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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전시 안내 책자와 사진, 지도 등을 여기에서 가져갈 수 있다.
▲ 갤러리 마크 전경 자세한 전시 안내 책자와 사진, 지도 등을 여기에서 가져갈 수 있다.
ⓒ 이지성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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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절정을 향해 가던 8월 13일 새벽. 평소라면 그냥 무덥기만 했을 여느 때의 새벽이었겠지만 유성우가 내린 이날은 달랐다. 새벽하늘을 밝게 수놓아가는 빛의 물결. 비록 기대한 만큼 많은 유성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은 예술적이라는 표현을 두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끔 빛은 이렇게 반짝임만으로도 우리 가슴을 적셔온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일까, 종종 누군가는 빛의 예술을 직접 만들어내려 한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갤러리 마크에서 운 좋게 그것을 직접 볼 기회가 닿았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평일 오후. 적막한 화랑 입구에 비치된 전시 안내 책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선다. 이곳에는 안내 책자 외에도 작품 위치와 이름이 적힌 지도가 함께 비치되어 있어 관람을 조금 더 편하게 한다. 어느 것부터 볼까 하고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 옆의 거대한 작품이 순간적으로 내 시선을 빼앗는다. 수많은 광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백의 빛. 그것은 꼭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을 닮아 있었다.

갤러리 마크에서 8월 29일까지 진행되는 이재민 작가의 개인전 내추럴 픽셀(Natural Pixel)은 앞서 말했듯 빛을 소재로 하는 미술 전시이다. 보통 빛의 변화와 움직임 등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가리켜 라이트 아트(Light Art)라고 한다. 1960년대 댄 플래빈(Dan Flavin)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으니 다른 미술 형식에 비해 역사가 아주 긴 것은 아니지만 빛이 가지는 다채로운 성질 때문에 아주 다양한 방식의 작품들이 시도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또 빛이 다른 분야의 미술 작품에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널리 알려진 백남준의 작품에서도 빛이 아름답게 활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나와 너, 설치작품, LED 전자회로와 카메라, 2013년 작품
▲ 이재민 나와 너, 설치작품, LED 전자회로와 카메라, 2013년 작품
ⓒ 이지성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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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내 발걸음을 붙잡은 작품의 이름은 <나와 너>. 5000개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들이 약 2m높이에 걸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꼭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내 앞의 조명들 일부가 밝게 발광한다. 어째 꼭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아 입이 샐쭉해진다. 한눈에 보기에는 조금 큰 작품이라 다른 쪽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그러자 내가 있던 곳의 빛은 사라지고 내 궤적을 따라 새로운 빛이 하나 둘 생겨난다. 진짜 나를 알아보는 건가? 호기심이 동해 작품 근처를 잠시 맴돌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조명은 내가 움직이는 모양대로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심지어 고개를 잠시 돌리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살짝 들어 올리는 작은 움직임에도 빛은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내 머릿속의 절반은 저 조명에서 번져오는 백색광의 영롱함으로 나머지 절반은 한 가지 의문으로 채워진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 작품 속에 숨어있는 비밀은 다름 아닌 CCTV 카메라. 작품 설명에 의하면 구조물 속에 설치된 CCTV 카메라가 작품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모습을 빛으로 표현하게 된다고 한다. 작가 이재민은 이것에 관련하여 "나의 흔적이 저장되는 구조물과 너의 흔적이 저장되는 구조물은 CCTV 카메라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라고 이야기한다. <나와 너>라는 작품 이름처럼 작가와 나 두 사람은 이 작은 카메라를 통해 서로 이어지고 있었다.

파도의 빛, 설치 작품, LED 전자회로와 우레탄 그리고 플라스틱 용기, 2011년 작품
▲ 이재민 파도의 빛, 설치 작품, LED 전자회로와 우레탄 그리고 플라스틱 용기, 2011년 작품
ⓒ 갤러리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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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던 작품 옆으로는 작은 비디오 스크린 하나가 벽에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이재민이 부산 송도 해수욕장에 설치했던 작품 <파도의 빛>의 제작과정과 설치 모습을 담은 비디오였다. 그는 약 2500개의 LED를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해안선 부근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LED는 파도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감지기를 가지고 있어 파도가 여기에 닿으면 그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빛으로 표현하게 된다고. 사실 비디오만으로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한밤중 빛으로 그려지는 파도의 모습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날 생각을 않았다.

하늘 조각 #001, 평면, 우레탄, 2011년 작품
▲ 이재민 하늘 조각 #001, 평면, 우레탄, 2011년 작품
ⓒ 이지성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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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물체들, 달리는 사람 등 온갖 빛으로 표현된 작품들을 감상하다 빛나지 않는 한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우레탄으로 액자 위에 그려진 나뭇가지의 모습이 이 전시에서만큼은 다소 이색적으로 보인다. <하늘 조각>이라 이름 붙여진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전자회로가 사용되지 않은 유일한 작품. 또한 동시에 조각이나 설치작품처럼 입제적인 작품들 속에서 유일하게 평면으로 표현된 작품이기도 하다. 화려한 전자기술로 빛을 내뿜는 작품들 속에서 이 우레탄 그림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 조각>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살짝 고개를 내민다. 그것은 빛. 그러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주변의 빛들이 우레탄에 반사되는 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꼭 눈꽃을 얹어놓은 듯 살짝 일렁이는 반짝임이 기술적인 작품들 속에서 잠시 놓고 있었던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빛나는 공간 '돌', 설치 작품, LED 전자회로와 발포 우레탄, 2010년 작품
▲ 이재민 빛나는 공간 '돌', 설치 작품, LED 전자회로와 발포 우레탄, 2010년 작품
ⓒ 이지성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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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왼쪽으로 조금 기괴한 형태의 작품이 하나 보인다. 형태는 꼭 바위를 닮았는데 수많은 LED들이 그 표면을 감싸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레이저로 쏘아지는 산, 물 등의 글자들까지. 지금까지 보았던 작품들이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런 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작품이 너무 인공적으로 생긴 지라 이 작품에 산, 혹은 물이라고 써놓은들 그것을 떠올릴 수 없는 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계속 보게 된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 능선의 울퉁불퉁한 선이, 흐르는 물의 유려함이. 이재민은 작가노트에 <돌>이라 이름 붙여진 이 작품에서 입체적인 양감을 빛으로 만들어내려 했다고 쓰고 있다. 이런 시도들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언제나 조금 더 넓은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매력을 숨기고 있기에 재미있다.

물빛, 설치작품, LED 전자회로와 우레탄 그리고 물과 수중펌프, 2012년 작품
▲ 이재민 물빛, 설치작품, LED 전자회로와 우레탄 그리고 물과 수중펌프, 2012년 작품
ⓒ 갤러리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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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 바퀴를 다 돌 무렵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마지막 작품 <물빛>에서 들려오는 소리일 터다. 이 작품은 LED에 물을 감지하는 감지기를 연결하여 물이 닿으면 빛이 켜지며 물의 양에 따라 빛의 밝기가 제어된다. 이재민은 7월의 장맛비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 번에 죽 흘러내리기도 하고 중간에 잠깐 멈추어 서기도 하는 빗방울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빛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이 떨어지는 방향에 맞추어 점멸하는 조명 빛과 그 빛을 여과 없이 반사하는 물방울. 소리와 느낌 그리고 시각적인 이미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얼마 되지 않는 관람시간을 빛으로 가득 채우고 돌아간다. 사람이 만들어낸 빛의 아름다움을 하늘의 그것과 비교하는 일은 어쩌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강한 염원은 때로 밤하늘의 별보다 밝게 빛나기도 한다. 만약 이번에 유성을 못 보았다면 지금 미술관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유성보다 밝은 별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휴관일 : 매주 일요일
관람시간 : 10:00 - 18:00
관람료 무료, 사진촬영 가능



태그:#미술, #이재민, #개인전, #갤러리,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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