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친일반민족행위자 의복·유물 문화재 등록반대 항일독립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 도중 참석자들은 일제말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백선엽의 모형에 일본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씌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의복·유물 문화재 등록반대 항일독립운동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 도중 참석자들은 일제말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백선엽의 모형에 일본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씌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13년 6월 21일이었습니다. 이날 문화재청은 '근대 의생활 유물 문화재 등록 예고'라는 제목으로 총 11건 76점의 근현대사 의복과 유품을 문화재 등록하겠다며 기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게시했습니다. 그런데 문화재 등록 예고 대상자의 이름을 살펴보던 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선엽, 민철훈, 윤응렬, 윤치호, 민복기.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하겠다는 의복과 유물의 소유자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들 5인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거나 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을 등재된 친일파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참담하기 이를데 없는 이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죄상을 '고발'합니다.

백선엽·민철훈... 누구인가

회고록 <군과 나> 표지에 실린 군복 입은 백선엽.
 회고록 <군과 나> 표지에 실린 군복 입은 백선엽.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문화재청이 이들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의복과 유물 등을 문화재로 등재하겠다며 밝힌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른 의도나 판단은 배제하고 오직 '의생활 분야'에서 이들 물품들이 가진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민철훈의 대례복'이라든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백선엽이 1950년대에 입었던 군복' 등이 '근현대사 의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문화재 지정을 예고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문화재청의 업무 추진에 대해 항일독립운동 단체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은 연이어 항의와 분노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물품 등을 국가 문화재로 등재하겠다는 발상에 대해 격렬히 항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이들이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백선엽씨 관련 사실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힌 사실에 의하면 그는 일제말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으로 반민족 행위자이자 전범에 상당하는 인물로 평가합니다. 간도 특설대는 거물 친일파인 간도성장 이범익이 효율적인 독립군 탄압을 목표로 일제에 건의해 창설한 만주국군 산하 '조선인 특설부대'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군 장교의 지휘 아래 항일세력 토벌에 앞장 섰으며 또한 잔혹한 민간인 학살과 초토화 작전으로 악명 높았던 부대의 장교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정부기관인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또 '친일인명사전'에 동시 등재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문화재 등록 예고자인 민철훈 역시 '대단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입니다. 다만 백선엽과 또 다른 점은 혼자가 아닌 4대에 걸쳐 친일 행각을 이어간 지독한 '친일 가문'이라는 사실입니다. 민철훈은 일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은 자로 조선 귀족들이 '천황의 성은에 감읍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 귀족회' 이사로 일제의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같은 민철훈의 4대가 보여준 친일 행적은 화려하기까지 합니다. 아버지 민종묵을 시작으로 당사자인 민철훈, 그리고 그의 아들인 민규현과 손자인 민태곤, 민태균으로 이어지는 4대가 전부 일제가 준 남작 작위를 승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친일 행각을 보인 조선 귀족중에서도 유일하게 4대까지 작위를 계승한 '유일무이'한 친일 가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지독한 친일 행적을 보여준 가문의 대례복을 대한민국의 의복 문화재로 지정하여 대대손손 그 영예까지 이어가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번 문화재청의 예고인 것입니다. 

특히 민철훈의 이름을 확인하고 제가 느낀 충격은 더욱 심했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일했던 제가 담당했던 친일파가 바로 민철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민철훈 일가의 친일 재산을 국가귀속하며 늦었지만 그 역사적 단죄를 제 손으로 하고 있음에 자긍심까지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친일 반민족행위자가 입었던 대례복을 국가 문화재로 등재하여 가문의 영광으로 선정하겠다고 하니 도대체 이런 참담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독립운동은 3대가 고통받고 친일은 대대손손 영광? 참담하다

백선엽 장군
 백선엽 장군
ⓒ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나머지 친일 반민족행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철훈 일가처럼 윤웅렬 일가 역시 일제로부터 하사받은 남작 작위를 아들이 습작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 지배 통치를 강화, 유지하는데 있어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한 자입니다. 또한 윤치호는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1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지만 이후 전향을 조건으로 특별사면되어 나오면서 본격적인 친일의 길을 걸은 인물입니다.

그는 이후 '이토 치코우'로 창씨개명하고 일본의 황민화 정책과 신민화 정책에 주도적으로 앞장 서게 됩니다. 특히 각종 연설회와 글을 통해 조선의 '독립 무용론' 등을 주창하며 조선의 청년들에게 대동아 공영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야한다고 떠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청년들이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에 동원되도록 적극 나섰고 결국 무수히 많은 조선의 청년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쟁에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마지막 인물인 '민복기의 법복'을 문화재로 등재하겠다는 문제입니다. 먼저 민복기의 아버지 민병석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민병석은 한·일 병합의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대표적인 친일파로서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까지 지낸 거물급 친일 인사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로 일컬어지는 이완용과는 처내종 관계의 사돈이었으며 사적으로는 매우 절친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같은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따라 그 아들이었던 민복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갑니다. 그는 1913년 태어나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37년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합니다. 이후 경성지방법원 예비판사로 임명된 민복기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초생, 남궁태, 이찬우, 문세현 등 독립운동가의 판사로 참여하여 유죄를 선고합니다. 이같은 일제의 조선 식민지 통치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그는 일제 치하에서 승진을 거듭했고 경성복심법원에서 해방 전까지 판사로 근무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민복기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 독립운동가가 저 세상에서  문화재청의 '민복기 법복'을 문화재 등재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어떤 심정일까요. 이러한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의 의복과 유물이 정말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맞습니까. 이것이 대한민국의 문화재청이 할 일입니까.

문화재청의 친일파 물품 문화재 등록, 반드시 철회되야

지난 8월 8일 오전 10시 30분,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 기념사업회' 등 여러 항일 독립운동가 단체가 이같은 문화재청의 잘못된 문화재 등록 예고에 항의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차이석 선생님의 아들 차영조 선생님이 크게 한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3대가 가난과 고통속에 살아가고, 친일을 한 이들은 대대손손 영광을 누리는 이 나라가 도대체 누구의 나라냐"며 분노하셨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친일파들의 유물을 문화재로 등재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영광을 대대손손 친일파의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문화재청의 발상에 그  무엇으로 표현할 길 없는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또다시 100년전 그때처럼 일본이 침략해 온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는가 한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라고 말할 것이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내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남기신 '나의 소원'중 일부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백범 김구 선생님과 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총구에 맞서 싸워가며 얻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라니 후손된 제가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오는 8월 13일 대한민국 문화재청은 이들 친일파의 의복 및 유물을 문화재로 등재할 것인지를 두고 최종 심의한다고 합니다. 막아야합니다. 이를 위해 야당 국회의원들도 나섰습니다.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의 제안으로 지난 7월 26일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유품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14명의 야당 의원 연명을 받아 문화재청에 공식 의견서로 제출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반성'과 즉각적인 '철회'입니다.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친일파 특별전'을 해서는 안됩니다. 문화재청의 주장처럼 그 의복과 유물 등이 정말 근현대사 가치가 있어 필요하다면 이들 친일파가 아닌 다른 이들의 옷을 구하면 됩니다. 백선엽과 같은 시기에 군 장성을 지낸 이들과 민복기가 법관을 지낸 1950년대에 다른 법관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그런 대안을 찾아보지 않았음을 문화재청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들 논란이 되는 친일파의 관련 의복과 유물을 문화재로 등재하겠다는 문화재청의 발상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8월 13일,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건강한 상식을 기대합니다. 더 이상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태그:#문화재청, #백선엽, #민철훈
댓글5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