 대형 간판들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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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보수', '팔공산', '폭염' 등으로 알려진 곳이다. 1970년대까지는 '사과'와 '섬유 도시'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변했다. 보수와 팔공산은 여전하지만, 사과의 자리는 연근이 차지했고, 폭염은 엄청난 식목 끝에 훨씬 나아졌다. 다만 섬유 도시의 몫을 대신해주는 것이 전혀 없어 대구는 광역자치단체 중 19년째 GRDP(지역내 총생산)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구의 이름을 타지역 사람들에게 퍼뜨려주는 먹을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 찜갈비, 생고기, 곱창, 막창, 메기 매운탕, 따로국밥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근래에는 대구시가 앞장서서 전국 최대 생산지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 연근요리를 개발하여 상품화하기도 했다.

사람들 발길 붙잡는 대구 '닭똥집 골목'

이 유리창을 보면 누구나 저절로 가게 안에 들어가 소주 한잔에 닭똥집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유리에 붙여진 선전 이미지들도 그럴 듯하고, 창 안에 모여앉아 잔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도 너무나 정겨워 보인다.
 이 유리창을 보면 누구나 저절로 가게 안에 들어가 소주 한잔에 닭똥집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유리에 붙여진 선전 이미지들도 그럴 듯하고, 창 안에 모여앉아 잔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도 너무나 정겨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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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전국의 미식가들이 이 음식들을 찾아 대구로 온다. 그 중 한 가지,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닭똥집. 이름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닭'이 아니라 '똥' 때문이다. 하지만 닭똥집은 이름이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결코 지저분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농촌진흥청 홈페이지는 '근위를 우리나라에서는 똥집이라 부른다'면서 '조류의 위는 선위와 근위로 이루어져 선위는 소화액을 분비하여 음식물에 섞은 후 근위에 보내준다, 근위는 내벽이 각질화돼 두텁고 딱딱하다, 더욱이 아삭아삭한 피부가 있는 막으로 덮여 그 외벽에 두껍고 강인한 근육이 있다, 이 근육이 강한 힘으로 신축함으로써 근위 내의 음식물을 문질러 깨뜨리는 기능을 한다, 이 근질부는 독특한 식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딱딱한 내막을 벗겨 식용으로 이용된다'고 설명한다.

줄이면, 닭똥집은 닭의 모래주머니로 사람이 먹으면 '아삭아삭'하고 '독특한 식감'이 있다는 말이다. 더 줄이면, 아주 먹을 만하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대구 사람들이 이것을 맛나는 음식으로 개발하고 조리한 것은 당연지사! 대구의 닭똥집 골목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대구도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창조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대구에서 닭똥집으로 가장 유명한 일대는 동구 평화시장 골목 안이다. 동대구역과 대구공고 사이 지점인 평화시장은 점포의 반쯤이 닭똥집 식당이다. 동대구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인데다, 근처에 경북대학교가 있으니 이곳 닭똥집 골목은 출발선부터 충분한 지리적 이점을 갖춘 셈이다. 게다가 경북대학교와 이곳 사이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주택가 골목이라 걸어올 수밖에 없고 대략 10분이면 닿는다.

또 대구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등의 학생들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오려면 닭똥집 골목 앞으로 지나게 된다. 영진전문대도 가깝다.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에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까닭이 단숨에 헤아려진다는 말이다.

"싱싱한 것 튀김가루에 묻혀 아삭하게 튀겨내니 맛있지"

40년 전통을 뽐내며 '원조'를 자부하는 삼아식당의 내부 풍경. 주로 젊은이들이 앉아서 닭똥집과 소주, 맥주를 즐기고 있다. 식당 아주머니는 얼굴이 노출되면 "아들딸들이 아직도 일하냐?"며 "이제 그만 일하고 쉬세요" 한다면서 등을 카메라 방향으로 돌렸다.
 40년 전통을 뽐내며 '원조'를 자부하는 삼아식당의 내부 풍경. 주로 젊은이들이 앉아서 닭똥집과 소주, 맥주를 즐기고 있다. 식당 아주머니는 얼굴이 노출되면 "아들딸들이 아직도 일하냐?"며 "이제 그만 일하고 쉬세요" 한다면서 등을 카메라 방향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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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0년째 이곳에서 닭똥집 가게를 해온 삼아통닭식당은 위치 때문에 이곳이 '닭똥집 골목'으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고 강력히 항변한다. "온 전국에 대학교가 얼마나 많고, 대구도 젊은이들 밀집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닌데 유독 여기만 닭똥집으로 유명하게 된 건 맛나게 요리를 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싱싱한 생것을 튀김가루에 묻혀 아삭하게 튀겨내는 것이 비결"이라면서 "다른 데(광역자치단체) 사람들이 닭똥집 요리를 안 할 때 우리가 먼저 시작을 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그럴 법한 근거도 제시한다.

전국의 닭똥집이 이곳 평화시장으로 몰려온다는 말이다. "갈 곳 없는 닭똥집이 40년 전 이곳에 전문 식당이 생기자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전국 생산량의 대부분이 평화시장으로 수송되어 온다", "당연히 싱싱한 닭똥집으로 요리를 하니 최고의 맛도 당연한 것이고, 사람들이 찾으니 더욱 싱싱한 닭똥집으로 요리를 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손님은 더 몰려오는 것"이라는 게 닭똥집 골목 번창과 유지의 핵심 논리이다.

하지만 삼아통닭식당은 물론 인근의 비슷한 '원조'들도 사진 찍자는 제안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대구 사람들의 특성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사장보다도 더 오래 일해서 닭똥집 골목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는 삼아식당의 아주머니가 카메라를 회피하는 이유는 유별나게 재미가 있다. "이제 그만 일하고 쉬라는 아들딸이 인터넷에서 내 얼굴을 찾으면 안 된다"는 것.

"일을 하는 건 좋은 겁니다" 하고 맞장구를 치며 그녀와 담소를 나눴다. 성경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강제와 생계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노동은 몸과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건강학의 정설 아닌가.

한 사람 당 3000~4000원이면 배불리 먹어

새로 난 길이 아닌, 본래의 평화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닭똥집 식당들이 시작되는 초입에 '원조'를 내세운 삼아통닭, 평화통닭, 제일통닭 등이 삼각형을 이룬 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부터 좌우로, 또 직진으로 들어가면 유명한 '닭똥집 골목'이 계속 이어진다.
 새로 난 길이 아닌, 본래의 평화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닭똥집 식당들이 시작되는 초입에 '원조'를 내세운 삼아통닭, 평화통닭, 제일통닭 등이 삼각형을 이룬 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부터 좌우로, 또 직진으로 들어가면 유명한 '닭똥집 골목'이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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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손님들은 계속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손님들이 밀려오는 이유를 아주머니는 "둘이면 7000원에 충분하고, 넷이 배불리 먹어도 1만5000원이면 더 못 먹는데 이만하면 맛좋고 싸지요" 하고 해석한다.

농촌진흥청의 '근위' 해설 그대로 이곳에서 먹어보는 닭똥집은 정말 아삭하삭하다. 아이들로 치면 과자를 먹는 기분이다. 느끼하거나 진득해서 다른 육류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도 평화시장 골목의 닭똥집은 즐겨찾기를 할 만하다. 기름기가 흐르지 않으니 살이 찔 염려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대로변에서 닭똥집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원조들이 터를 잡고 있다. 삼아통닭, 평화통닭, 제일통닭 등등, 간판에 '원조'를 밝힌 집들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아무려면 골목 첫머리이니 원조들이 자리를 선점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원조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닭똥집 식당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그 식당들은 규모가 원조들과 차원을 달리한다. 상호도 '똥집 본부', 'The 큰 본부', '똥집 대통령' 식이다. 인테리어도 원조들과는 대조가 된다. 대략 4배는 거뜬한 규모에, 언뜻 보아 서양식 커피집이나 맥주집과도 흡사한 분위기이다. 물론 식당 내부가 훨씬 크니 손님들도 숫자상으로는 비교가 안 된다.

'똥집 본부', 'The 큰 본부', '대통령' 등 상호만 보아도 대형 가게들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닭똥집 식당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원조를 내세운 삼아통닭 등 초입의 전통을 자랑하는 집들보다 더 안쪽에 있다.
 '똥집 본부', 'The 큰 본부', '대통령' 등 상호만 보아도 대형 가게들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닭똥집 식당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원조를 내세운 삼아통닭 등 초입의 전통을 자랑하는 집들보다 더 안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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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산성까지 따져봐야 알 일이겠지만, 원조들보다 대규모 신설 식당에 손님이 더 많은 것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 아니다'는 촌철살인도 있으므로, 꼭 원조들이 영업에 약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도 이 골목마저 자본의 논리가 점령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싶어 공연히 걱정이 인다.

세심한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원조들의 가게 간판에 모두 '통닭'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조금 전에 말했다. 원조들은 삼아닭똥집, 평화닭똥집, 제일닭똥집이 아니라 한결같이 삼아통닭, 평화통닭, 제일통닭을 이름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닭똥집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는 표시이겠지만, 신흥 대규모 가게들이 하나같이 간판에 '닭똥집'을 내세우는 것과 사뭇 차별이 된다. 젊은 사장들은 잽싸게 그 흔한 통닭이 아니라 이 골목 특화 상품인 닭똥집을 표면에 내세우는 '순발력 있는' 상술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결국 원조들은 대구가 닭똥집 요리만이 아니라 닭고기(통닭) 요리의 본향이라는 사실을 상호로 지켜내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대구 두류공원에서는 전국 단위의 '치맥' 행사가 열렸다. 여기서 '치'는 통닭, '맥'은 맥주를 지칭한다. 닭똥집은 닭의 한 부분이니, 대구가 닭고기 요리의 대명사라는 사실을 나타내자면 '닭똥집과 맥주'보다는 '통닭과 맥주'가 제격이었으리라.

본래 닭을 가까이 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 '대구'

사실 많은 닭고기 요리가 대구에 본거지를 두고 개발되었다. 한때 전국 시장을 독과점했던 맥시칸, 멕시카나 등 유명 체인점 본부도 모두 대구에 있었고, 현재 위세를 떨치고 있는 교촌치킨, 호식이치킨 등도 본사는 대구에 있다. 닭똥집 골목이라면 으레 대구를 떠올리는 것처럼 통닭 역시 대구의 음식인 것이다.   

어째서 대구는 닭고기 요리의 대권을 장악하고 있을까? 대구경북역사연구회가 펴낸 <역사 속의 대구, 대구 사람들>이 대구의 신라 때 지명이 달벌 또는 달구벌이었는데, '달구의 원형을 닭으로 보는 것이 (사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라고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대구가 원래 닭과 관계가 있는 것은 어쩌면 거주 집단이 닭을 토템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쫄깃쫄깃한 맛에 가격도 저렴한 닭똥집 한 접시. 1인당 3000~4000원에 잔뜩 맛을 즐기고 배도 불릴 수 있으니 젊은이들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만하다.
 쫄깃쫄깃한 맛에 가격도 저렴한 닭똥집 한 접시. 1인당 3000~4000원에 잔뜩 맛을 즐기고 배도 불릴 수 있으니 젊은이들이 밀려오는 것은 당연지사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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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를 대구 사람들은 "달 한 마리"로 소리내고, "닭새끼"를 "달구새끼"라 발음한다. 달벌 또는 달구벌은 닭벌의 다른 표기라는 말도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은 닭요리를 즐겨해왔고, 그만큼 맛나게 요리해내는 솜씨가 비축되었을 터이다.

학자들은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이 경주에서 대구로 서울을 옮기려 한 것도 마찬가지의 연유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이는 계림과 알영 유허의 암시에 따르는 역사 해석이다. 신라의 주축인 김씨들은 자신들의 조상 알지가 태어난 곳을 계림이라 부르고, 나라 이름도 계림이라 했는데, 계림(鷄林)은 닭(鷄)이 있는 숲(林)이다. 또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이 태어날 때 그녀의 입술도 닭부리 모양이었다. 용의 옆구리에서 여자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목격한 노파가 알영을 우물가로 데려가 씻겼더니 그 닭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신문왕이 달구벌 천도를 기획한 것은 대구와 경주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서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된 정치적 사건이라는 해석이다. 신문왕은 천도를 실행하기 위해 장산성(경산)까지 왔다가 돌아갔지만 오래된 경주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못 이겨 끝내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닭을 가까이하는 마음과 풍습만은 줄기차게 대구에 남았으니, 통닭과 닭똥집 요리의 발전과 전통은 대구땅에 면면히 이어져온 역사로 새겨졌다.

이렇게 닭과 대구는 인연이 깊다. 동대구역 인근의 닭똥집 골목의 번창을 경북대 근처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낮추어 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구에 닭똥집과 통닭 요리가 발전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석기 또는 청동기 이래 끝없이 이어져온 대구의 역사와 전통이다. 아삭아삭한 건강식, 달구벌의 역사와 문화를 증언하는 전통의 맛이다. 값도 싸서 대구사람들의 후박한 심성까지 대변한다. 오시라, 대구로, 닭똥집을 찾아!

(사진 위 왼쪽= 계림) 김씨의 시조 알지는 닭숲(계림)에서 태어났다. (사진 위 오른쪽= 알영 유허)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용이 낳았을 때 입술이 닭부리 모양이었다. (사진 아래 왼쪽= 신문왕릉) 신문왕은 경주와 마찬가지로 닭을 섬기는 사람들의 땅 대구로 천도하려다 실패했다. (사진 아래 오른쪽= 대구 달성 입구) 대구의 옛지명 달벌(달구벌)은 '닭벌'의 대구식 발음이자 한자음 표기이다.
 (사진 위 왼쪽= 계림) 김씨의 시조 알지는 닭숲(계림)에서 태어났다. (사진 위 오른쪽= 알영 유허)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용이 낳았을 때 입술이 닭부리 모양이었다. (사진 아래 왼쪽= 신문왕릉) 신문왕은 경주와 마찬가지로 닭을 섬기는 사람들의 땅 대구로 천도하려다 실패했다. (사진 아래 오른쪽= 대구 달성 입구) 대구의 옛지명 달벌(달구벌)은 '닭벌'의 대구식 발음이자 한자음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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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닭똥집 거리, #평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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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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